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이 지난 12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10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 총회의 불참을 선언하고 ILO에 개최지 변경을 요청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양대노총은 만일 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경우 국제노동계에 동조 불참을 호소하는 것과 함께 총회 개최에 맞추어 이에 대항하는 집회 등의 행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대노총은 8월12일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에게 지역총회 불참 결정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공식서한을 발송하였고, 다음주에는 ILO 본부를 직접 방문하여 후속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양대노총이 이러한 계획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국제노동기구 아태지역 총회는 새로운 개최지를 찾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국제노동기구가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노동이 정부와 사용자와 함께 공동구성주체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모든 의사 결정은 회원국의 정부 대표, 사용자 대표, 노동자 대표들이 공동으로 함을 원칙으로 한다. 정부, 사용자, 노동자가 2대1대1의 표를 행사하지만 어느 한 쪽이 반대하게 되면 표의 유무와 상관없이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제노동기구는 개최국의 노동자 대표인 양대노총이 불참을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개최지 변경을 요청하고, 나아가 총회가 예정대로 한국에서 개최되게 되면 대항 행동을 전개하겠다고 하면 총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을 심각하게 재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에 참여하는 각국 노동자 대표는 총회와 이사회 차원에서 ‘노동자그룹’을 형성하여 의사결정과정 참여를 비롯하여 모든 사업에의 참여를 조율·조직하고, 상근간사를 두고 일상적인 활동에 필요한 연락과 조정을 한다.

노동자그룹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은 노동조합의 국제총연합체인 국제자유노련이 맡고 있다. 한국의 양대노총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자유노련은 한편으로는 양대 노총이 제기하는 문제를 국제노동기구 내에서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노동기구를 구성하는 한 축의 대표조직으로서 국제노동기구의 의사결정 기구의 운영에 관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십여년 간 권고 불구 문제개선 노력 부족

양대노총의 불참 선언과 개최지 변경 요구는 국내 노사관계 과정에서 지속되고 새롭게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비추어 볼 때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여년 간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아직 개선하지 않고 있다. 한 예로서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쟁의에 대한 ‘직권중재’ 제도와 관행, 업무방해 적용에 따른 노조 활동가의 구속 등 국제노동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에 대해 가시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가 한국에서 아태지역 총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은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전향적인 의지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되었겠지만 지금까지 실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점 그리고 최근 악화된 노사관계는 한국 정부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며, 이에 대해 양대노총은 물론 국제 노동계의 문제 제기의 정당성은 부정할 수 없다.

국제자유노련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그룹이 조직적 차원에서 동조 불참을 결의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대표들은 유치국 노동자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나아가 노동조합운동에서 불문율로 되어 있는 피켓라인을 뚫고 회의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어느 한 사업장의 노동조합이 쟁의를 전개하면서 사업장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면 다른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은 그 통제선을 건너지 않는다는 연대 원칙).

따라서 문제가 터져 나온 이상 국제자유노련/노동자그룹은 총회의 개최지 변경 요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 사무국은 세 축의 구성 주체 가운데 하나의 축인 노동계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총회가 유치국 노동자의 항의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예고된 상태에서 예정대로 강행했을 때의 부담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제노동기구는 ‘시애틀 투쟁’을 비롯한 국제적인 항의 대상이 되었던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주요 항의운동 주체인 노동자조직이 직접 참여하는 국제기구이다. 이 결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국제노동기구의 역할은 지난 비정규법안 협상 당시의 인권위원회의 역할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국제노동기구는 유치국 노동자들의 항의 행동의 직간접적인 대상이 됨으로써 야기되는 정치적인 의미와 파장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최 예정 회원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새로운 개최지 선정에 따른 제반 실무적 문제, 장소/일정 변경에 따르는 외교적 문제, 재정 손실 등 상당한 차질에도 불구하고 국제노동기구는 아태지역 총회의 개최지와 개최시기를 바꾸는 결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개최지 변경 결정 시 정부 외교적 타격 심각

이번 아태지역총회는 국제노동기구 아태지역본부의 지난 4년간의 사업을 점검 평가하고 향후 4년간의 사업 기조와 방향을 정해 아태지역본부의 사업 계획을 승인하고 그것을 집행하도록 위임하는 공식 절차이다. 이번 지역총회에는 몇몇 회원국 국가수반의 참여와 특별회원국 노동부장관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국제노동기구 지역 총회는 코엑스와 같은 국제행사장에서 수시로 열리는 많은 국제행사와 같은 단순한 국제 행사가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결정과 참여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국제기구의 의사결정회의로서 중요한 외교적 행사이다.

국제노동기구 아태지역 총회의 개최지 변경이 실제로 결정된다면 한국 정부는 치명적인 외교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또는 무감각한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개최지 변경이 심각하게 논의된다는 상황만으로도 노동부는 이미 상당한 외교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상황은 국제노동기구 사안을 전담하는 노동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외교통상부 등 정부 전체 차원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어 그 여파는 상상 외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국제노동기구 아태 지역 총회 불참과 개최지 변경을 둘러싼 상황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종료될 수도 있다. 이번 상황을 맞이한 모든 행위자들은 급작스러운 상황의 불확실성, 시간의 촉박성, 그리고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의 부재에 대한 무력감 등의 압박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악화될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리고 국제기구의 의사 결정과 업무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상황에 대한 결정은 빠른 시일 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 양대노총의 불참 결정은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 수정과 노동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단행되었다. 만일 개최지 변경이 결정된다면 정부에 향해 이번 상황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계의 줄기찬 요구에 맞서 정책 방향과 내용 그리고 장관의 올바름을 일관되게 고수해 온 정부의 입장에서는 원칙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감스러운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정치’ 과정이 국제적인, 외교적인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방치했다는 부담을 타개하는 방법을 양대노총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서 찾으려 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국제노동기구가 유례없는 개최지 변경 결정이 현실화 된다면 이번 상황의 계기가 된 양대노총의 노동부 장관의 사퇴 요구와 무관한 전혀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전 과정에서 야기될 국내적, 국제적 파장은 단시간 내 진정되거나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모든 관련 주체들에게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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