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16일부터 매일 여성칼럼인 <여성과노동>을 게재합니다. <여성과노동>은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참여하는 노동, 정치, 부문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또한 비틀리고 소외된 우리사회의 모습에 ‘조용히’ 일갈하는 목소리부터 제도개선 등 정책분야까지 폭넓은 목소리도 담아낼 것입니다.

‘부문현장’에선 각 부문 참여의 현장을 여성의 시각으로 담담히 담아낼 예정입니다. 노현기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 김중미 소설가, 유의선 빈곤연대(준) 사무국장, 김기선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께서 글을 보내주시기로 했습니다.<편집자주>
 



‘짐승만도 못한 놈’, ‘버러지 같은 놈’. 흔히 인간성이 되먹지 못한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아마 짐승이나 ‘버러지(애벌레)’들이 들으면 대단히 기분 나쁠 것 같다. ‘잡초(雜草)같은 인생’이라는 말을 안 좋게 쓰이긴 마찬가지.

한 10여 년 전 한 생태학자가 “어떤 사람이 잡초라고 하더라. 식물들은 다 필요해서 있는 것들인데 지 놈들이 잡놈이지”라고 열변을 토했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새삼스레 옛날에 들었던 강의이야기를 들춰낸 것은 아직도 새록새록 기억이 날만큼 옳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잡초’, ‘짐승’, ‘버러지’ 모두 다 지구 생태계가 유지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식물이든, 곤충이든, 동물이든 반드시 자신들이 지켜야할 질서를 지키며 산다.

그에 비하면 ‘인간’이야말로, 그 중에서도 자본이나 권력을 쥐고 흔한 말로 ‘방귀께나 뀐다는 사람’들이야 말로 비교할 수 없을 만치 파렴치하고, 폭력적이고, 때로는 몰상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러지’를 욕하지 마라

나 어렸을 적, 나보다 열두 살 많은 양장점 미싱사인 작은 언니는 옷을 만들어 ‘가봉(맞춤옷을 만들 때 임시재봉 한 상태에서 미리 입어보고 고치는 일)’할 때마다 나보고 무릎 위에서 몇 센티가 올라가는지 자를 들고 재보라고 했다. 머리긴 오빠들이 경찰아저씨들한테 잡혀서 머리 잘리는 일은 길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사 기초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91년 대기업노조연대회의 사건까지 연표정리를 하면서 때로는 어이없는 헛웃음을, 때로는 놀라움을, 때로는 분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이자,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한 성(?)을 고문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고문해서 죽여 놓고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변명을 해댔던 사건이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인 ‘검은 9월단’을 보고 “(71년 위수령, 72년 유신을 보니) 정부가 10월만 되면 못된 짓을 하니 ‘검은 10월단’이라도 있어야 겠다”고 농담했더니 정말로 ‘검은 10월단’이라는 반국가단체가 만들어졌다. 운동권이 아닌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검은 10월단’ 사건), 합법적인 집회를 열 수가 없어 결혼식으로 위장해 집회를 가진 것은 또 얼마나 코미디 같은 사건(YWCA 위장결혼 사건)인가.

부활절 예배에서 목사가 ‘회개하라 위정자여!’라고 적은 유인물 몇 장 나눠줬다고 내란음모가 됐고(남산 부활절연합예배 사건), 재판정에서 피고인 최후 진술에 박수쳤다고 구류(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심지어 변호사가 변론한 걸 갖고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아넣었던 사회(강신옥 변호사 민청학련 사건 변론 중 구속사건)가 우리가 나고 자란 나라다. 

상식적이지 못한 사회, 지금은?

노동현장으로 오면 사태는 더 처절하다. 노동조합 했다고 똥물까지 먹어야 했던 동일방직 언니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라 치고, 임금인상 요구의 근거로 포함된 ‘국물멸치값’을 보고 “미원이면 됐지 멸치까지 넣을 필요 없다”는 사장의 논리나 생리휴가 요구에 ‘생리일인지 증명해 보라’는 관리자의 비아냥도 너무나 흔했던 일이다.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항의하는 노동자를 말리기는커녕 “죽을 테면 죽어, 너 같은 놈 죽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아!”라고 부추겼던 관리자가 어디 강현중씨, 김종하씨를 죽게 했던 경동산업에만 있었던가.

결코 동물이나 식물들은 생각해 낼 수 없는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일들이다. 폭력이다. 그런 일들을 인간, 그것도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 그리고도 아주 특별히 ‘재수 나쁜’ 몇 사람 빼고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여전히 돈 잘 벌고,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때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른 점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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