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 하려고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워크아웃, 개인회생, 파산 등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해 하는 사람들. 과중채무에 허덕이면서도 채무자들은 빚 탕감보다는 우선 “어떻게 하든 빚을 갚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채권기관의 비현실적인 상환요구 앞에 실의와 좌절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신용불량자 가운데 워크아웃을 신청한 몇분을 소개받아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이윽고 들려오는 전화음은 예사롭지 않다. “할렐루야~할렐루야” 역시나 목사님이었다. 또 한 분과 약속을 정하려 전화기를 돌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번엔 불경. 신용불량자를 취재하려는데 목사님과 불교신자를 만나야 하다니?

‘무신론자’인 기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인가? 그러나 종교인들이 어떻게 빚을 지게 되었는지, 왜 갚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증은 더해갔다. 또 하나. ‘도덕적 해이자’로 지탄받기 일쑤인 ‘신용불량자’들이기에 성직자와 독실한 신자의 얘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먼저 목사님을 만나러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의 한 교회로 향했다.


“과다부채, 고난을 이겨내게 해주시옵소서”

교인 한 명 없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교회. 바깥은 대낮인데 지하 예배당은 어두웠다. 전기를 아끼려고 불을 꺼둔 터였다. 신도들로 북적이고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상상한 기자로서는 약간은 의외였다. “하나님!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시나이까?” 불 꺼진 단상 아래 웅크려 기도하고 있는 한 목사가 손님을 맞는다.

환갑을 넘긴 조 아무개 목사는 군목을 거쳐 지방에서 20년간 개척교회를 일구었고, 지난 97년경에는 고향인 경기도 모처에서 개척교회를 해 볼 요량으로 올라왔다. “교회 마련하느라 아파트 담보 등으로 1억여원을 빌려서 시작했어요.” 장로와 집사들이 교회를 마련해서 목사님을 초빙하는 통상적인 사례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40~50명의 교인들이 모이면서 뭔가 되는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IMF 이후 서서히 교인들이 떨어져 나갔죠. 직장 잃고 사업이 안풀리니 그럴 수밖에요.” 설상가상으로 교회가 들어선 건물주가 부도나서 도망가고 건물은 경매에 넘겨졌다. 시가 12억원 가량의 건물이 4억3천에 낙찰됐고, 은행 등 채권자 순위에 밀리면서 목사는 7천만원의 보증금을 고스란히 날렸다.

다행히 교단의 무이자 대출로 새 건물주와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50만원으로 재계약을 했다. 2000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자 갚느라 카드 대출받고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로 버텨보았지만 빚은 더 늘어날 뿐이었다. 교인들은 줄어들고 조 목사는 빚 갚느라 허덕였다.

2003년말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매달 108만원씩 8년간 갚는다는 조건이었다. 교회 월급 120여만원, 외부 지원금 70~8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조 목사에게 이 조건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교인의 감소와 일정치 않은 헌금 때문이다. 하지만 조 목사는 ‘빚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 하니까’라며 9차례 불입을 했지만 석 달 이상 밀리면서 ‘실효(효력상실)’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부채원금에 밀린 이자를 합산하는 은행의 ‘대환대출’도 받았다. 연리 25%의 고리 덤탱이였지만 당장 빚 독촉을 받지 않으니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성직자라고 해서 빚 독촉의 예외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 “젊은이들이 딱딱거리고 빚 채근을 하는데 어디 견딜 수가 있나요. 예의 바르게 (독촉)했으면 (양심의 가책으로) 더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교단도 교인도 외면…‘용서하소서’

40~50명의 교인들은 최근 열댓명으로 줄어들었다. 교인들은 “큰 교회에 가겠다”며 하나둘씩 떠나갔다. 순복음교회처럼 대형교회는 불황을 모르며 갈수록 비대화 되어가는 반면 작은 교회들은 언제 문 닫을지 모를 위기의 연속. 교회 내의 ‘부익부빈익빈’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우리도 힘듭니다.” 작은교회들이 큰 교회에 도움을 요청할라 치면 돌아오는 답은 냉랭할 뿐이다. “저도 아쉬운 소리할 때면 99% 거절당했으니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요. 집 한 평, 땅 한 평 없는 서민들이 수두룩하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이가 찾아오면 단 돈 천원이라도 줘서 보냅니다.” 조 목사는 회개의 말을 던졌다.

“본인의 인격과 설교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목사란 자가 돈에 허덕이고, 교회 운영이 힘든 것을 교인들도 아니까요.” 조 목사는 탄식을 쏟아냈다. “교인들이 돈이 있어 헌금을 척척할 수도 없고, 교회 월세도 못내는 판에 목사가 생활비 받아갈 수도 없잖아요.” 조 목사는 이미 교회에서 숙식한 지 어언 6년이 지났다. 집에 가면 잠도 편히 자고 나태해지니,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조 목사.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오는가. 못 나서, 게을러서 그런가. 하느님한테 벌 받을 일이 있는가.” 자문에 자문을 거듭했던 세월. 그러나 고난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만’과 ‘자만심’이 깨져 나가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조 목사는 신용불량을 통해 오히려 ‘신앙의 힘’이 커졌음을 강조한다. “욥은 7남3녀를 둔 부자였는데 하루아침에 자식들 모두를 잃고 재산도 잃고 병이 들지만 단 한 번도 신을 원망치 않고 결국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게 돼요.” 조 목사가 요즘 자주 읽는다는 구약성경 ‘욥기’의 내용이다.

이윽고 기도하러 자리를 뜨는 목사.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노 목사의 어깨 너머 ‘십자가’가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사회양극화, 빈곤의 악순환, 신자유주의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간직하려는 많은 이들의 모습이 중첩됐다. 조 목사는 민주노동당의 도움으로 최근 법원에 파산신청 서류를 접수했다. “예전에는 ‘빨갱이’인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이젠 진정 서민들을 위한 당이구나 생각해요.”


걸망 하나 걸치고 떠나는 인생

갈색 개량한복에 동그란 모자, 걸망 하나 걸치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중년의 남자. 김 아무개씨(52)는 서울, 경기 일대를 돌며 노상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영업용 승용차에서 숙식을 해결했지만 올 4월 폐차한 이후로는 친구 집과 찜질방 등에서 잠을 청한다. 식사도 종로 낙원시장 골목의 1,500원짜리 해장국처럼 싸고 든든히 먹을 수 있는 곳만을 고른다.

81년 결혼한 김씨는 음식점 서빙 일을 하면서 92년에는 내집 마련도 할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던 95년, 전 직장동료의 소개로 들어간 다단계회사(자석요 판매)에 투자한 5천여만원을 몽땅 잃으면서 시련은 시작됐다. 지인들에게 입힌 피해는 물론이요 자책이 밀려 왔다. “너무 괴로워서 한강투신도 생각했어요. 결국 자식과 아내에게 무거운 짐을 얹혀줄까봐 발길을 돌렸지만요.”

새롭게 시작해보자며 마음을 추스린 김씨는 97년 7월 카세트테이프 판매를 시작으로 도장 영업, 쇼핑몰 영업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보았지만 불황의 골에 김씨의 빚은 점차 늘어만 갔다. 2000년 1천4백여만원의 빚은 2002년말 4천만원으로 불어났다. “능력 없는 사람! 못살겠다! 이혼하자!” 아내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급기야 2002년 남편의 연대보증을 서주는 대가로 아내는 집 명의를 본인 이름으로 바꿔 줄 것을 요구했고, 이혼 서류도 준비했다.

집을 내준 김씨는 딸의 교육비와 용돈의 책임을 떠맡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돈을 벌어 빚을 갚을까. 암담했죠.” 2002년 가을, 중고 승용차를 구입한 김씨는 전국5일장과 행사장, 축제장을 돌며 다시 도장 행상을 시작했다. ‘다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침 9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코피 터지게 일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부채는 5천여만원으로 늘어났다.

“이 많은 죄를 씻을 수만 있다면…”

지난해 4월 신용회복위에 채무조정 신청을 한 김씨는 66만여원을 8년 동안 분할상환 하는 변제확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해 1월 농협 대출금 2천여만원이 추가돼 상환액은 89만원으로 상향조정 됐다. 1백여만원 버는 돈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결국 김씨는 10개월을 넣고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4월 생계용 차량도 폐차되면서 김씨의 수입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만성위장질환인데도 병원에 가보지도 못합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빚부터 갚고 싶지만 도저히 수입이 따라가질 못하니까….” 김씨는 사업실패 이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님이 빚에 눌려 자살하면서 실의와 탄식이 깊어졌다. 그는 더욱 불교에 의지하게 됐고 불교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김씨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헌혈도 하고,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장기, 시신기증 약속도 이미 한 상태.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거겠죠. 이 많은 죄를 씻을 수만 있다면….” 김씨는 ‘아름다운가게’며 ‘서울노인복지센터’에 10원짜리 동전을 모아 후원하는 등 수입의 1%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눔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방에 내려갈 때면 어김없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는 김씨. 그는 과연 불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까? “99%가 (파산)서류만 넣으면 된다지만 1% 제외되는 경우에 해당할까봐 불안하죠. 더이상 빠져 나갈 곳도 없는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김씨이기에 최근 신청한 ‘파산’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인터뷰를 마친 김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대학생인 딸의 전화다. “어제가 대학등록금 마감날이었는데 못줬어요. 휴우~.” 다정하게 받았지만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는 김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답답한 나날. 걸망 하나 짊어 매고 어디론가 떠나는 김씨의 뒷모습이 쓸쓸하기만 하다. 오늘 김씨의 무거운 심신을 누일 잠자리는 어디일까?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불기자심(不欺自心)’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김씨. 길 없는 길 위에서 그는 한참이고 이 구절을 되뇌일 것이다.

48만여명 신청…무리한 변제 요구에 피해사례도 속속
해마다 신용회복위를 통한 ‘워크아웃’ 신청자는 급증하고 있다. 올해 7월중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한 개인채무자는 1만5,071명으로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 설립 이래 7월말까지 총 신청자는 47만9,151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채무조정완료자는 44만2,244명. 지난해 위원회에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한 신용불량자는 28만7,352명. 2003년도는 6만2,550명이다.


한편, 2000년 9월 개설한 다음 카페 ‘신용불량자클럽(cafe.daum.net/credit)’은 8월 현재 7만1천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개인파산, 개인회생, 워크아웃 등 신용회복에 관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워크아웃을 통한 변제의 실패사례 등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신용대란 자초한 정부·공적자금 못 갚은 채권기관 “비난 자격 없다”

지난 4월 신용불량자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이른바 ‘신용관리대상자’로 등록된 과중채무자(신불자)가 지난 6월 현재 343만명, 돌려막기 중인 예비 연체자가 최고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상태다. 정부가 채무자 구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가운데 법원의 개인파산·회생제를 제외하면, 개별 금융기관이나 신용회복위원회 등 민간 채권기관만이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부에서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도 일하지 않는다”며 과중채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몇몇 은행은 부채 500만원이하의 단독채무자에게 사회봉사나 직업훈련을 통해 채무를 경감하고 있지만, 이용 실적이 저조하다며 푸념이다. “3D업종에 종사하더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 채권기관과 정부측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과중채무자들은 빚을 갚거나 일하기 싫어 채권기관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많은 연체자들은 채권기관의 살인적인 추심 때문에 정규직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3D업종 종사는 물론, 가족과 친척, 친구까지 보증을 세우며 빚을 갚아 왔다. 채권기관은 채무자의 직장 방문, 잦은 전화, 가족에게 위협 등 다양한 불법 추심으로 연체자들을 일자리와 가정에서 쫓아냈다.


즉, 대부분의 과중채무자들은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채권기관 및 추심원에 의해 ‘일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기 때문에 빚 갚을 능력과 희망을 잃어버린 실정이다. 채권기관이 따로 직업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진 채무자는 비정규직이나 3D업종에서 일하며 밤낮없이 채권기관을 위해 살고 있다.


소액 채무자들에게 사회봉사를 통한 채무조정을 말하고 있는 채권기관의 입장은 신용불량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회봉사는 법원이 죄질이 가벼운 사람을 처벌하는 대신 내리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과중채무자들에게는 개인파산·회생제처럼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받아 경제활동으로 하루빨리 복귀하는 것이 가정과 이웃과 사회를 위해 가장 올바른 봉사다.


1997년 이후 금융기관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167조원이나 받고도 지금까지 절반조차 상환하지 못한 채 임원의 구속이나 처벌 등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런 채권기관이 수백만원의 빚을 진 소액채무자를 비롯해 과중채무자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카드경기 부양책을 통해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원죄가 있지만 과중채무자 구제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직 법원만이 원금 탕감 등 적극적인 채무자 구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9월에 시행되는 개정 대부업법은 여전히 연 66%의 고금리를 합법화 시켜주고 있다. 이는 곧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대부업체의 폭리행위를 여전히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연 66%의 이자율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장하고 있지 않는 폭리 수준이다.


정부와 채권기관은 과중채무자를 탓하기보다 자신들의 책임을 반성하고 적극적인 채무자 구제에 힘써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정부가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연체자들의 재기를 위해 법원 중심인 개인파산제, 개인회생제의 정착과 확산을 위해 정부가 홍보를 강화하고 실무지원 기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파산선고 등에 따른 신분상의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입법 예정인 80여개 직종에 대한 개정법안 통과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성년자·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 등에 대해 연체채권을 정리할 한시적인 특별법의 제정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폭리 수준에 달하는 이자율을 규제하고, 규제 대상을 모든 금전대차 거래에 확대하는 것은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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