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8월의 경기정점을 통과한 이후 우리 경제는 만 5년째 장기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이래 경기순환의 수축기간이 평균 19개월에 불과했음에 비추어 볼 때, 이번의 경기위축은 이례적으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경기가 다소 회복되는 듯 했으나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2/4분기 산업활동 동향이나 각 기관들이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을 보면 우리 경제의 회복은 아직도 저 멀리에 있는 듯하다.

왜 이처럼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이 장기침체를 저지시키고 경기를 회복국면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었고 또 여러 차례의 특별한 정책처방도 취해졌으나, 매번 경제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침체는 더 지속되기만 했다.

경기침체 장기간 지속 왜 그런가

어떤 경제전문가는 이제 백약이 무효라고 손을 들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본파업이라고 기업가를 비난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나서지 말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정부와 기업 사이에 투자부진을 둘러싸고 공방전이 수시로 전개되기도 했는데, 기업은 언제나 정부의 지나친 규제를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비난했으며 정부는 반대로 기업의 투자의지 부족을 문제 삼아 왔다. 최근 전경련 하계포럼에서의 경제부총리와 전경련회장 사이의 공방전도 똑같은 얘기의 되풀이로 끝나고 말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결책인가? 지금처럼 우리가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는 이 분야의 거장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공황의 해결과 경기회복을 위해 연구와 실천적 행동에 몰두했던 케인스(J. M. Keynes)야말로 이러한 조언을 해주기에 가장 적합한 거장일 것이다. 그의 조언이 다소 낡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어쩌면 거기서 진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케인스는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이, 경기침체의 그리고 경기변동의 가장 큰 원인은 수요부진과 수요변동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수요 중에서도 특히 실물투자가 가장 중요한 국민소득결정과 변화의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가 번영을 이루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투자활동이 활발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그러나 케인스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부가 이자율 인하와 같은 통화정책을 취하거나, 또는 아예 정부가 손을 떼고 자유방임의 상태 또는 개인주의적 시장경제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더라도 투자회복이나 고용증대의 달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유동성 함정’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투자는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와 현행 이자율에 의해서 투자여부 및 크기가 결정되는데, 만약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가 비관적일 경우 - 불경기에는 대부분 그렇다 - 이자율을 아무리 낮추더라도 투자를 유인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투자회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은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가 이중적으로 비합리성을 띠고 있어서 불경기에는 투자회복을 기대할 만한 투자의지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중적인 비합리성은 기업가의 미래수익 기대가 합리적 계산 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의적으로 변화하기 쉬운 ‘확신의 상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다, 주식시장에서의 미래수익에 대한 시장평가도 기업투자의 내재가치를 반영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 속성과 동요하기 쉬운 대중심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온다.

그렇다면 불경기에 투자를 회복시키고, 또 평상시에도 투자를 안정적이면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이 필요할까? 케인스는 정부가 이자율에 치중하는 통화정책에 매달리거나 아예 투자의 계획과 지시를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개인의 수중에 위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투자의 미래수익을 긴 안목으로 또 일반적으로 사회적 이익을 기초로 계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국가가 투자를 직접 계획하는 데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며, 투자율을 사회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투자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의 이러한 주장은 낡은 것이며, 국가계획이나 투자의 사회화는 이미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나 개발도상국에서의 독재적 경제운용이 케인스가 의도하는 ‘국가의 책임’이나 ‘투자의 사회화’의 전형이라고 못 박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케인스는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정부, ‘투자의 사회화’ 적극 나서야

우리가 오늘 케인스로부터 얻어야 하고 또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그 스스로 활발하고도 안정적인 투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통화정책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투자를 활성화시켜 경기침체를 회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안정적으로 증대시킬 방법과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직접 투자를 계획하지 않더라도 기업들의 투자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회적 이익을 기초로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수익이나 주식시장의 평가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투자를 증대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낙관적 기대와 장기적 고려에 기초한 투자의 회복과 안정성이 촉진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공기업적 성격을 갖는 대기업들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공기업이나 관련 대기업에 대한 이러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만 한다면 이들 기업들은 투자를 회복할 ‘확신의 상태’를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아마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소한의 ‘투자의 사회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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