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지적이라는 감이 없지도 않지만 내년도 노사관계에서 두드러진 변화의 하나는 공무원노조가 단체교섭을 시작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 연말 공무원 노조법이 노조의 파업을 뒤로 하고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공무원 노조에 대한 입법적 토대가 일단은 완성된 결과이다.

공무원 노조법에 관해서는 제각각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단체교섭구조만큼은 ‘웬일이냐’ 싶으리만치 잘 설계되어 있다는 건 ‘입이 삐뚤어졌더라도’ 사실이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공무원 노조가 죄다 단체교섭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임금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본의 공무원이나 독일의 정통 공무원(Beamte)은 단체교섭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에도 경찰, 소방수는 물론이거니와 교사, 간호사, 의사, 판검사 등은 제3의 기구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 프랑스에서는 임금교섭이 이루어지나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설사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공무원은 임금교섭권이 없으며 50개주 가운데 23개 주에서만 단체교섭권이 인정되고 있다.

공무원 단체교섭구조 설계는 잘 돼있지만

한국의 공무원 교섭구조가 잘 짜였다는 것은 하부 단위의 교섭은 물론 중앙집중적인 단일교섭기구의 창출까지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른바 선진국 공무원의 단체교섭구조가 급속히 분권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집중적인 구조를 보장한 것은 앉을 자리에 방석까지 깐 격이라는 게 필자의 느낌이다.

그러나 단체교섭에 관한 법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설계되었다고 해서 교섭구조가 제도적으로 완성되었다거나 앞으로의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내년도의 교섭은 첫 교섭이다. 따라서 법제도가 규정하지 않은 지점에 대해서는 새롭게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첫 단추를 꿰는 중요성을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양당사자인 정부와 노동조합의 사전적인 준비가 필수적이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 과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 번째는 누가 교섭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복수노조가 존재할 경우 정부는 교섭창구가 단일화 될 때까지 교섭을 거부할 수 있다. 따라서 노조의 통합을 포함하여 교섭창구를 어떻게 단일화 할 것인가는 노조의 부담으로 남아있다.

이와 더불어 전국 단일교섭단위가 형성될 경우 지자체나 각 헌법기관의 사용자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는 정부가 해결할 몫이라 할 것이다(독일처럼 ‘지자체 사용자 협의회’의 구성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와 정부, 단체교섭 사전적 준비는 필수

두 번째는 무엇을 의제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에 따르면 공무원의 보수· 복지 등 근무조건에 관한 사항만이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교섭의 대상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노조의 전략과 관련하여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이와 더불어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여전히 남는 과제이다. 이에 대해 기존노조는 노사협의회라는 공간이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수상이 주재하는 ‘국가 공무원 최고회의’를 통해 해결한다.

단체협약의 내용 중 법령·조례 및 예산에 관한 사항은 교섭의 대상은 되나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교섭의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단지 정부의 성실노력의무에 맡겨 둘 것인가, 아니면 가령 정부에 대한 권고로 삼아 협약을 맺을 것인가? 교섭권과 체결권 사이의 빈 공간을 메우는 일은 정부의 ‘진정성’과 이를 이끌어 내는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일 것이다.

세 번째는 교섭의 단위이다. 모든 교섭을 본부에서 관장하기보다는 지부특수적인 사안은 중앙의 책임 아래 지부에 위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노조 중앙과 지부간의 관계설정이 관건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로서는 ‘조정된 분권화’(coordinated decentralization)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중앙의 집중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지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영국의 지방정부 교섭구조에서 보듯 이는 아래(현장)로부터의 통제에 바탕을 둔 중앙의 강화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공무원노동관계조정위원회에서 조정 및 중재를 담당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앙노동위원회 차원에서는 위원의 위촉 및 운영절차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조정이나 중재 외에도 미국의 연방노동관계위원회(FLRA)처럼 교섭단위의 결정이나 교섭 가능한 의제의 판단과 같은 업무영역의 확대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준비만이 교섭구조를 완성할 것

노동조합은 어쩌면 단체교섭을 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조의 장기적인 발전전략도 사용자(정부)와의 관계를 단체협약을 통해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 상태에서 노동조합이 공무원 노조법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그 개정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여겨진다. 정부로서도 ‘까마귀가 날아야 배가 떨어진다’는 심정에서 벗어나 노조를 파트너로 삼아 공무원 사회를 개혁하여 나간다는 사전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정부의 철저한 준비와 사전적인 공감대의 형성만이 내년도 공무원 노사관계의 안정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노정관계가 전쟁상태를 방불하듯 대치중이라 하더라도 내 코도 석자인 마당에 내일에 대한 준비를 놓칠 수는 없다. 지난주 공무원 노조의 워크숍에 다녀온 소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