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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흐르는 “맑은 내 큰오빠”
  •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
  • 승인 2005.08.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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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큰오빠가 재단사로 일하는 숙녀복을 만드는 공장 ㅡ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 다리) 왼편 평화시장 본관3층에 있었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가지고 밀리는 버스를 타고 오빠를 따라 공장에 도착하면 8시 정도. 잠을 더 자야 하는데 라면서 짜증스럽게 입을 잔뜩 내밀고 투덜거리면 오빠 뒤를 따라 공장 문을 들어서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벌써 공장안은 내 또래의, 더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시다들이 그 전 날 받아 놓은 일감들을 재봉틀 판 위에 가지런히 일의 순서에 따라 정리를 하느라 재단사 오빠가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싱사 언니가 출근하는 동시에 박음질을 시작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분주하게 일감들을 다림질하고 연필로 줄을 긋고 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어 너희들 일찍 나왔구나! 어제 막차 놓치지 않았니?”

▲ 전순옥(참여성노동복지센터 대표).
오빠가 들어서면서 바쁘게 손을 놀리는 시다들을 향해 걱정이 담긴, 그렇지만 크고 반가운 목소리로 공장안의 긴장된 분위기를 깨면서 하루의 일은 시작된다.

한 주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정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너무 힘들어 어떻게든지 꾀병을 부려 공장에 안 갈 수 있는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시간이 막 지나고 식후증 때문에 꾸벅꾸벅 졸다가 이마를 다리미에 푹 들이받아 이마가 시뻘겋게 대어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미싱사 언니의 벼락같은 호통이 들여왔다. 너 재단사 동생이라고 봐주니까 안 되겠구나 하면서 일감을 내 얼굴에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장 시다 바꿔줘요, 저 오늘 일 못해요” 하면서 오빠에게까지 화를 내었다. 오후쯤 되어서 오야미싱사가 위가 안 좋아 약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는 틈을 타 공장 밖으로 나오게 되자 나는 약을 사러 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곧바로 창동행 12번 버스에 올라앉았다. 햇빛이 유난히도 쨍쨍한 겨울 오후의 화창한 날씨는 나를 유혹하기에 한 점의 부족함이 없었다.

밤늦게 공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큰오빠를 피해 자는 척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가슴은 두근두근하면서 오빠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으면서 한편 걱정은 조금 벗어지면서 불쌍한 미싱사 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 순옥이는 방학 동안만 일을 하지만 그 또래의 많은 시다들은 점심도 거른 채 날마다 해야 합니다.”

내가 일하던 공장은 창문이 없어서 하루 종일 햇빛 구경을 못했다. 평화시장 2~3층 공장안에 햇볕 한 점 안 들어오는 이유는 평화시장건물 밖으로 창문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ㅡ 공장안은 먼지가 하얗게 덮인 백열등 빛으로 어둠침침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질이 나빠져서 대낮에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햇빛에 눈이 부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뜰 수 없었다. 청계천 도로변으로 창문이 없었던 이유는 고가도로 위로 높은 사람들이 탄 자동차가 지나갈 때 공장안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청계천고가도로는 한국의 압축 경제성장과정에서 압축적인 노동착취의 결과로 만들어진 60~70년대 한국산업화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제 청계천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복원되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맑은 내 전태일”의 정신을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벽돌들이 청계천 버들다리에 놓이게 된다. 큰 오빠 전태일이 사랑하던 시다들의 영혼이 있는 곳, 큰 오빠의 마음의 고향인 평화시장 청계천에 영원히 자신을 묻은 지 35년, 수많은 전태일과 수많은 시다들이 청계천 맑은 냇가에 옹기종기 모여 않아 지난날들의 고통과 아픔일랑 맑은 내와 함께 흘려보내고, 노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꿈꾸면서 큰 오빠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작은 벽돌에 새겨 나갈 것이다.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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