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타이어 회사인 굿이어의 노조 네트워크 회의가 지난 8~9일 마닐라에서 열렸다. 독일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FES)과 국제화학광산에너지일반노련(ICEM)이 공동주최 한 이 회의에는 일본, 인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일하는 굿이어노조 간부 10명이 참여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2000년, 2002년에 이어 세번째로 열린 이번 회의는 산업안전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노조 활동 이유로 노조원 해고한 태국·말레이시아 굿이어

참가국들은 대부분 양호한 산업안전보건 관련법을 갖고 있고, 굿이어 역시 본사 차원에서 안전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선전하지만, 실제 아태지역의 공장에서는 법규나 본사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듯했다. 노사관계가 일본이나 인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원만했지만,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비정규직을 노조로 조직했다는 이유로 굿이어 태국공장 노조위원장이 해고를 당해 송사 중이었고, 단체협약을 체결토록 요구했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굿이어 노조 간부 9명이 해고당했다.

노조탄압이나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알 게 되더라도, 솔직히 이런 국제회의에서 해결책을 강구할 수는 없다. 사실관계를 공유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나라의 노조간부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는 곳은 게으른 곳에 동기와 자극을 줄 수 있고, 또 그럼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이 느리지만 국제적으로 ‘상향평준화’될 수 있다면 이것도 이러한 국제회의의 소중한 열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만난 이들을 통해 몇가지를 새겨보게 되었다. 첫째는 중국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중국총공회(중국노총)는 조합원수가 1억명에 달한다. 국제자유노련(ICFTU)의 조합원수가 1억명을 조금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총공회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총공회는 ‘자본주의적’ 의미의 노동조합과는 다르다. 국가기구의 하나이며, 거대한 관료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방의 일부 노동조합은 공산당 조직인 중국총공회를 고립시키고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원래는 이번 회의에도 굿이어 중국노조가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뒤늦은 연락으로 무산되었다.

이번 회의의 주최측인 FES나 ICEM은 중국에 대해 ‘개입’(engagement)이라는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비해 한국노총은 중국총공회와 교류가 상대적으로 활발한데, 한국 노동계가 중국과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분열로 약해진 필리핀 노동운동

두번째로 생각하게 된 문제는 필리핀 노동운동의 분열상이었다. 극우의 TUCP와 극좌의 KMU 사이에 다양한 이념의 노조 조직들이 존재했다.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기왕의 동지를 공격하는 게 적을 공격하기보다 쉽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필리핀 노동운동은 자본과 국가에 맞선 공동의 투쟁보다는 이념만을 앞세운 채 노동운동 내부의 주도권 싸움에 지나치게 몰두해 왔다.

그 결과, 필리핀의 노동운동은 사회의 주변부 세력으로 전락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KMU의 일부 세력은 자기 조직을 탈퇴했다(공산주의를 버렸다)는 이유로 과거의 동지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운동의 혁명성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선전과 더불어. 민주화 이행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극좌 맹동주의’가 필리핀 노동운동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것은 현대나 대우, LG나 SK 같은 한국 국적의 다국적기업은 언제나 굿이어노조 네트워크와 비슷한 회의를 열어보나 하는가였다. 현대자동차노조나 LG전자노조 같은 조직력이 큰 본사 노조가 사측을 설득해 회의비용을 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금속노련(IMF)이나 국제화학노련(ICEM)같은 국제노동조직을 통해 대상 노조를 접촉하고, 참가를 독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년 하기는 힘들더라도 2년이나 3년에 한번씩 회의를 열어도 참가국 노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전세계의 투자공장을 한꺼번에 엮기는 어려우니, 아태지역부터 회의를 가져본다던지 하면서 시간을 두며 네트워크를 넓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같은 거창한 주제도 좋지만, 서로의 노동조건과 임금을 비교하고, 산업안전의 실태를 공유하며, 얼굴을 익히고 연락처를 나누는 소박한 시작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굿이어노조 네트워크와 같은 다국적기업 노조들의 모임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 노동계도 관심을 가질 대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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