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본격화된 위기 진단이 어느 정도 모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동지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요. 어떤 표현을 쓰든 어디에 방점을 찍든 관계없이,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큰 틀에서는 정답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실천입니다. 민주노총으로 실천하고, 산별과 지역단위로 실천하고, 단위현장에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남았습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정치조직들도 함께 실천해야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진짜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운동의 실천력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활동가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언제부터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9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노동운동이 기업 울타리에 갇혀 썩어가고 있을 때부터입니다. 자본가계급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만 임금인상과 기업복지를 안기면서부터입니다. 열정으로 펄펄 끓던 20~30대 활동가 대부분이 가족을 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부터입니다. 그 때부터 노동운동의 실천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회나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참 대단합니다. 석·박사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진단도 잘 하고 대안도 잘 찾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동지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운동의 희망도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겁니다. 정작 현실의 투쟁이 필요하면, 그래서 무언가 실천을 하자고 하면, 왜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많은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실천이 있는 날이면, 다들 무슨 약속이 그리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은 운동의 연륜과 내공이 입으로만 갔다고 하면, 제가 너무 냉소적인가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 권영길 후보가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라고 했지요. 이 말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한다면 어떨까요. 단호하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던져보고 싶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져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실천이 이제는 성가시지요. 나이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딸린 가족 생각하니 해고나 감옥이 두렵지요. 그래도 먹고 살만하니까 적당히 투쟁하는 현재가 불편하지 않지요”라고 말입니다. 좀 과했습니까. 억울합니까. 그렇게 느낀 동지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운동은 현실을 바꾸는 것, 그것은 실천으로 가능합니다. 이 말의 의미,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머리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발 안 받았고 폼나는 자리도 아니었지만, 또 권력이 되는 자리도 아니었지만, 꿋꿋하게 지키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지난날의 투쟁현장과 실천과정을 술자리 무용담으로만 써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한겨울 선전전이든 한여름 상경투쟁이든 가리지 않고 실천했던 지난날, 위원장이나 상집간부로 있건 조합원으로 있건 가리지 않고 실천했던 지난 날이 정녕 우리에게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세상이 좋아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노동운동을 한 것은 우리만의 복지와 임금, 우리만의 고용안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잘 아는 우리가, 동지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실천과 투쟁을 앞두고, 동태 눈깔 마냥 초점 없이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미꾸라지마냥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한단 말입니까.

아래로부터의 실천, 전국으로 확산돼야

제안하고 싶은, 그래서 동지들과 함께 하고 싶은 실천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그 가운데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만 하겠습니다.

첫째, 지금은 논의단계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실천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현대차에서 ‘노동조합운동 혁신실천단’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사회공공성과 비정규 실천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위기극복을 위해 참으로 소중한 움직임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엉망입니다. 위원장이나 현직간부이기에 내 코가 석자라 빠지고, 전직간부라 좀 쉬자고 빠지고, 나이 들었다고 빠지고, 잔업철야 한다고 빠지고, 평조합원이라고 빠지고, 표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빠지고, 정책담당이라 빠지고, 글쟁이라 빠지고, 차원 높은 정치조직 활동 한답시고 빠지고, 이래 빠지고 저래 빠지고, 온통 빠지기만 합니다. 노동운동혁신이든, 산별건설이든, 비정규직철폐든, 사회공공성이든,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실천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둘째, 총파업 규모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현재 민주노총 총파업 규모는 10만명 겨우 넘습니다. 이러니 노무현 정부가 제멋대로 신자유주의 확산시키죠.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2007년 복수노조시대가 오면, 그나마 대폭 줄어들게 된다는 겁니다.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은 회사 지시받는 반장노조가 만들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1만명 가까이 빠져 나가겠죠. 총파업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금속산업에서 현대차처럼 이리저리 이탈하면, 민주노총 총파업은 결코 10만을 넘기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7~8만 총파업이겠지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동안 참가하지 않았던 단위들이 필사의 노력으로 총파업에 나서는 것입니다. 사무직 중심이고 조합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어렵다고요. 직권중재 때문에 어렵다고요. 금속은 파업하기 쉽다고요.

그런데 지금의 금속노조들은 말입니다. 87년부터 지금까지 수천명 해고되고 감옥가고 죽어가면서 줄기차게 파업했습니다. 작업특성상 한 군데 모이기 힘든 조선소의 한 사업장은 점심시간 식당을 틀어막고 파업에 참가합니다. 금속도 조합원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업장 있습니다. 그래도 합니다. 그러한 결과가 자본이 이제는 감히 웬만해서는 탄압을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른 산별이나 사업장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조건과 상황이 어렵다는 것 인정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 타령만 하실 겁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금속산업과 일부 연맹의 몇몇 사업장에만 모든 짐을 맡기고, 모르는 척 하실 겁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안 되는 것,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50억 모금 성사, 비정규 운동의 출발

셋째, 비정규 조직활동가 양성을 위한 민주노총 50억 모금사업을 실천합시다. 8월29일 현재, 결의액수 11억9천여만원(23.99%)에 불과하고, 그나마 납부액수는 겨우 1억3천여만원(2.69%)입니다. 대다수 산별과 사업장이 아직도 결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앞으로의 비정규직 사업,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50억 기금으로 할 수 있는 사업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50억 기금사업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민주노총 전체가 비정규직 조직화사업을 전개하는 운동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돈 걷는 것 어렵지요. 결의하려면 조합원 눈치 봐야 하고, 다음 노동조합 선거에 유리한지 머리도 굴려야 하고, 막상 걷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민주노총과 산별 방침에 대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시간 지나길 기다리며 그냥 뭉개고 넘어가실 겁니까.

치사해서 그렇게는 하지 않으시겠죠. 정 안되면 위원장부터 10만원 결의하고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호소하면, 착한 조합원들 미안해서라도 동의할 겁니다. 사업장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보다 쉬운 기금 모금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비정규직 사업에 동참하실 겁니까.

글이 좀 거칠었습니다. 어느 한 무식한 활동가의 노동운동에 대한 충정이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정말이지 우리 이제부터라도 책임성 있게 노동운동 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을 떠들고 투쟁을 떠들었으면, 실천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입으로만 떠들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는 것,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제는 지긋지긋할 때도 되었습니다. 자신의 노선대로, 자신의 약속대로, 그대로만 실천합시다.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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