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시민들의 푸르른 문화 공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명소. 바로 청계천이다. 그러나 온갖 찬사와 기대 속에 완공의 그날만을 기다리는 청계천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청계천을 ‘장벽천’이라고 부른다.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시에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영유아 동반자, 임산부 등이 청계천에 안전하게 접근하여 이동함으로써 비장애인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권 보장에 지장이 되고 있는 시설을 개선토록" 권고했다. 청계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점검한 결과 좁은 천변보도, 난간이 없는 교량, 시각장애인의 유도방법 등 30여개가 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한다.

청계천은 ‘장벽천’

청계천의 편의시설 미비는 서울시가 표방한 ‘무장애 도시’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지난해 7월19일 보건복지부, 서울시, 장애인단체 등은 중앙버스전용차로 2개 노선을 점검한 결과 점자블럭, 교통신호기, 경사로 등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버스체계개편에서 장애인 등의 이동권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버스 노선이 간선-지선으로 분리돼 전에는 한 번에 가던 노선을 이제는 갈아타야 하고 버스를 타기위해 횡단보도를 건너 중앙전용차로까지 가야한다. 비장애인, 남성, 어른들은 갈아타는데 그다지 불편함도 없고 환승요금이 무료여서 혜택이 더 클 수도 있다. 중앙전용차로의 도입으로 버스가 빨라지고 정시성이 높아져서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버스를 갈아타고 도로 한복판에 있는 정류장까지 가는 것이 힘들어져 장애인 등의 접근성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도시 디자인을 말할 때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라는 개념이 있다. 어린이와 노인,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임산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동동한 사용자로 인정하고 이들의 요구를 최대한 포용하는 인간 중심의 도시를 강조하는 디자인 개념이다. 문외한인 필자가 다소 낯선 개념을 말한 이유는 청계천이나 버스개편의 근본적인 문제는 보편적 디자인의 부재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비장애인, 성인, 남성들이 설계하고 건축해 왔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권한을 가진 이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도시를 다룬다. 어린이나,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에 대한 고려는 1순위가 아니라 2순위, 3순위로 밀리고 그나마도 최소한의 수준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건축을 설계하고 만들면서 보편적 디자인 개념에 입각하지 않은 채 문제가 불거지면 그때 가서야 뜯어고치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지금 와서 지하철 역사 중 46개는 기술적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다고 한다. 공간이 부족해서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만들고 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한 두 곳의 출입구에만 설치돼 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자 한참을 돌아가야 하고, 때론 도로를 무단횡단까지 감행해야 했다.

성장 중심의 도시 마인드 바꿔야

이제, 성장 중심의 도시 패러다임을 바꾸자.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 물리적 측면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자. 편의시설을 얼마나 많이 설치했느냐가 아니라 실제 얼마나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편의시설 없이도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곳곳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거 부분에 있어서도 장애인이나 노인이 불편함이 없이 살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도록 강제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도시. 그들이 발언하고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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