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후폭풍이 거세다.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전 안기부 ‘미림팀장’으로부터 압수한 274개의 도청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수사진은 상부에 내용을 보고하지도 않겠다고 했고 검찰총장도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도청한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므로, 검찰이 앞장 서 현행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궁색해 보이지만 논리는 그럴 듯하다.

검찰이 압수한 테이프의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테이프에 어떤 음성이 녹음돼 있는지는 수사 검찰과 전 안기부 직원만 안다.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되다시피 한 삼성과 97년 불법 대선자금 관련 부분을 유추해 보면 이 274개의 테이프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직접 도청하고 테이프들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전 안기부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미 공개된 테이프들은 미공개 테이프에 비해 강도가 약한 ‘맛보기용’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공개 테이프의 내용이 어떠한 것들인지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이 테이프가 공개되면 과거 재벌과 권력,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이자 기득권층들이 어떠한 유착과 공생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재산을 모으고 권력을 쥐거나 나눠왔는지가 드러날 수도 있다. 따라서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단순히 몇몇 관련 인물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 수준을 넘어 지배계급의 치부를 보여줄 수도 있다. 검찰은 현행법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두렵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검찰이 아무리 감추려 들어도 어떻게든 다 나온다. 또 감추면 감출수록 의혹과 소문은 커진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도청의 불법성’이 아니라 감춰진 내용이다. 검찰은 애꿎은 MBC 기자를 소환하면서 야단법석을 떨 것이 아니라 먼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순리다. 미적거리는 정치권도 검찰과 다를 바 없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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