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비정규법안을 둘러싼 공방이 한 해를 넘기고 있다.

하반기 국면에서도 여전히 비정규법안이 쟁점이 될 것이란 사실에 이의를 감히 제기하는 노동운동 세력은 없다. 그러나 비정규조직을 제외하고 비정규법안을 적극 쟁점화 하겠다고 주장하는 세력도 별로 없다는 사실에는 의아함과 아울러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민주대연합 구도나 사회적 대타협 등의 우회적인 진출로를 만들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는 걸 보면 하반기가 비정규투쟁 국면의 대단원이 될 것이라는 상식을 진실로 동의하는 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작금의 현실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를 재확인할 뿐이겠지만 이 뒤틀린 현실을 한 번 진단해 보자. 

제도의 공백, 비정규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첫째, 제도화 논의의 공백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비정규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울산, 아산, 화성, 창원의 자동차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으로 라인이 정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또 레미콘, 덤프, 타워 등 건설운송과 화물연대의 투쟁이 예고되고 준비되고 있다.

정부 법안의 공백지점이자 현 제도에서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투쟁으로 비정규입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불법파견 문제는 제도적 해결책을 명확히 요구하고 있는 한편 제도를 넘어선 요구가 맞물려 있다.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투쟁은 개별 자본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이를 불법파견에 대한 명확한 제도적 원칙을 확립하는 것을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원하청 연대가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중장기 고용문제에 대한 전망 부재로 정규직화 요구와 고용문제에 대한 고민이 안으로 부딪히는 와중에 연대를 구축하는 과제이다. 이해관계가 단기적으로 상충되고 중기 해결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시험무대에 오른 노동자간 연대의 문제이다.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문제는 바로 원하청 연대의 문제, 모든 노동자가 위협받고 있는 고용문제에 대한 현 제도적 기반을 넘어서는 원하청 연대의 실질적 전망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을 고용과 노동권에 대한 기존 제도의 기반을 허물고 진전시켜 나가는 동력으로 삼지 못할지언정 고립시켜 사멸되도록 방치하는 경우에 그 책임은 매우 심각하며 그 어떤 변명도 핑계거리로 치부될 뿐이다.

특수고용 투쟁은 제도화의 사각지대에 노동권의 사각지대라는 열악한 여건에서 이루어졌고 또 새롭게 준비되고 있다. 치열하게 전개된 투쟁이 유류비 보조 등 이권단체 수준의 투쟁의 결과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잘해야 미봉책으로 봉합되는 여타 비정규 투쟁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투쟁과 결합되어 입법화 국면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부각될 수 있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사안별 투쟁을 비정규직 기본권 보장의 차원으로 집중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낼 노동운동 전반의 기획이 뒷받침된다면 그 희망은 높아질 것이다.

둘째, 제도화 논의의 불만 지점에서 비정규투쟁은 터져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점이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비정규 조직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기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비정규 법안 공방 과정에서 사내하청, 특수고용과 결부해서 계속 진전해 나가야 할 내용이다.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를 깨고 큰 틀에서

셋째, 기존 제도의 왜곡된 성격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내용도 있다.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권을 지켜낼 수 있는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은 기업별노조체계의 문제이다. 노동의 책임과 정부의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노동은 역사적 산물로서 기업별노조체제를 주체적으로 해체하는 책임이며, 자기 역사적 과제에 충실하지 못하고 안주한 책임이다. 정부의 책임은 반민주적, 공안적 시각의 노동정책의 산물을 혁파하지 않고 유연화와 노동 약화에 활용하려는 책임이다. 노동의 책임은 백보양보해야 절반의 절반이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권 공방의 국면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현실의 제도를 유지, 고착화하려는 큰 틀에서 투쟁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을 돌파하지 않고는 현재의 틀을 깰 수 없다. 사내하청 투쟁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이 한 예이다. 그러나 이행조처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로, 제도적 해결 수위로 진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입법을 통해 이를 무마하고 주저앉히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제조업 공정의 파견 양성화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를 형성할 수 없다는 태도와 현실적으로 불법파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에서 현실의 투쟁 공간이 열리고 있다. 만들어진 공간에 주체적인 조직화를 통해 극복할 정도로 하청노조가 굳건한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가 여부가 관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원하청 연대가 필요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화물연대 투쟁이나 건설플랜트 투쟁, 건설운송의 투쟁에서 열악한 여건에서 최대치의 투쟁을 조직해내고 사회적 쟁점화와 현실적 타격을 줄 만큼 파업대오를 이끌더라도 강공을 펴면서도 결국 미봉적인 협상으로 마무리 지으려 할 때 거부할 힘이 부족하다. 강공과 미봉적 협상이라는 양면을 오가면서(자유롭게 오가는 것은 아니라, 그들 내부의 관점 대결도 있을 것이나) 투쟁을 관리하는 정부와 자본에 맞설 만큼 강한 조직, 강력한 투쟁을 형성하자는 논의는 하나마나한 말은 아니라도 최소한 다음 전망치고는 안이하다.

공동의 전선 형성기능이 총파업이지만, 총파업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지 않으며, 적어도 정부의 핵심 관리자들은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더 세게 맞서려는 총파업이냐, 아니냐를 집행부의 성향 따라 다소 달리 판단하고 다르게 대응할 뿐이다. 

왜 하반기가 아니고 내년인가

민주노총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내년 5월 일정으로 기획하고 있다. 왜 하반기가 아니라 내년인가? 지금은 왜 아니고 그 때인지 알려주기 바란다. 정부여당의 변화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반기를 소강국면, 준비기, 국민대중과 신뢰회복기 정도로 설정하려 한다면 수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이의제기한다.

하반기는 현 제도적 틀과 정부가 착착 진행하고 있는 장기 노사관계 재편구도의 파열음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다. 대중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비정규입법 문제를 중심으로 고양되는 비정규투쟁을 기폭제로 삼아 노동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고 제도의 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하며 현재의 틀을 유지, 강화하는 방안으로는 노동문제의 해결, 양극화 아니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부가 승복하고 자본이 부정하지 못하는 시점으로 나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유연화 일변도의 노동정책의 문제로 지목할 수 있는 정도로 현 제도적 틀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불만을 최고조로 드러내는 일이다. 그 결과가 노무현정부의 파멸로 이어져 다른 보수정당이 어부지리를 얻을지라도 거침없이 확인해야 한다. 어설픈 타협구도로 분위기 흩뜨리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표출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 안아 노동 전체의 사회적 메시지로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척박한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수준으로는 노동운동은 뒷걸음질만 쳐야 한다. 사회적 권리, 노동권에 대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나갈 유력한 시기, 하반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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