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상급조직에 대한 변화와 개혁만을 주장해 왔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과 자신에 대한 개혁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때론 개혁은 혁명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개혁은 의지와 실천의 문제이지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 주변에서는 “원칙은 맞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원칙은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을 해 보았을 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원칙을 지키려는 용기는 부족했고 현실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타협에는 너무 당당하게 나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렇듯 한국노총 간부들 중 현장을 지도할 때 원칙적이고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일반적으로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지도나 눈치 보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진정으로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지도는 조직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힘들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건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유사산별 통합을 위해 산별 스스로가 먼저 나서야
현재 한국노총에는 조직적 변화와 자신에 대한 혁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노총에서는 가장 큰 변화의 틀로 유사산별 및 소산별 통합의 과제를 내세운 적이 있다. 그러나 중앙은 ‘산별 통합은 강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한 기득권층의 조직적 이해관계로 여전히 이 과제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이를 받아들인 셈이다.
각 산별은 한국노총의 역할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핵심주체인 당사자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금속노련에서도 산별 건설 및 제조연맹 통합을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 등 의결기구를 통해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결의사항을 현실화 하는 데는 실패했다. 현장은 복수노조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많으나 조직적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 원하청 불공정 거래, 제조산업 공동화 등 노동자 계층의 분화와 산업을 아우르는 큰 문제들에 대해 기업단위 노조가 대응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또한 유사산별 통합 등을 통해 교섭력을 하나로 모으고 통일된 조직의 투쟁력을 갖추는 대안들을 모색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노총, 민주노동당과 한 길 가야
또한 한국노총의 정치적 방향은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과거에는 기존 정당과 정책연합이라도 결정했고 또한 독자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녹색사민당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독자정당노선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 더이상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이 될 수는 없다.
오는 2006년 5월부터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앞으로 대선, 총선 등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노총은 예전처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할 것인가.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직적 정책과 역량을 함께 할 수 있는 당은 바로 민주노동당이고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정당과 함께 훈련하고 학습하며 시종일관 함께 한 길을 걸어야 한다. 기존정당과 지역주의에 잘못 길들여진다면 정치방침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조직 내부에서도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보 정당과 함께 하는 정치방침을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한국노총에서 개선해야 할 작은 것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가짐과도 연관된 문제다. 첫번째로는 집회에 참여할 때 집회의 목적을 분명히 인식한 후 행사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지역에서 올라오지만 집회 분위기는 항상 어수선한 게 사실이다. 들인 재정과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집회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대의원대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통해 중요한 안건들이 심도 깊게 결의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대의원들은 집행부에 중요 안건들을 위임하는 무책임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