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으로 기업별노조의 한계에서 드러나는 지속적인 조직률 하락과 계급적 연대의 부족으로 인한 노동운동의 정체성 상실, 아울러 이로 인한 사회적 고립을 꼽는다. 여기에 이같은 현실에 안주하는 노조간부들의 안일과 나태, 그리고 운동대오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더해져 노조운동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이같은 위기를 벗어나 사회진보와 변혁에 앞장서는 중심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투쟁의 요구와 형태, 그리고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내년초 무상의료, 무상교육쟁취를 위한 이른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된 투쟁으로, 수세가 아닌 공세적 투쟁으로, 전체 노동계급 나아가 모든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보고자 함이다.

이 시기의 이와 같은 투쟁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농민과 빈민 등 전체 민중진영과 연대하고, 시민사회의 지지를 획득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투쟁이다. 더욱이 민주노동당의 의회투쟁과 대중투쟁이 적절하게 결합된다면 상당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사안이다. 아울러 이는 분열된 운동진영의 통일적인 행동을 통해 진보운동의 한 단계 도약을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 고립을 벗어나 사회진보와 변혁의 중심대오로서 그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농민단체를 비롯한 민중진영과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범국민대책기구의 구성을 준비해나가는 한편, 조합원에 대한 교육과 선전사업을 준비해가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주요한 노선으로 사회개혁투쟁,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이 복원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주의 투쟁의 보편화, 극복해야

민주노총은 출범 초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재벌해체, 언론개혁, 교육개혁 등 사회개혁과 진보를 향한 투쟁을 주요노선으로 정립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역별 연대기구와 업종, 산업별 협의체가 만들어지고, 그 성과로써 출범한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 나아가 모든 민중들의 염원을 앞장서 대변하는 투쟁의 중심부대로서 활동해 왔다. 그리고 이를 위한 주요노선으로 사회개혁투쟁이 설정되었다.

당시 이같은 노선은 대중과 괴리된 것이 아니었다. 중앙은 현장의 요구를 모으고, 또 현장은 중앙이 설정한 사업을 받아 안고 실천해 나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각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상급단체 따로, 단위노조 따로가 아닌, 전체의 단결된 힘으로 사회개혁투쟁은 이루어졌다.

명실상부하게 ‘공장을 넘어 사회전체로’ 노동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노동운동이 단위사업장의 실리주의를 벗어나 사회전체의 진보와 변혁을 위한 세력으로 그 틀을 잡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계급, 모든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조직으로 그 위상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이같은 기조는 흔들렸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노선을 개량적인 투쟁으로 폄하하기도 했고, 또다른 일부는 현장기반의 열악함을 이유로 고용안정과 임금인상과 같은 조합원들의 피부에 보다 직접 와 닿는 투쟁노선으로 방향을 틀어갔다. 그후 수년간 이러한 입장이 단위사업장의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잡으며, 노동운동은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운동으로, 임단투 위주의 사업으로 고착화 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으로, 노동운동은 정체성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한 실리주의 투쟁이 노조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귀족노조,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보수언론의 노조에 대한 비난이 판을 치고 있다. 물론 임금과 고용같은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면적인 투쟁으로는 노동운동이 사회진보의 중심부대로서 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조차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 지난날 노동운동의 경험이다.

사회개혁투쟁-사회공공성강화투쟁, 문제의식은 같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의 사회개혁투쟁의 방기는 그 영역이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대체되었고, 시민단체의 활동은 사회적 담론을 주도해가며 사회적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제 노조는 임단투만 하는 조직으로, 속되게 표현해서 제것밖에는 모르는 조직으로, 시민단체만이 사회진보와 발전을 담당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시민사회에 알게 모르게 폭넓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사회진보의 중심세력으로서 노동운동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되었다.

민주노총의 고립현상과 단위사업장의 현실안주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민주노총은 이제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본래의 방향으로, 초기의 노선으로 회귀하게 된다. 지금 제기되는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은 민주노총 초기의 사회개혁투쟁의 새로운 버전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 담론이 지배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고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여 이를 주요요구로 정식화 한 것이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이다. 기본적으로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은 사회전체의 개혁과 진보를 향한 요구를 담고 있다. 그 점에서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은 사회개혁투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개혁투쟁의 계급적 성격이 모호하고,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속에서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사회공공성 강화의 측면이 좀더 부각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사회개혁투쟁이 사회공공성투쟁으로 대체되었지만,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과 본질은 기본적으로 같다. 물론 정세를 보는 관점에 따라 소위 민주개혁과제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 공공성 의제를 우선순위로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동일하다고 본다.

한편 이를 개량적인 투쟁으로 폄하하는 것은 일면적인 사고다. 개량을, “혁명을 만류하고 약하게 하고 또한 소멸시키기 위해, 혁명적 계급의 힘과 정력을 세분하고 그 의식을 흐리게 하기 위해 지배계급이 행하는 양보”로서만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작은 개량일지라도 대중적인 성격을 띤 투쟁의 결과로서 쟁취하고, 따라서 그것에 의해 단결과 투쟁이 지니는 중대한 의의를 대중에 인식시킬 수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노동운동을 일보전진 시킬 수 있다.

지금 현 시기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작은 승리라도 승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도 안 된다’는 내부의 패배의식을 불식시키고, 투쟁에의 믿음, 승리에의 믿음을 모든 노동대중에게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패배의식은 운동을 냉소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나태에 대한 핑계거리로 작용함으로써 운동의 단결과 발전을 더욱 방해한다.

차이만 부각, 정략적 분파의식 산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의 무기력을 개탄하면서 위기의 원인으로 몰계급적 운동노선을 꼽는 그룹이나, 노동운동의 일대혁신을 위해 단위사업장의 임금인상투쟁이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투쟁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 그룹이나, 무상의료·무상교육 쟁취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준비 중인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사소한 차이를 극복하고, 크고 풍부하게 단결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기본적인 원칙이 아니겠는가.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은 정략적 분파의식의 산물이다. 지금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대중적 관점과 이를 통한 단결이다. 그 기반 위에서 노동운동의 위기도 극복될 수 있다.

아울러 노동운동의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투쟁요구, 형태,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운동대오의 혁신이 필요하다. 인신공격성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같은 것을 찾기보다는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는 운동이 진일보 할 수는 없다. 정세를 공유하고, 상황 인식을 일치시키고, 그리고 그를 통해 공동의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민주성의 원칙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간부들의 희생과 헌신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때, 운동에 대한 전망과 함께 강화된다. 승리의 조건을 만들고, 모두가 함께 하는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자. 우리는 다르지 않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