복수노조 시대가 코앞에 와 있고 올해 말 노사관계 로드맵이 국회에 상정될 상황에서 위기 논쟁을 하고 있을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위기의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전망에 대한 얘기도 하기 힘들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나타나는 현상은 대표성의 위기, 자주성의 위기, 연대의 위기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최근 걷잡을 수 없는 난타성 사건들로 이어지면서 노조운동 자체의 전망에 대한 회의마저 일게 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이러한 위기의 근저에 구조적 원인으로 다름 아닌 기업별체제가 있다.

다시 한 번, 노동운동 위기론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는 여러 곳에서 오랫 동안 얘기해 왔지만 지금처럼 그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다. 선도투쟁의 의미를 지니며 노동자의 연대전선을 형성했던 대기업의 임금인상투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 의미가 급속히 퇴색하여 최근 대기업의 임금전선은 더이상 노동자 계급 전체의 연대로 번져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업별 임단협은 관성처럼 계속되고 노조운동의 생명인 연대와 집중은 더욱 위기에 빠지는 한편, 활로를 잃은 기업별 노조운동은 갇히고 고여 ‘상대적 권력화’의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기업별 임금인상으로 무너진 계급적 연대를 복원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제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동시장으로 극단적으로 분절되고 기업 내부에서 또다시 균열된 고용시장을 연대라는 탈시장 영역으로 봉합하고 엮어내야 하는 힘겨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위해 노조운동은 고용과 사회공공성, 사회적 의미로의 임금체계 등을 의제로 안고 가야 한다. 기업별노조로는 이 의제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사회적 교섭이라는 사회적 층위의 대화 역시 초기업적 노조라는 구조적 뒷받침 없이는 그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게다가 복수노조 시대는 1년 남짓 지나면 시작된다. 초기업 노조운동으로서의 산별노조 건설을 놓고 한가한 소모적 논쟁을 하고 있기에는 전·후방의 진용이 여유롭지 않다. 산별노조는 되도록 빠르게 그리고 광범한 동의 속에 구축되어야 한다.

산별조직과 산별교섭

최근 산별노조를 두고 펼쳐지는 논쟁은 교섭구조에 대한 논의로 상당히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교섭체계의 문제가 곧바로 산별노조의 조직문제로 직결될 필요는 없다.

교섭구조는 각 조직의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편성될 수 있다. 물론 교섭구조가 조직체계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우선은 기업별 노조의 초기업적 조직통합이 되어야 하며 조직통합은 되도록 크게 이루어져야 한다.

즉, 대산별이어야 한다. 대산별의 원칙적 기조는 노동자는 되도록 크게 뭉쳐야 한다는 원칙론에서만이 아니라 현재 같이 극도로 분절된 노동시장과 신자유주의의 파상적이고 일상적인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점차 재벌 등에 의해 업종을 넘어 독과점화 되어가는 시장 질서를 봐서도 필수적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중소기업과 통합할 이유가 없다는 통념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한 산별운동은 실패한다. 마찬가지로 업종의 특성이란 응집력을 살려 업종별 산별노조 건설을 주장한다면 이 역시 산별운동을 가설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얘기가 된다. 교섭체계는 유연하게 그러나 조직은 되도록 크게. 이것이 독일의 통합서비스 노조인 ver.di(베르디)가 주는 교훈이다.

산별교섭은 중앙 통일교섭, 업종별교섭, 직종별, 지역별교섭 그 모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에는 점차 많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고 있다. 그 수가 늘면 당연히 금속노조 내에서도 사무직 직종 노동자들 고유의 교섭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교섭구조의 선택은 조직의 역량과 조건이 허락하는 한 가장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동시에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것이다.

민주제는 집중을 위해 거쳐야 할 원심적 구동력이다. 또한 산별노조 내에 가능한 모든 분과 단위들이 모두 교섭체를 만들 필요는 없다. 교섭이 아닌 협의체의 운영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산별 노조의 원칙이 산별 통일협약만을 유지하자고 할 경우 대산별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업종이나 분과의 특수성만 주장하며 배타적 교섭을 주장해도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산별운동은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내는 유연하고 창조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대산별의 원칙은 또한 통합노조의 원칙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지형을 안다고 자부하는 많은 외부 전문가들은 2007년 복수노조 시대에는 필연코 남유럽처럼 정파에 따라 노조가 분열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예견한다. 전문가들의 예견이 어떻든, 적어도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열하는 정치노조가 아니라 각 정치적 성향이 최대한 통합되는 통합노조가 지속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기업별 조직과 산별 조직, 기업별 교섭과 산별 교섭

산별노조 건설과정과 그 이후에도 끝없는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문제가 기업별협약과 산별협약 간의 관계일 것이다.

산별운동은 당연히 산별교섭이 기업별 교섭에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기업별 교섭과 산별교섭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산별협약을 최저기준으로 할 것인가 표준협약으로 할 것인가는 어쩌면 핵심을 비껴가는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의 통일성을 찾기 힘든 우리의 현실에서 표준적인 임금수준 협약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수준이 아닌 틀로서의 임금체계나 표준적인 노동시간, 산업별 고용의제, 혹은 교육휴가일수 등이 산별교섭 범주로 정해질 수 있다. 나아가 산별협약으로 묶어낸 교섭범주의 기준도 필요할 경우 단서조항이나 개방조항이 부가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현실에서 기업별 교섭을 무턱대고 산별교섭으로 끌어낼 수 없다. 그러면 어떤 교섭이 기업별 교섭으로 남을 것이며 어떤 교섭이 산별교섭으로 묶일 것인가? 이에 대해 보다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즉, 산별교섭과 기업별 교섭의 범주를 구분해 주어야 한다.

그 다음 기업별 조직의 문제이다. 산별운동은 기업별 노조를 지양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산별운동은 지역운동이어야 한다. 산별운동이 건강한 지역운동이기 위해서는 기업별 조직체계가 되도록 지역체계로 편재되어야 한다.

산별운동은 중앙 집중만이 아니라 지역운동으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직운영과 교섭제도 편성도 고민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업별 교섭이 지역 교섭으로 편재될 수 있으면 이는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산별조직이 업종별 교섭이라는 하부교섭을 선택하거나 기업집단(대기업)의 기업별 보충협약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지역 중심의 조직 활동과 지역협의 및 교섭의 가능성을 최대한 찾아야 한다.

산별운동이 노동자 계급연대의 실천적 구축이라는 대안이라면 산별로 가는 논쟁은 건설적 논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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