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부동산투기 때문에 위기감에 싸이고 있음에도 진지한 논의보다 정치적 성과를 노리는 인기몰이식의 단편적인 주택관련정책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지자체가 나서, 투기꾼과 건설회사의 폭리에 대해 지자체의 사업승인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마 끝에 한줄기 햇살이랄까. 아무튼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분양가 고공행진 규제, 포항시의 사례

지난 14일 경북 포항시는 장성동 재건축아파트 분양가격이 한 달 전에 분양된 다른 아파트보다 평당 100만원 이상 올랐다며 분양승인 신청가격보다 평당 68만원이 인하된 가격으로 분양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포항시는 지난 6월 한 달 동안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한 658명의 외지인 대부분을 재건축아파트 분양을 노린 위장전입자로 보고, 분양공고일 현재 포항시에 2개월 이상 거주한 시민에게 우선 공급하도록 제한했다.

시공업체인 H건설사는 사업승인권자인 포항시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계속적인 시정권고로 인해 사업승인이 늦어져 상당한 사업지연과 이자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격인하폭이 무려 평당 68만원에 이르렀고 건설사가 지자체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최근의 분양가가 ‘뻥튀기’ 되었을 뿐 아니라 지자체가 이같은 분양가 고공행진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포항시는 이 아파트 이외 신규분양 아파트에 대해서도 수요공급 상황을 지켜본 뒤 투기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청약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신규분양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등에서 나타나는 일부 청약부금 및 청약예금 통장의 명의이전 등 변칙적인 매매행위에 대해서도 세무서와 금융기관 등의 협조를 얻어 규제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필자는 몇 달 전 민주노동당 울산광역시당 등으로부터 투기국면에서 당 공천 지자체장의 역할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고 바로 이 사업승인권을 무기로 제시한 바 있는데, 바로 옆 지자체인 포항시에서 최초로 이 권한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지자체의 작지만 큰 권한

투기꾼들의 발호를 막을 수 있는 작지만 큰 권한을 지자체가 가지고 있음을 포항시는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폭리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지자체들은 건설회사의 폭리를 수수방관만 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 뚝섬 서울의 숲 인근 토지를 초고가에 팔아 주변 땅값을 부추기고도 공원조성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게 아니냐는,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임대주택 건설회사들에 대한 사업승인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들이 임대주택법에 정해진 입주자모집공고안 심의를 게을리 해 당하지 않아도 될 임대보증금 부도피해를 초래한 양산과 청주, 그리고 아산 등의 세입자 무시행정은 또 어떠한가.

국민 기본권 중 하나인 주거권의 보장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지자체장들이 다른 행정서비스는 어떻게 하였을지 실로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주민들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는 수준이라면 지자체장의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점은 진보정당 소속의 지자체장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 소속이 아닌 지자체장도 행사하고 있는 권한은 놔둔 채 노동자와 서민의 주거권을 빼앗는 투기꾼과 건설회사의 횡포에 속수무책이라면, 민주노동당의 지방자치가 보수정당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특히 민생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멀리 있다면 노동자와 서민이 진보정당을 지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진보와 민생의 의미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는 엄중한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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