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정치참여는 오랫 동안 정치개혁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는 여성할당을 아예 선거법에 명시할 정도이고, 노선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여성이 현직 정당 당대표를 맡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이렇듯 현실이 됐다. 그러나 여성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군분투'와 '좌충우돌'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했을까.

그것은 창당 때부터 여성의 정치참여를 당헌과 당규에 명시했던 민주노동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 광역시의원으로, 또 한 명은 지구당위원장이자 총선후보, 대변인으로 일찌감치 여성의 정치참여를 실천해 왔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궤적은 남성우월주의의 가부장 문화와 신자유주의의 비정으로 고통받는 우리 여성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민주노동당의 윤난실 광주광역시 의원과 홍승하 대변인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로 했다. 쉽지 않은 원고 청탁에 흔쾌히 동의해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편집자 주>



대변인이라 기자들과 전화 통화가 잦다. 통화 중에 가끔 아이 울음소리가 끼어들 때가 있다.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는 길에서도 그렇고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가 그렇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기자가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려 해 미안하고 당황스럽지만 실은 보채는 아이 달래기가 더 바쁘다.

주로 저녁에 잡혀 있는 지역위원회 회의에는 아이를 데려갈 때가 많다. 따로 아이를 봐줄 사람도 장소도 없어 아이를 안고 회의를 하거나 아이가 돌아다니면 같이 돌아다니며 할 말 있으면 하곤 한다. 주변이 온통 아이가 어질러 놓은 물건과 낙서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잠시 회의가 중단되기도 하고 다 같이 아이를 어르다 다시 회의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내 아이를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는다. 야외 행사라도 가게 되면 아이는 내 손을 완전히 벗어난다. 다들 내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고 먹이고 보살펴 준다.

아이의 낮잠 시간은 논평 쓰는 시간

대변인이 가장 한가한 때는 토요일이다. 일요일에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이 토요일 오전까지 아이를 봐주지만 토요일에는 어린이집에도 안 보내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 그래서 남편도 토요일만큼은 아이에 대한 부담 없이 자기 일정을 잡는다.

남편도 없는 토요일 오후 긴급한 사안이 발생하면 아이와 함께 일처리를 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혼자 잘 놀아도 내가 급한 일이 있을 때 아이는 절대 혼자 있지 않고 매달린다. 아이를 업고 일을 하거나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해야 하는데 업으면 내려오겠다고 하고 잠도 안 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일을 할 요량으로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그날따라 다른 사람 눈만 마주쳐도 운다.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놀다가 늦은 낮잠이 들었을 때에야 논평을 써 올렸던 기억이 있다.

19개월 된 시연이가 이렇게 나와 함께 생활한 시간이 이제 막 3개월을 넘겼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성장이 빠르고 말도 빠른 시연이가 태어나서 나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 불과 1년 반을 자라기까지 우리 부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온 가족이 총선에 나서다

2004년 총선에서 나와 남편은 서울 영등포갑과 강서을에서 나란히 출마했다. 물론 우리 부부가 두 지구당을 장악(?)하려고 출마를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 영등포갑과 강서을에서 각각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우리의 원래 계획이 결혼 이후에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2003년 우리의 결혼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당원들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재미있는 논란도 많았다. 그 중 우리 부부의 활동 근거지가 영등포로 합쳐질 것이냐 강서로 합쳐질 것이냐도 관심의 초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활동 근거지를 합치지 않고 각자 예정했던 길을 그대로 가기로 합의하고 결혼을 결정했다.

사람들은 내가 임신한 채로 2003년 10월 치러질지 모르는 영등포구청장 재선거(그해 9월말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아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출마의사를 밝힌 것에 더욱 놀랐으며(나는 임부복 입고 선거운동 하겠다고 했다), 2004년 출산 예정에도 불구하고 4·15 총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더더욱 놀랐으며, 뒤늦게 남편까지 강서을 지역에 출마를 결정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혀를 내둘렀다.

못 알아보도록 커버린 아이

우리 부부가 함께 출마를 결정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2004년 1월, 서른여덟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만삭으로 총선 선대위 출범식 등 당 내외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며 지구당 활동을 계속했다. 지병으로 돌연 세상을 떠나신 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장지에 떠나보낸 날 아이를 낳았다.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고 한 달만에 젖 먹이던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본격 선거준비에 돌입했다.

남편도 후보였기 때문에 돈과 인력이 필요한 선거에서 그야말로 각자 ‘플레이’를 해야 했다. 눈물이 핑 돌만큼 젖몸살을 앓았던 것 외에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움직였다. 가끔 밤늦은 시간에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고받으며 정보 소통을 한 정도가 우리 부부가 협조한 것의 전부였다.

내가 아기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출마한 사실을 알았는지 유권자로부터 ‘가정을 등한시 하는 문제 있는 사람 아니냐’는 항의 전화가 선본에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만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성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은 기이한 뉴스였다. 배불러서 임산부로 출마했으면 어땠을까? 게다가 부부가 함께 출마한 것은?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예상한 것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나란히 낙선하였고, 선거 마무리를 다 마친 후에야 아이를 보러 갈 수 있었다. 갓 태어났을 때의 발긋한 피부가 하얗게 살이 올라 언뜻 봐서는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커버린 아이를 안았을 때 미안함이란….

이후 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고 지역에서 활동계획을 모색하던 중 김혜경 대표의 요청으로 지난해 7월 대변인을 맡게 됐다. 선거 치를 동안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했던 게 다시 연장되고, 돌 지나고 데려오겠다는 시한을 한 번 더 연장해, 지난 5월 아이를 데려오기까지 아이 얼굴을 한 달에 한 번 보는 대가를 치르며 애먼글먼 속타는 일도 많았던 시간이 벌써 1년 반이다.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 부부는 끝없이 이런 갈등을 겪으며 살게 될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잔병치레도 많지 않고 까탈을 부리지도 않는다. 돌발 상황이 많은 내 일정에 맞게 남편이 아이 양육에 적극적인 것도 고마운 일이다.

당은 중점사업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당직자 부부의 수입으로는 비교적 저렴하다는 구립어린이집 비용도 부담스럽고, 우리 부부가 아무리 일정 조정을 해도 시간 외 탁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러나 이건 나의, 우리의 문제다. 내 문제라서 더 절박한, 그리고 나보다 더 어려운 조건의 여성들이 더 많기 때문에 더 시급한 문제다.

당과 함께 성장하는 대변인이 되고 싶다

가끔 기자로부터 “대변인 자리가 이름도 많이 날리고 정치인으로 성장할 절호의 기회인데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되새기는 게 당을 처음 만들면서 우리가 가졌던 원칙과 꿈이자 당 만들기 이전에 우리가 바라보며 바꾸고자 했던 ‘정치’다.

민주노동당은 10석으로 권위주의의 벽을 허물고 국회를 정책대결로 이끄는 등 국회와 정치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에 정당의 대변인 역할의 변화까지 더해지도록 하는 게 작지만 큰 나의 고민이다. 독설과 정쟁으로 입심을 자랑하던 대변인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당의 정책방향에 맞게 반드시 실천할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이 대변인의 역할이어야 한다.

힘들고 고단한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줄 샘물을 쏟아내는 게 대변인의 역할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대변인의 역할이다.

제3당의 대변인으로서,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창당 초기 당직자들의 대언론 활동과 진보정당에 대한 당원과 지지자들의 열망을 가슴에 새기며 당과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게 내 작은 소망이다.

지난 1년 분초를 다투며 글과 말을 쏟아내야 하는 대변인 노릇을 하느라 긴 호흡으로 현안을 바라보고 나를 되돌아 볼 틈이 없었다. 지면을 나눠 쓰자고 제안해 온 매일노동뉴스에 감사드리며, 대변인으로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 당과 현안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