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상하다. 일명 'X파일' 수사를 맡은 검찰은 테이프 내용에 담긴 정경언 유착 의혹은 덮어둔 채 불법도청 부분에 대한 수사에만 주력했다. 검찰의 첫 소환 대상자는 엉뚱하게도 도청테이프를 폭로한 이상호 MBC 기자였다. 삼성에 대해서는 불법대선자금을 전달하고 검찰을 매수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아니라 불법도청 ‘피해자’ 신분에 비중을 둔 조사를 벌였다.

‘불법으로 취득한 자료나 정보는 재판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독과독수론’을 펼치며 여론의 테이프 내용 수사 압력을 애써 피해오던 검찰은 최근 노회찬 의원이 ‘떡 값 검사 리스트’를 공개를 계기로 특별검사제 도입의 당위성이 높아지고, 검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강해지자 허둥지둥 X파일 내용 수사에 들어가는 시늉을 보였다. 천정배 법무장관도 97년 대선자금 수사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민주노동당과 여론의 공세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25일 갑자기 수사방향을 다시 ‘도청’쪽으로 틀어버렸다. X파일 내용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의사도 직간접적으로 밝혔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들과의 오찬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대선후보들에 대한 수사는 상식 밖”이라는 노 대통령의 한 마디가 검찰 수사의 방향을 송두리째 뒤틀어버린 셈이다.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의 수사권에 간여하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혀 왔다. 지난해는 공개적으로 ‘검사들과 대화’를 하는 등 검찰 수사권 독립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이 모두 빈말이었음을 보여줬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수사 방향을 틀 정도의 검찰이라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정치 검찰'이 따로 없다.

특히 이번 사건을 보면서 특검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부여당의 속 깊은 이유가 짐작된다. 자신들 입맛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검찰을 놔두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검을 받아들일 바보가 어디 있나. 정-경-언-검 유착은 어두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형행인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