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들에게 가장 거북스러운 선교방식 중의 하나가 ‘예수천국, 불신지옥’류의 협박일 것이다. 산별노조와 관련하여 많은 논의와 노력이 있다. 이제는 산별노조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산별인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른바 상과 경로에 관한 논쟁이 그것인데 어찌나 복잡하던지 때로는 산별의 네비게이션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제 산별노조는 노동운동 생존의 조건이 된 것 같다. 극단적으로는 기업별노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주장에서부터 낮은 조직률에 따른 계급대표성의 위기까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현재의 기업별 노조와 연맹체로서는 한계에 다다른 정도가 아니라 이미 있던 힘과 영향력마저도 급격하게 잠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7년 복수노조 시대를 하나의 촉매제로 보기도 하지만 떠밀려가는 산별노조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복수노조 시대에 사용자노조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심지어 '정파 산별'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있을 정도다.

지난 세기말에 'Y2K'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었다. 컴퓨터 연도표기에 있어 두자리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21세기가 되면서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어쨌든 큰 문제 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2007년 복수노조 시대와 산별노조는 'Y2K' 문제와 같이 누구나 알고 있고 모두가 대비하지만 아직까지는 바로 이것이라고 할 정도의 뚜렷한 방향이나 실천이 없어 보인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혐오…그렇다면 '무늬만 산별'도 못하는 경우는?

생존의 조건으로서 산별노조 혹은 떠밀려가는 산별노조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발전전략으로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전제되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는 게 아니라 변혁적 지향을 가지고 대중적 실천을 통해서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운동이 그러하듯이 그럴 듯한 원칙과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수월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발 아래부터 살펴야 하듯, 현재의 운동적 지형에서 출발한 조직발전 논의와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산별 조직전환은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지만 이미 있는 것의 기계적 전환만으로는 생존의 조건은 될지언정 발전전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산별건설은 통합의 조직적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투쟁의 규모, 집중성, 파괴력을 정권과 자본에 충분히 과시할 수 있는 통합과정의 투쟁내용이 반드시 결합되어 통합의 과정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별 논의에 있어 많이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가 서구산별 모델에 대한 검토와 이른바 '무늬만 산별' 무용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참조할 만한 것은 다 참조하되 특정한 모델을 단순히 따라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무늬만 산별'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혐오스러운 표현인데, 사실 이런 평가를 받아도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산별노조의 형식을 갖추면서 비정규직을 대규모적으로 조직하고 엄청난 투쟁을 전개한 운송하역노조-화물연대의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또 그 ‘무늬만 산별’조차 하지 못한 단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자칫 '누더기 산별'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당혹스런 현장 간부들…'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인가'

필자가 속한 화물통합노조 준비위는 산별 건설과 관련하여 복잡하고도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먼저 명칭 자체가 그렇듯이 정규직인 운송하역노조와 비정규직 조직인 화물연대를 통합해야 하는 당면과제가 있고, 10년 이상 추진해 온 운수산별 건설의 과제를 운수연대와 함께 하고 있으며, 공공연맹과도 통합 혹은 산별 건설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장간부나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인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적어도 최소한의 기준이나 함께 할 수 있는 원칙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운수연대는 3월의 운수노동자학교와 7월의 대표자 토론을 거쳐 일정 정도 기준과 원칙을 마련했다. 논의된 것들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산별을 지향한다. 2~3만명 수준의 궤도단일노조나 화물통합노조만을 완결체로 보지 않는다는 것. 최소 10만명 단위 이상의 산별노조를 추진하며, 나아가 공공-운수-사회서비스 영역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대산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공이냐 운수냐 하는 해묵은 논쟁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동시추진하고 상호추동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당장 공공운수산별을 추진하자는 주장과 일단은 운수산별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대별되면서 결국은 공공이냐 운수냐 하는 논란이 재개되는 것 같은데 새롭게 제기되고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버스, 택시, 화물, 공공 등 관련 4개 연맹의 통합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관련 연맹의 통합은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닌 산별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가능하면 공공운수산별로 가되 그렇지 못하더라도 통합연맹 산하에 공공산별과 운수산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공동사업과 공동투쟁을 통한 산별건설이 제기되고 있다. 대체로는 11월 총력투쟁과 2006년 5월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모아진다.

‘예수천국, 불신지옥’…협박하자는 것인가

개인적인 소견과 바람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첫째, 산별은 절박한 문제이고 돌파 가능하다는 것. 절박한 위기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운동적 낙관을 가지고 대중을 추동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산별노조가 활동가들을 위한 조직도 아니요, 기존 조합원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식으로 협박한다고 일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낙관적 전망을 제시할 때 힘있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건설은 그 과정에서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강화, 산별건설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분명이 제시되어야 한다.

둘째, 가능한 것을 제시하고 기본적으로 단순명쾌 했으면 한다. 단순하지 않은 것을 단순하게 위장할 수야 없지만 분명한 로드맵-네비게이션이 보여져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불분명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애매할 때, 운동은 고립되고 혼선을 빚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현실적 지형을 감안한 실현가능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화물통준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관련 4개 연맹(버스, 택시, 화물, 공공)의 통합과 산별건설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셋째, 패권적 발상,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 것. 창조적 발상으로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대로 되는 일은 없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어떤 재벌 총수는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면서 어쨌든 돈 버는 일에서만은 최고가 되었는데 위기에 빠진 노동운동을 살리는 길에 기득권이 어디 있으며 패권이랄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큰길에 함께 가는 동지적 신뢰와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창조적 발상 없이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산별 건설이 '도메인 선점'류로 흘러가서는 안된다.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놓고 모두가 따라오라는 식의 일방통행은 가능하지 않다. 상과 경로뿐만 아니라 명칭, 운용방식 등 모든 것을 열어놓고 함께 고민하며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낙관과 패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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