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사회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운동진영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산별노조로 전환을 앞두고 기업임금과 기업복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급적 의제인 동시에 계급연대의 매개고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운동진영의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공공성은 아직도 개념 정립이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과제이다. 교육공공성, 의료공공성 등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반자본주의 혹은 탈자본주의적 요소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회공공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쉽지 않으며, 사회공공성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 역시 아직까지는 제한적이다.

사회공공성 투쟁이 갖는 의의

사회공공성 투쟁이 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제기된 배경은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기본적인 사회작동원리로 등장하면서부터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이윤중심의 시장원리가 기본원리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이윤중심의 시장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영역이 필요하다. 소위 공공부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제대로 되지 못한 조건에서, 자본의 정상적인 축적메카니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으며, 동시에 자본축적과정에서 배제되는 노동과 민중들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포섭기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이 집적과 집중을 통해서, 즉 독점자본이 구축된 조건과 신자유주의 체제는 케인즈주의적 유산인 공공부문이 가지는 포섭기능을 포기하고 새로운 자본축적의 대상이라는 측면만을 주목한다. 자본간의 치열한 경쟁은 새로운 시장으로서 공공적 영역을 요구하고 마침내 수정자본주의로서의 조절기능을 낡은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갖는 무정부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점이다.

현 단계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이 가지는 의의는 이렇다.

우선 첫째로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과제를 넘어서려는 이행강령적 요소를 담고 있다. 조돈문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국가주도시장경제’에서 주주자본주의적 유형인 ‘자유시장경제’로 이동하고 있는데 북유럽형 모델인 ‘조정시장경제’라는 완충지대를 거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체제로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공공성 투쟁은 조정시장경제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를 상대로 해야 하고 법과 제도, 국가예산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치투쟁이라는 측면을 가지며 노동자,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과 참여를 높여낼 수 있다.

세번째로 그 결과가 특정기업의 노동자나 특정계급에 의해 전유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급계층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계급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유력한 매개가 된다.

넷째로 조직화된 기업별노동자들만의 의제가 아니며 노동계급 전체의 의제라는 점에서 계급적 단결과 산별노조 운동의 핵심적인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사회공공성 투쟁은 공공적 영역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우선 기업임금과 기업복지 중심의 체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확대하지만 사회임금과 사회복지 중심체계로 바뀌면 그것은 현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공적 영역에서 진행 중인 민간위탁과 외주용역의 중단이 필수적 전제라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확산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민간위탁과 외주용역은 공공적 영역에 시장논리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국 노동자, 민중들이 제공받아야 할 공공서비스의 질과 수준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중단시키는 것은 사회공공성 투쟁의 한 영역이다. 이와 함께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비시장영역을 확대해야 하는데, 이는 공공적 영역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에서는 공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전체 고용의 40~5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10%선에 머물고 있다는 점과 비교된다.

사회복지 확대투쟁? 사회개혁투쟁?…오류와 한계 극복해야

그런데 사회공공성 투쟁의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에 있다보니 몇가지 오류와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회공공성 투쟁을 사회복지의 확대투쟁으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통신, 교통, 물 등을 포함하는 기간산업과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투쟁이 주요과제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공서비스는 현대 사회에서는 기본권이며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측면이 배제되면서 협소한 사회복지투쟁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다음으로 사회개혁투쟁과의 차별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개혁투쟁’이 일반 민주주의, 즉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과제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이라면 ‘사회공공성투쟁’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과제, 즉 사회화 투쟁으로 이행하는 ‘중간단계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공공성 투쟁이 곧 바로 반자본주의 혹은 탈자본주의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적 영역을 확대하면서 적어도 공공적 영역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소유하지 않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적어도 공공적 영역에서 사적 소유를 배제하고 동시에 관료적 통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민주화를 필수적 요소로 해야 한다.

실제 한국통신의 완전 사유화 이후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물론 설비투자의 축소와 주주배당의 증가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폐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통신산업의 공공성 문제가 결국은 소유문제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의 사회공공성 투쟁은 소유와 지배구조의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하는 것을 방기하고 있다. 병원의 90% 이상을 사적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상의료 투쟁이 오히려 사적자본의 유력한 축적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사회공공성 투쟁이 아직도 담론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료와 교육 등 비교적 분명한 영역을 제외하면 사회공공성 투쟁이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공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제외하면 ‘좋은 얘기지만 실천적으로는 거리가 있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은 현장의 요구로 전환될 수 있는 구체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에너지의 공공성’을 매개로 노조와 환경단체가 연대하여 구성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와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궤도와 버스노동자들의 활동은 그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시도는 또한 민주노동당과 결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자대중조직의 새로운 정치참여방식이라는 결과도 기대할 만하다.

사회공공성 투쟁은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야 하는 현 단계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적인 의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공공성 투쟁이 정립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갖는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과 더불어 중단된 사회공공성 담론에 대한 이론적 정립작업의 재개, 현장의 실질적인 투쟁의제로 만들기 위한 구체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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