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초 <조선일보>는 중국의 외자유치 노력을 주제로 한 '쑤저우 공무원의 눈빛'이란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물론 이 칼럼의 핵심은 경제특구를 여기저기 설치한다면서도 외자유치 하나 제대로 못하는(?) 노무현 정부를 질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칼럼 필자의 다음과 같은 반응은 중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잠재의식을 그대로 축약한 것이다. “그들의 신명에 놀라웠고, 부럽고 또 두려웠다.”

‘놀랍고 부럽고 두려운 중국’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은 다양하면서도 일률적이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세력들은 노무현 정권이 ‘반미·친중’이라고 공격하면서도 중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임금수준을 내려 중국의 저임금과 대결하자는 식이다.

개혁세력들은 중국이 정치, 경제, 군사 부문에서 미국의 대안이 되기를 기대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한 언론사가 실시한 국회의원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대미관계보다 대중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이 그 반대의 경우를 웃돌았다. 이에 비해 진보세력들은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애매한 향수를 고집하거나, 자본주의로 돌아선 중국 공산당의 ‘배신’을 질타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개혁·진보세력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명제가 하나 있다. 이미 정치·군사대국인 중국이 이후 경제력까지 겸비한 초강대국으로 부상, 미국과 자웅을 겨루리라는 ‘확신’이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려면 ‘확신’에 앞서 중국경제의 양지와 음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경제의 영광

중국경제의 영광은 누가 뭐래도 수출이다. 내수 부문은 탈도 많고 말도 많다.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와 국영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실, 사회보장제 파괴, 몇년 전 국유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실업 및 절대빈곤 계층의 증가…. 한국 언론에서는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 내 노동자·농민 폭동(시위가 아니다!)의 규모는 연인원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수출 실적만 보면 그 내용이 극히 우수하다. 최근 통계만 봐도 중국의 대외수출액은 1994년의 1천2백10억달러에서 2003년 3천6백50억달러로 불과 10여년 동안 3배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수출 품목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상품에서 하이테크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1985년엔 중국의 수출상품 중 1차 산업의 비중이 49%를 차지했으나 2000년엔 12%로 줄어들었다. 그 대신 1차 산업 이외의 부문이 88%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원자재를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는 저개발국의 숙명을 극복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욱이 같은 기간(1985~2000년)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하이테크제품 수출에서 중국이 눈부신 도약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연합회의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핸드폰, 컬러 TV, PDA 등 하이테크 부문 주요수출품목 12개 중 중국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상품은 무려 8개였다. 더욱이 이 단체는 중국의 ‘1위’가 2005년엔 10개로 확대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광 뒤의 그림자

이렇게 보면 중국은 경제발전 부문의 ‘선배 국가’인 한국, 일본 등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즉, 수출을 통한 고성장과 경제고도화이다. 그러나 여기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정부와 국내자본이 수출을 주도한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의 수출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주체는 외국자본이다.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는 1985년의 10억3천만달러에서, 1992년엔 110억달러, 2000년 400억달러, 2002년엔 527억달러 등 사상유래 없는 속도로 증가해 왔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금까지 받아들인 해외직접투자 5천억달러는 일본이 1945~2000년의 50여년간 수용한 것의 10배에 달한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외국자본을 받아들이면서도 기술이전, ‘일본 내 상품시장에서의 경쟁제한’ 등 조건을 달아 국내 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했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같은 정책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의 영광’인 수출실적에서 해외투자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나치게 높아졌다. 이 통계수치는 1990년 17.4%에서 1995년 39.1%, 2001년 50.8%, 2004년 55%에 이를 정도이다.

이런 경향은 첨단산업 부문에서 특히 심하다. 컴퓨터기기 부문의 경우 1993~2003년 사이 수출실적이 60배 증가했는데 해외투자기업의 비중 역시 74%에서 9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7배의 수출실적 증가를 기록한 전자·통신 부문에서 외국자본의 비중은 45%에서 74%로 늘었다. 의약품, 항공우주, 전자, 통신, 컴퓨터, 의료 장비 등 하이테크 산업 수출에서도 외자기업의 비중은 1998년 74%에서 2002년 85%로 상승했다.

더욱이 중국정부는 외국자본에 시장을 개방, 월스트리트의 찬사를 들었지만 이같은 찬사가 국내 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1998~2002년 사이 하이테크 부문의 중국 내수시장에서 외자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32%에서 45%로 확대된 반면 그나마 중국에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국영기업들의 점유율은 47%에서 42%로 축소되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0여년 이상 계속된 중국 수출성장률의 활력은 국내 기업들의 급속한 성장이 아니라 초국적 기업들의 노련한 아웃소싱에 따른 것이다. 1994년에서 2003년까지 중국 총수출 증가액의 65%는 해외투자기업의 공헌에 따른 것이다.”

중국이 ‘슈퍼경제파워’가 될 수 없는 이유

이런 현상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용, 내수 등 중국 국민경제의 실적이 아니라 저임금과 이를 통한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에만 이해관계를 가지는 외국자본이 중국경제의 명줄을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 부문과 내수 부문, 이 부문들에 각각 종사하는 인민들 간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수출과 내수 간의 순환고리도 단절되고 있다. 심지어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자본이 가전 등 특정 부문을 제외하면 중국 내 시장에서마저 외국자본의 위력에 위축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발전기의 한국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1999년 11월 중국이 ‘전면적 국내시장(금융업, 서비스업) 개방과 국유기업 보호정책 금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WTO 가입협정에 동의한 것을 감안하면 이 나라의 ‘외자주도형 경제성장’ 노선과 이에 따른 부작용들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한국, 일본보다 남미에 가깝다.

미국의 국제정치경제 전문지로 이 나라 대외정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포린어페어즈> 2004년 7/8월호에 게재된 기고문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 붐을 두려워하거나 이에 보호주의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하이테크, 고수익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해외 기업들이다.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은 없다. … 중국은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추진해온 대외정책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해외직접투자에 경제를 개방했고, WTO에 가입했으며, 중국 내와 해외에 자유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 결론적으로 중국은 슈퍼 경제 파워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의 하이테크 수출을 지배하는 것은 외국자본이다. 둘째, 중국 산업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입한 설계, 핵심부품, 제조업 설비 등에 깊숙이 종속되어 있다. 셋째, 중국 기업들은 수입 기술을 흡수하거나 국내 경제에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요소는 중국이 빠른 시일 내에 지구적인 산업 ‘플레이어’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글은 미국의 좌파 월간지인 <먼쓸리 리뷰>가 지난 3월에 발간한 ≪중국과 사회주의≫(마틴 하트 랜더버그-폴 버켓 지음) 및 우파 국제정치경제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 2004년 7/8월호의 '중국의 기적이라는 신화'(조지 길보이 지음)을 참조해서 작성되었다.<필자 주>

필자 사진과 약력은 필자의 요청으로 게재하지 않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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