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모 기념사업회 소속 연구원의 도전적 문제 제기로 시작된 강단의 ‘노동운동 위기’ 논쟁이 이제 민주노총 내의 논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운동의 위기, 즉 현실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단에다, 주체적 조건에까지 ‘위기’ 논쟁의 폭은 확대되고 있는 듯하다.

‘위기론’에 덧붙여

일반적인 노동운동의 위기 진단과 관련하여 필자는 신자유주의 공세로 비롯된 객관적 위기상황보다 이에 대응하는 주체역량에서 더 큰 위기가 잠재해 있다고 본다. 이는 앞서 “위기 해결의 주역인 노동계급 자신이 ‘위기의 덫’에 빠”진 것을 핵심적 원인으로 진단한 몇몇 동지들(나상윤, 한석호)의 견해, 현재 조직혁신(안)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위기 극복의 대안을 구체화 하는 과정에 차이에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대중운동의 기본을 되찾는 데서 그 극복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즉, △현장 조합원의 주체적 인식과 실천 △현장 단위의 공동투쟁과 전국적 수준의 총파업투쟁 결합을 통한 노동운동의 질적 도약 △노동운동의 사회적 지지 회복을 통한 변혁 주도 역량의 강화 속에 그 해답은 놓여 있다. 당연히 이러한 과제의 핵심에 산별노조 건설이 놓여 있는 것이다.

올바른 산별노조 건설의 방향

이제 결론인 산별노조 건설로 넘어가보자. 현단계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의 위기의 원인과 그 극복의 핵심에 산별노조 논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꾸로 그만큼 산별노조 방향의 중요성이 간파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별노조 건설논쟁이 실천성과 대중운동의 기본을 결여한 채 편향적 노선으로 발전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서울대병원 ‘논쟁’이 덧붙여지면서 산별노조 건설논쟁은 교섭구조, 의사결정체계에서 또다른 쟁점을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공공연맹은 불행스럽게(?) 이 논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얘기를 풀어가는데 있어, 얼마 전 발표된 임영일 선생의 ‘노동운동 위기론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반성’(‘연대와 실천’, 8·12)에 대해 ‘외람된 도전’을 감히 하고자 한다. 이 비판이 결국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산별노조 건설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의 산별노조에 대한 언급은 크게 우리의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그 대안,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협약과 관련한 논쟁에 대한 견해로 대별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현재 한국사회의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보자.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의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기업 단위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전환 경로 및 기업 단위 독자 지부 인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서 기업지부의 집단탈퇴 현실의 불가피함과 기업지부의 대안으로 지역지부 중심의 골간체계를 꼽았다.

그런데, 이러한 고찰에는 두 가지 결함이 숨어있다. 산별노조 건설 경로에서 우리의 특수한 조건이 첫째이고, 현존 산별노조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이해가 둘째이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우리의 특수한 노동조합 발전 경로, 산별노조 이행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 부재는 익히 아는 바이다. 결국, 이러한 조건에서 기업별 단위의 조직변경을 통한 산별 이행 역시 현장조합원의 강한 의지와 결단을 필요로 했고, 그 결단과 의지가 1차적인 산별노조운동의 동력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기업별 체제가 지배적인 조건에서 조직 변경의 결단을 내린 기업 지부의 권한과 역할을 처음부터 양보하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한편, 산별노조 가입과 초기 단계의 기업 단위 독자성이 인정된다 해서 이를 기업 단위의 집단 탈퇴까지 불가피하다고 연결짓는 것 또한 논리의 비약이다.

'편향된 인식과 실천의 결여'로 점철된 산별 논쟁

현재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는, 산별 발전단계에 따라 사업, 재정, 인력, 교섭을 집중시켜내는 산별운동의 실천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산별 가입을 주저하고 있는 대공장이 즐비하고, 다른 공공서비스 부문의 산별 전환이 더딘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산별로 탈바꿈하고 산별교섭을 성사시킨 금속, 보건의료노조의 현실은 기업별 지부의 한계 속에서 그나마 획득한 소중한 성과가 아닐까?

산별노조의 완성된 골간 체계가 지역지부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지역지부가 옳다고 해서 기업 중심의 노조 체계를 하루아침에 지역지부로 전면 개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비록 기업별 지부이지만 산업, 업종별 요구와 이해로 무장하고 산업, 업종별 공동투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눈높이’ 확장을 통해 완성된 골간체계로 지향하는 것이 올바른 산별노조 건설의 길일 듯 싶다. 비정규직 투쟁을 조직적으로 받아안기 위해 지역지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실험단계의 논리에 불과하고, 이러한 실험단계의 논리를 곧바로 대중적 실천으로 강요하는 것도 좌편향의 전형일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에 대해서는 논리적 결함마저 나타난다. 서울대병원과 보건의료노조간 분쟁의 원인에 대한 접근, 그리고 통일협약에 대한 비판에서 그 모순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먼저, 본인이 기업별 지부의 독자 교섭과 투쟁의 문제점을 현재 산별노조 운동의 문제로 지적하면서 선생은 거꾸로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간 분쟁의 원인을 산별협약 10장2조로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 선생은 “산별 중앙협약이 통일협약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산별협약 성격에 대한 논란이 드센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말은 정확히 “산별 중앙협약이 통일협약을 지향하되 어느 단계까지는 기준협약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정확히 표현되었어야 옳았다.

그리고, 스웨덴의 연대임금협약 해체가 스웨덴 산업구조 변화 및 노동자계급 내부의 구성 변화로 전국적으로 ‘집중화’된 산별교섭의 강제력 약화와 산별교섭의 후퇴인 ‘분권화’로 치닫게 된 과정의 언급 없이 연대임금협약 해체가 마치 통일협약의 타당성 결여를 뒷받침한 것인양 비유한 것도 옳지 못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 분쟁 속에 나타난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간과함으로써 앞서 강조한 산별운동의 비판이 허전함을 면키 힘든 듯하다. 설사 10장2조의 협약의 문제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서울대병원의 ‘지부협약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반발 이면에 기업별 선택의 여유(우월한 임금지불능력 ↔ 노조의 강한 교섭력) 역시 엄연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보건의료노조 4만 조합원의 산별협약 인준이라는 자주적 선택 역시 자리잡고 있었다. 통일협약이든 기준협약이든, 그리고 내용이 충분하든 안하든 조합원이 자주적으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이러한 논리적 결함과 허전함이, 결과적으로 임영일 선생의 모처럼 소중한 평론이 원튼 원치 않든 ‘편향된 인식과 실천의 결여’로 비판받는 산별 논쟁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게 한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사례는 현 단계 한국사회 산별노조운동의 한계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또한 산별교섭 쟁취의 과정을 통해 산별운동의 소중한 결실을 축적하는 발전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필자가 현단계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제시한 현장에서의 대중 실천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현장의 경험과 주체적 실천

바로 엊그제 산별노조의 한 대표가 지면에서 짧게 내뱉은 한 독설이 귓가에 맴돈다. “산별노조운동 내부의 경험부터 듣고 떠들어라!” 비단 이 독설이 강단의 논객에게만 적용되겠는가? 결국 노동운동의 위기 논쟁 전개과정에서 위기 극복의 대안을 밟아가는 현장 조합원의 주체적 인식과 실천, 그리고 산별노조운동을 몸소 실천하는 현장간부들의 경험이 간과될 경우 이야말로 또다른 노동운동 위기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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