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은행의 수장들과 4만명이 넘는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표가 한 자리에 앉아 비정규직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논의의 결과물에 상관없이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금융노조 대표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중앙위원회에서 '반대'를 하지 않고 직무대행에게 위임한 것은 노동조합의 '대의'와 '명분'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조 대표자들의 생각과 달리 마음은 비정규직과는 멀어져 있는 것 같다.
비록 29일까지 결정기한을 두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분위기는 '불참'쪽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회의가 끝난 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누구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마치 '비정규직 대표의 교섭위원 참여는 처음부터 어려웠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듯이 보였다.
오히려 애초부터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였을 수도 있다. 더구나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지 않은 '상징적 사건'을 위원장도 아닌 직무대행이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노조 관계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비정규직 대표자의 교섭위원 참여 건 때문에 가뜩이나 늦어진 산별교섭 일정에 차질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3개월 넘게 일정이 늦어진 것은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닌 '정규직' 노조의 선거후유증 때문이다. 또 그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어 노조는 제대로 전열을 갖추지 못한 채 산별교섭이라는 전장에 나서게 됐다.
올 한해 금융노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이 다뤄진다. 노사정 갈등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의 포문을 금융노조가 비정규직 대표자의 교섭위원 참여 결정으로 열 수는 없을까. 그동안의 내부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