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노조 산별교섭에서 은행장과 비정규직 대표자가 마주 앉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금융노조는 오는 29일 산별교섭을 앞두고 36개 금융기관장들과 노조 대표가 교섭을 벌이는 자리에 비정규직 대표자를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위원장 직무대행에게 위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은행의 수장들과 4만명이 넘는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표가 한 자리에 앉아 비정규직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논의의 결과물에 상관없이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금융노조 대표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중앙위원회에서 '반대'를 하지 않고 직무대행에게 위임한 것은 노동조합의 '대의'와 '명분'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조 대표자들의 생각과 달리 마음은 비정규직과는 멀어져 있는 것 같다.

비록 29일까지 결정기한을 두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분위기는 '불참'쪽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회의가 끝난 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누구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마치 '비정규직 대표의 교섭위원 참여는 처음부터 어려웠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듯이 보였다.

오히려 애초부터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였을 수도 있다. 더구나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지 않은 '상징적 사건'을 위원장도 아닌 직무대행이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노조 관계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비정규직 대표자의 교섭위원 참여 건 때문에 가뜩이나 늦어진 산별교섭 일정에 차질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3개월 넘게 일정이 늦어진 것은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닌 '정규직' 노조의 선거후유증 때문이다. 또 그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어 노조는 제대로 전열을 갖추지 못한 채 산별교섭이라는 전장에 나서게 됐다.

올 한해 금융노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이 다뤄진다. 노사정 갈등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의 포문을 금융노조가 비정규직 대표자의 교섭위원 참여 결정으로 열 수는 없을까. 그동안의 내부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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