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투쟁을 하고 있는 대한항공조종사노조(위원장 신만수)는 3 pilot제로 운항시 2박3일 제도 폐지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3 pilot제도란 8시간 이상 12시간 미만의 장거리 비행에 기장 1명과 부기장 2명 또는 기장 2명과 부기장 1명이 번갈아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2박3일 제도의 폐지가 왜 필요한 것인지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조종사들과 함께 2박3일 비행을 시도해봤다. 물론 기자는 조종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으므로 객실에 앉아 최대한 조종사들의 스케줄에 맞춰보기 위해 노력했으며, 조종사들과의 인터뷰는 비행 전과 후, 휴식시간 등에 이뤄진 것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7월17일 오전 9시30분께 인천공항 도착, 기자는 출국수속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항공권을 끊고, 환전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한 뒤 11시께 조종실에 탑승하려고 하는 조종사들을 만났다.

이날 유럽의 어느 국가로 비행을 할 조종사들은 박승재(가명) 기장과 오선기(가명) 부기장(항로기장, 항로에서 기장역할을 할 수 있는 조종사), 이건우(가명) 부기장 등 3명이었다. 기자가 만난 조종사는 박승재 기장과 이건우 부기장이다.

박 기장과 이 부기장은 오전 8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뒤 인천공항으로 왔다. 여행객들은 출발 2시간30분 전에 도착해 짐 수속과 출국 수속을 마치면 비행이 끝날 때까지 편하게 쉴 수 있지만 조종사들은 출발 1시간30분 전부터 제복 및 비행에 필요한 매뉴얼 상태를 점검해야 하고, 승객이 탑승한 뒤부터 내릴 때까지는 비행을 해야 하므로 한 순간도 쉴 수가 없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조종사들은 탑승을 위해 먼저 게이트를 통과했고, 기자도 곧 뒤따라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주말이기 때문인지 객실은 승객들로 꽉 차 있었다.


정오 이륙, 실감나는 노조 준법투쟁


낮 12시께 A비행기는 이륙을 시작했다.

여행객들은 여행에 대한 설렘 때문에 계류장 운항 속도(Taxi Speed)가 평소보다 느리다는 걸 눈치재지 못한 듯 했지만 노조의 준법 투쟁이 계류장 안전 운항 속도(Safety Taxi Speed) 준수임을 잘 알고 있던 기자는 이륙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느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막상 Safety Taxi Speed를 경험하고 나니 그 동안에는 계류장에서 비행기들이 얼마나 빨리 운항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자 박 기장의 PA방송(기내방송)이 들려왔다.

“승객 여러분, 여러분들이 탑승하신 KE○○○은 방금 인천공항을 이륙해 약 10시간40분 뒤에는 목적지인 ○○○에 도착할 예정입니다.…좌석에 앉아 계실 때에는 안전벨트를 매어주시길 바라며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조종사들은 비행안전의 주체로서 안전운항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현재 저희 조종사들은 이 안전운항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요 안건을 중심으로 회사와 협상 중에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단체협상을 통해 승객 여러분들을 더욱 안전하게 모실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노조의 투쟁을 알리는 준법 투쟁의 하나인 기장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승객들이 일방적인 기장 방송으로 인해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보도했지만 적어도 이 비행기를 탄 사람들 중에서는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출발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PA방송이 들려왔다.

“손님 여러분, 급격한 기류 변화로 인해 비행기가 다소 흔들리고 있으니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흔들림은 다소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류 변화로 인한 흔들림은 다소 진행됐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좌석 벨트(seat belt)가 계속 체크됐다. 간혹 진행 중이던 기내 서비스가 중지되기도 했지만 승객들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이 시간 현재 조종실의 박 기장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내 좌석 벨트를 계속 껐다 꼈다를 반복했는데, 이렇게 되면 간혹 기내서비스가 중지되기도 하고, 승객들은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해 안전성은 확보되지만 쾌적한 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하죠. 비행을 하면서 안정성과 쾌적성에 대해 계속 갈등을 하게 돼요. 또 좌석 벨트를 켜되 객실 서비스는 중지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도 고민해야 하고요. 특히 몇 일 전처럼 (군 전투기) 사고가 나버리면 심적인 부담이 더 커요. 좌석 벨트를 켠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그나마 면책권이라도 있지만 좌석 벨트가 안켜진 상황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조종사들에게는 심한 입박이 오고 또 두렵죠.”

기류 변화는 비행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보통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구름을 피해서 운항을 하지만 이날처럼 구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기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자동항법장치는 사실 출발지와 목적지만 정해주면, 비행은 물론 이착륙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변수는 기상과 지상 관제에 있다. 자동항법장치가 지상 관제에 일일이 반응하고, 기상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기 때문에 기상·기류 변화에 일일이 대처하고 지상 관제를 하는 건 모두 조종사들의 몫이다.

“자동항법장치에 길은 있지만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경제적으로 연료를 소모할 수 있는 고도를 확보해야 해요. 다른 비행기와 같은 고도에서 날 수는 없으니까 이를 경쟁적으로 획득을 해야하는 거죠. 또 구름들을 피해야 하고, 터뷸런스(난기류)도 피해줘야 하는 등 쾌적성과 안전성을 조화롭게 해야하는 게 조종사들의 몫이죠.” 박 기장의 말이다.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지상 관제사와 10분 간격으로 보고를 해줘야 하고, 각 국경을 지날 때에도 지상 관제사와의 통신을 요한다. 또 다른 비행기와 지상 관제간의 보고도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한다.

“조종을 할 때는 오감이 쉴 수가 없어요. 눈으로는 앞을 보고, 손으로는 여러 가지 조작을 하고, 입으로는 관제사와 얘기하고, 귀로는 또 들어야 하고…미주 노선의 경우에는 태평양을 건너니까 20분이나 30분에 한번씩 보고하면 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10분에 한번 정도 보고를 해야 되고, 또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행기의 보고까지 경청을 해야 하니까 긴장을 늦출 수가 없죠.”

이 부기장도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몽롱한 상태가 되면 이런 보고들을 흘려들을 수도 있고, 항공기 자체도 모니터해서 연비가 제대로 먹고 있는지 일일이 체크해 줘야 되는데, 깜빡해서 이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참 위험한 상황인거죠.”

이처럼 장애물(구름 등)을 관찰하고, 기류 변화에 따라 적절한 운항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기판과 하늘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지상 관제사와 통신을 주고 받고 타 비행기의 비행 상태 등도 파악해야 하므로 입과 귀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후 3시30분, 3 pilot 교대…"우리는 스톱워치가 아니다"

기내식을 먹고, 신문을 좀 보다보니 어느덧 3시30분이다.

이때 조종실에서는 선수교체(?)가 있었다.

이날 비행에서는 이착륙을 담당하는 기장과 항로기장이 첫 3시간30분의 조종을 맡았다. 3시간30분이 경과되자 박 기장은 이 부기장과 교대를 하고, 오 항로기장과 이 부기장이 이후 3시간30분의 비행을 맡도록 했다.

박 기장은 조종실을 나와 퍼스트클래스에서 약 3시간30분여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0분 정도 자긴 했는데, 그 남은 시간에는 그냥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에요. 쉬기는 하는데 잘 수는 없는 거죠. 사람이 이제 자야지 하고 맘먹으면 잠들고, 이제 일어나야지 하면 제깍 일어나지는 스톱워치가 아니니까요.”

3시간이 넘는 휴식 시간이라 해도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기는 정도인 것이다.

“조종사들은 쉬는 것의 질을 따져요. 좋은 음식과 좋은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쉴 수 있는, 가장 쉬기 좋은 조건을 달라는 거죠. 예를 들어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인 벙커가 있는데, 이것을 확보해 달라든가 하는 것이죠. 항공법에는 대형기에 벙커 2개 이상을 확보하도록 돼 있어요. 그런데 그게 없으니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데로 편하게 쉴 공간이 비행기 안에 없다라는 것이 문제죠.”

한국시간 오후 7시, 현지 시간 정오. 조종실은 두 번째 교대를 맞았다. 이번에는 오 항로기장이 쉬는 시간이며, 이 부기장과 박 기장이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조정 업무를 맡는다.

오후 10시30분 착륙…조종사들 사고 위험 '가슴을 쓸어내리다'

한국시간 오후 10시30분께, 현지 시간 오후 3시30분께 비행기는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메고 귀가 슬슬 멍해지기 시작했을 때, 비행기의 하강 속도가 평소보다 빠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시간 현재 착륙을 준비하고 있는 조종실에서는 지상으로부터 쏘여진 레이저 빔에 비행기의 고도를 맞추기 위해 급강하를 시도하고 있었다. 레이저 빔은 안전한 착륙을 위해 관제탑에서 알맞은 착륙 각도를 쏘아주는 것을 말한다. 조종실은 빔의 각도보다 비행기가 좀 더 높은 각도에 있자 그 각도를 맞추기 위해 급강하를 시도하려 했던 것. 그러나 현재의 고도와 빔의 고도사이에 차이가 너무 커 박 기장은 서둘러 관제사와 통신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현재의 비행 고도가 착륙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정상궤도에 돌입했다.

“가끔 빔이 지면에 굴절돼 보이기도 하는데, 그때 빔에서 비춰지는 고도에 맞추기 위해 급강하를 하다보면 산 등에 부딪혀 사고를 당하기가 쉬워요. 조금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면 관제사와의 통신을 통해 착륙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죠. 하지만 아주 잠깐 사이에 굴절된 빔의 고도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고, 추락사고는 거의 그 때문에 많이 발생됩니다.” 박 기장의 말이다.

만약 박 기장이 굴절된 빔의 각도에만 집중해 착륙을 시도했더라면 또다시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할 뻔 했던 것이다.

“육체노동이 아니라서 덜 힘들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12시간 이상 긴장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니까 스트레스가 크죠. 오감을 다 이용해야 하는데, 흥분을 하면 이것들이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해요. 그래서 외국 항공사 같은 경우는 비행 나가기 전에는 전혀 열받게 하지마라는 말도 있을 정도죠. 부부 싸움 등도 비행 나가기 전에는 터부시해요. 아예 각방을 쓰기도 하고…”

선진 외국 항공사의 경우, 비행 나가기 전 조종사들의 심리 상태와 스트레스 정도까지 체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안전에 영향을 줄만큼 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심신이 허약한 조종사들은 비행을 못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철저함은 기대할 수 없다. 오로지 비행 스케줄대로만 움직일 뿐이다. 물론 비행 나가기 전 피검사를 하기는 하지만 이는 비행 전 필수 관례가 아닌 무작위 추출일 뿐이다.

“일단 비행에 들어가면 브레이크가 있을 수 없어요. 목적지까지 연속적으로 가야하는 것이죠. 중간에 쉬면서 정정할 수가 없는 게 비행 조정이에요. 여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중한데, 특히 착륙과 이륙시에 굉장히 집중돼요.”


17일 오후 11시 무사 도착…"잠들기엔 너무 밝다"


한국시간 오후 11시, 현지시간 오후 4시께 000공항에 도착했다. 약 11시간이 걸린 셈이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11시30분,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30분께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조종사들을 만났다.

기자의 눈도 새빨갛게 충혈돼 있었지만 박 기장의 눈도 충혈돼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 출발하기 전 봤던 얼굴보다 더 수척해 보여 말을 걸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박 기장이 먼저 말을 걸었다. “잠 좀 잤어요?” “아니요. 저도 11시간 동안 깨어 있었죠.” “머리 아프지 않아요? 저는 비행 오래하고 나면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아프던데.”

호텔에 도착한 것은 한국시간 오후 11시50분, 현지시간 오후 4시50분께다. 햇볕이 쨍쨍 비추고 있는 그 곳에서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간단히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친 뒤 조종사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 시간에 잠을 청하면 오히려 한국시간으로 아침인 현지시간 오후 10시, 11시쯤 잠이 깨 다시 잠들기 힘들다고 했다.

호텔 근처 술집에 들어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조종사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비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은 이착륙시라고 한다.

박 기장은 “비행기가 상승할 때 업무량은 굉장히 증가돼요. 착륙하고,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업무량이 굉장히 증가되죠. 비행 테크닉의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고, 조종사의 컨디션에 따라 차이가 굉장히 크게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죠”라고 말한다.

또 “처음 조종사 교육을 받을 때, 비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단 '30분간' 이었음에도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첫 비행 훈련시에는 하루 동안 1시간 이상 훈련을 안 시켜요.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이 부기장도 한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한 기장이 휴대용 혈압측정기를 사가지고 와서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에 조종실에서 혈압을 재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부기장의 혈압은 180까지 나왔고, 그 기장의 혈압은 200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비행을 하기도 전인데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죠.”

조종사들은 비행을 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 스트레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종실 뒤에 200~300명에 이르는 승객들의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 부기장은 바로 대답했다. “내 목숨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크죠. 제 잠깐의 실수로 인해 승객이 다치거나 죽게 되면 안되니까요.”

바퀴달린 것 중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게 자전거이고, 그 다음이 오토바이, 가장 사고가 안나는 게 비행기라는 말은 바로 ‘안전’과 관련한 책임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간에 연료가 없으면 자동차는 멈추면 되지만 비행기는 불가능해요. 원하는 고도에 올라가지 못하면 연료가 낭비되는데 이 모든 것들을 다 관리해야 한다는 게 또 스트레스죠. 연료를 많이 실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승객을 많이 못 태우니까 회사에서는 법에서 규정하는 최소의 여유분만 실어요.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은 결국 기장이 지는 것이고요.”

특히 목적지에 다다랐음에도 기상악화로 인해 착륙이 힘들어질 때는 다시 복행을 해야하는데, 연료 부담 때문에 무리한 조작을 하는 등 이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고 한다.

회사에서 추구하는 생산성·효율성과 조종사들이 추구하는 안정성이 상호 충돌하는 부분이다.

“선택해야 할 폭이 줄어들 때는 컨디션에 따라 많이 좌우가 되요. 몸이 피곤하면 정확한 판단과 실행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착륙하기 위한 조건이 아님에도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기도 하고요. 비행기의 모든 시스템은 정상적인 사람의 컨디션에 맞춰져 있지 피곤한 사람의 컨디션에까지 맞춰져 있질 않거든요.”

“비행은 100번을 잘해도 1번만 잘못하면 바로 끝나는 겁니다. 따라서 휴식의 질은 반드시 보장이 돼야 합니다. 극한 상황에서는 저도 제 자신을 못믿게 돼요. 장거리 비행시 교대 전에 앞에서 조종하는 2명을 뒤에서 보고 있으면 참 바보 같아요. 피곤한 상태에서는 계기판 모니터링 등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승객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안전저해 상황이 매번 재연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위험한 고리가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자르자는 겁니다.”

회사쪽에서는 이제까지 3 pilot 2박3일 비행을 해왔지만 아무 문제도 없지 않았느냐는 논리이지만 조종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비행은 생방송과도 같아요. 녹화방송과는 긴장도가 다르죠. 또 생방송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NG는 눈감아 봐줄 수 있지만 비행은 단 한번의 NG도 허용이 안되는 생방송인 겁니다. 비행기 사고는 만일에 한번 터져나오는 것이고, 그 사고는 바로 대형사고인 것이죠.”

조종실내의 압박감도 조종사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조종사들은 1년의 반 이상을 공중에 떠있고, 또 조종실은 거의 햇빛에 노출돼 있어 일상생활이 스트레스인 셈이에요. 특히 전자파와 방사선의 노출도 심하죠. 그래서 그런지 퇴직 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에 있는 것들이 발발해 병을 얻기도 하고, 일찍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 부기장의 말이다.

“조종사들은 주로 공기가 희박하고, 건조한 상태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안 돼 몸이 차가워지고, 수분이 부족해 자꾸 물을 마시게 되죠.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들고요. 이런 환경이 피로도를 증가시키죠. 저도 예전에는 조종이 몸에 크게 무리가 안 갔지만 자꾸 폐기능이 약화되는 것 같아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어요.” 박 기장의 이어지는 말이다.

2평 남짓의 조종실은 햇빛과 전자파, 소음 등에 많이 노출돼 있다.

11시간의 비행 동안 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뜬 눈으로 보냈던 기자는 본업인 취재에 들어갔음에도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시간 18일 새벽 4시, 현지시간 17일 오후 9시께 다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백야가 있는 유럽은 그 시간까지도 환하기만 해서 커텐을 치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19일 새벽 2시, A비행기 다시 한국으로...

다음날 한국 시간 오후 1시, 현지 시간 오전 6시에 잠이 깼다. 샤워를 마친 뒤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했다.

박 기장과 이 부기장에게 잠은 좀 잤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이미 부은 얼굴에서 편히 자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침식사는 조종사들에게 나오는 체류 비용으로 해결한다. 숙박비에는 조식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 아침은 유럽식으로 샐러드, 빵, 씨리얼, 베이컨 등이 준비된 뷔페식이다. 기자는 겨우(?) 두접시를 비웠을 뿐인데, 조종사들은 4~5접시는 너끈히 비운다.

“우리 많이 먹죠? 보통 아침은 많이 먹어요.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바로 못자니까 산책하다가 11시나 12시쯤 잠이 들죠. 적게 먹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오후까지 편하게 잠을 못자니까 아침을 많이 먹고, 소화를 좀 시킨 뒤 오후 비행에 나서기 전까지 자는 거죠.” 박 기장의 설명이다.

한시간 가량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주변의 공원들을 2시간30분 가량 산책한 뒤 호텔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다. 오후 비행을 위해 호텔 앞에 오후 4시30분까지는 집결을 해야하기 때문.

한국시간 18일 오후 11시30분, 현지시간 18일 오후 4시30분. 호텔 앞에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4시50분께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박 기장이 승무원들에게 잠은 좀 잤느냐고 물으니 다들 한결같은 대답이 “한숨도 못잤죠”이다.

박 기장 역시 그저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잠이 들었다가 깨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휴식을 위해 그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은 이날 오후 7시30분께 있었다. 5시20분께 공항에 도착해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비행 준비를 하기 위해 떠나고 기자는 탑승 수속을 밟았다.

기자 역시 오후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기에 조종사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 승객들을 바라봤다. 그들 중 누구도 조종사들이 피곤에 지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이륙을 알리는 PA방송이 울려퍼졌고, 비행기는 유럽의 한 국가를 그렇게 떠나왔다. 역시 조종사들이 잠들지 않는 시간에 기자도 깨어있고자 눈을 부릅떴다. 박 기장이 이륙을 위해 조종을 할 시간인 3시간30분 정도는 그나마 견딜만 했다. 그 시간에는 한국의 신문도 보면서 한국의 뉴스도 접할 수 있었고, 기내식으로 저녁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서서히 눈이 감기고, 머리도 멍하고, 다리 근육도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견디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조종사들과 함께 2박3일 비행 코스를 체험하겠다는 기자가 만약 조종사가 됐다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그래도 기자는 조종실에서 조정을 한 것이 아니라 객실에서 독서를 하고, 글을 좀 썼을 뿐이었는데...

3시간 정도를 잠들었다가 다시 박 기장이 착륙을 위해 교대를 할 시간쯤이 돼 잠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비행기는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했지만 오늘 역시 조종사들은 아찔한 비행을 체험했으리라.

게이트를 나서는 조종사들을 이번에는 조금 먼발치에서 바라봤다. 피곤에 지친 어깨의 조종사 3명이 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한항공 한 기장의 '아내의 입장에서'
조종사,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귀족?
 양대항공조종사노조의 쟁의행위와 관련해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한 조종사의 아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을 대한항공 기장의 아내라고 밝힌 아이디 ‘비밀정원’은 지난 19일 대한항공조종사노조 홈페이지에 ‘아내 입장에서’라는 글을 통해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봉급이나 골프채 문제가 아니라 안전운행의 시스템과 조종사의 권한과 관련된 문제로 봐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비밀정원은 “조종사들은 조종업무에서 능력이 떨어지면 바로 해고되는 파리 목숨”이라며 “조종사로서의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는 각종 시험, 신체검사 등 24가지가 넘는다”고 밝혔다.


특히 “시뮬레이터 심사가 있을 때면 매번 가슴을 졸이고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다립니다. 예전에 시물레이터 심사 과정에서 남편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머리 통증을 호소해 한의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 저는 남편에게 '조종사 안하면 굶어죽겠냐, 통과 못해도 걱정말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남편이 직장을 잃는 것뿐 아니라 과도한 스트레스로 쓰러지지 않을까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지냈었다"고 호소했다.


비밀정원은 또 “제가 생각하는 조종사들은 ‘건강과 생명을 담보 잡힌 귀족 노동자’”라며 조종사들은 “비행에 돌아오면 시차를 극복하느라 애쓰고, 극복될 만하면 다시 비행을 나갑니다. 상공에서 많은 방사선 및 유해 광선에 노출된다는 보고가 많이 되고 있으며, 평균수명이 보통 사람에 비해서 짧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 귀족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어린시절의 파일럿 꿈을 실현했고 본인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대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 △많은 분들이 비난하는 대로 봉급이 많기 때문 △외국에서 회사가 사준 골프채로 골프나 즐기기 때문이라며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자부심과 책임감, 현재의 봉급, 해외 골프를 누린다면… 그래도 여전히 여러분과 제가 붙인 귀족이란 표현이 유효한건가요? 혹시 무늬만 귀족은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또 아빠처럼 조종사가 꿈인 고등학생 아들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조종사들은 가족을 위해서 과도한 신체적, 정신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항상 해고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불쌍한 가장이며 노동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엄마, 조종사는 수명이 짧대. 시차, 중력문제, 유해광선 노출 등…”


“임마, 그래서 오래 살려구 조종사 안하려구?”


“아니, 괜히 오래 사는 것보다는 멋지게 사는 게 조오~치”


화려해 보이는 조종사들의 일면에는 시차에 시달리고, 유해광선에 노출되며, 해고에 대한 불안감을 늘 지니고 사는 노동자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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