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장마비 내리듯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눈물과 한숨이 마르지 않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 연합뉴스 사옥 11층에 위치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 사무실 한 켠에서 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관련 단체 상근자들이 90일째 농성중이다.

“법률적 근거 없는 기여도 철폐하라!” “민주열사정신 왜곡하고 폄하하는 민주화운동심의위 각성하라!” 농성장 옆에 놓여 있는 각종 구호의 판넬이 농성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농성장 중앙에는 ‘류재을·우종원·김용권·장재완·조정식·노수석·권희정’ 등 열사의 영정이 놓여 있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그 아래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다.

유가족들은 오후 ‘보상심의위’와 면담을 앞두고 ‘기여도 폐지’ 관련 입장을 모으기 위해 스티로폴 장판에 둥그랗게 모여 앉았다.


“법률적 근거 없는 기여도, 원천무효”

“징역 몇년을 산 자식은 명예회복이 안 되고, 시위현장에만 있었으면 명예회복이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보상심의위가 교통사고 보험처리 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기여도 측정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김용권 열사의 어머니는 “남의 아들 목숨을 가지고 왜 난도질을 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열사’ 어머니들의 심정은 모두 같으리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이하 추모연대)에 따르면 2001년 11월27일부터 2005년 2월14일까지 5년여 동안 180여명이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운동법)’ 관련 신청을 했다. 전체 사망인정자는 90여명 남짓. 이 가운데 24명이 ‘민주화운동 기여도’ 혹은 ‘민주화운동 관련성’ 판정을 받았다.

권희정 열사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권희정 열사는 성신여대생으로 학원자주화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지난 96년 사망했다. “우리 희정이만 해도 학생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무슨 잣대로 50%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학원자주화투쟁 아닌가.”

유가족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상심의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부산대 출신으로 방위병 근무중에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를 위해 자결한 장재완 열사의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에 대해 더욱 답답해 했다. “당시 유서 3통이 발견돼 명예회복은 되었지만 기여도 60%가 매겨졌어요. 당시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나서주면 좋은데, ‘시기상조니까 아직 나서지 못하겠다’고 하고요. 부모로서 정말 궁금하죠.”

노수석 열사의 아버지가 말을 이어 받았다.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했으면 그만이지. 그 가치를 수치로 재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법적 근거도 없고, 심사기준도 제시하지 못하는 ‘기여도’는 원천무효이고 폐지시켜야 돼요.”

기여도 채점, ‘명문화된 기준’도 없어

민주화운동법 6조에 의하면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는 관련자의 희생의 정도에 따라 보상하되, 그 생활 정도를 고려하여 보상의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을 보상위와 유가족이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것. 추모연대는 ‘근거 없는 잣대로 더이상 민주열사 정신 왜곡 말라’는 성명에서 “민주화운동법은 사망인가, 상이인가 등 ‘희생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지 민주화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는가를 정하는 것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법적근거가 없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보상심의위는 ‘희생의 정도’를 확대·유추 해석하고 있다. 심의위의 조현기 의안계장은 “원칙으로 하면 ‘불인정’ 사안인데 ‘간접적 관련성’ 사안과 관련해 ‘기여도’를 매긴 것”이라며 “성격이 애매하고 불명확한 사안에 대해 위원들간의 난상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있으며 명문화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간단하다. ‘기여도’를 어떤 근거로 어떻게 책정했는지 공개하면 된다. 그러나 보상심의위는 투명하게 일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명문화 기준’도 없이 위원들 간의 논의만으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90%까지 차이를 둔다는 것은 ‘자의적 해석’ 논란이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가족들이 정보공개 요청을 해도 열사의 행적만 나열되어 있을 뿐 본위원회 심의 내용은 녹취를 풀어 놓지도,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설명이다. 또 2001년부터 시행된 ‘기여도’ 방식을 민주화 관련 단체나 유가족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투명성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여지는 현재로서는 적어 보인다. 추모연대의 이형숙 명예회복위원장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위원들의 학식과 경험 등 전문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잦은 위원 교체와 비상임 운영 방식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인 강민조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보상심의위 위원들이 비상근으로 일하다 보니 책임감이 없어요. 직원들도 행자부, 법무부 등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다 보니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가 없죠.”

국무총리 소속 국가기구인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의 무책임과 권한 부재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모든 위원이 비상근으로 일주일에 2시간 정도 회의를 하는 구조다. 또 위원장은 파견공무원들에 대한 인사권도 없다.


심의위 위상 제고, 노동열사 관심 높여야

“보상심의위는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성의 있는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예전에는 유가족 문제가 전체 운동 차원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유가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추모연대 이형숙 명예회복위원장은 “학생열사에 견줘 상대적으로 노동열사들은 부모들이 연로하거나 생활이 어려워 명예회복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총과 단위노조도 몇번을 연락해도 관심을 별로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죽은 자식을 놓고 보상금 더 타려고 한다는 항간의 오해가 제일 두렵다”는 민주화열사 유가족들.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단 하나. 자식들의 완전한 ‘명예회복’에 있었다.

기여도 적용 경과 및 판정 현황
 기여도는 질병 후 사망 등 사망(상이) 인과관계와 민주화운동의 상관성이 명백하게 입증되기 어려운 경우 적용됐다. 관련자의 권리구제 및 민주화운동 관련자 확대의 취지 하에 ‘민주화운동관련성(기여도)’을 적용해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11월27일부터 2005년 2월14일까지 약 3년여 기간, 심의를 통해 총 24건(총 사망인정자 88명의 27%)이 ‘기여도’ 인정을 받았다. ‘기여도’와 관련 2001년 11월27일부터 2004년 1월13일까지(이상희~권희정)는 ‘기여도’ 표현을 사용했으나, 2004년 2월17일부터 2005년 1월10일까지(오범근~우종원)는 ‘민주화운동관련성’ 표현으로 바뀌었다.


기여도 판정 현황
성명기여도본위원회
의결시점
내용
학생열사
이상희10%2001.11 27경원대생으로 90년 내각제 반대 등 관련 시위로 수감 고문 정신병 심화, 96년 정신분열증 투신자살, 이길상 열사 동생.
정법영20%2004.4.20청주신학대생으로 부친(정진동 목사)의 민주화운동을 돕다가 의문사(음독·당시 18세)
김용권45%2004.10.11서울대생으로 군입대 후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다 의문사(당시 24세)
우종원75%2005.1.10서울대 운동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그는 민추위 관련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사(당시 23세)
장재완60%2004.3.23부산대생으로 방위병 근무 중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를 위해 자결(당시 23세)
조정식70%2004.3.23반제동맹사건으로 복역 후 영전기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중 산재로 사망(당시 26세)
심광보80%2004.3.30충주고생으로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당시 19세)
김수경60%2004.3.16경화여고생으로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반대 활동을 하다 투신(당시 18세)
김기훈60%2004.6.1서원대 총학생회 활동으로 몸을 돌보지 않다 병악화(전립선암)로 운명(당시 24세)
박동학60%2004.2.2대구공전학생으로 학생자치권 보장 요구 중 학생과장이 불을 붙여 사망(당시 24세)
노수석60%2003.9.9연세대생으로 ‘김영삼정권 대선자금공개투쟁’ 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으로 살해됨(심근경색·당시 21세)
권희정50%2004.1.13성신여대생으로 학원 자주화 단식투쟁 후 후유증으로 운명(심근염 추정·당시 23세)
류재을40%2004.1.6조선대생으로 경찰 강경진압으로 운명(심근경색·당시 20세)
박인기10%2003.8.12강원대생으로 전두환반대시위로 수감 중 발병(신장암종) 3년 후 사망
이길상10%2002.6.12경희대생으로 82년경 고문으로 정신분열증 발병, 98년 투신 사망
김학수10%2001.12.11조선대생으로 민자당반대집회 참가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급성B형 간염)
노동열사
이대건60%2004.3.30우성택시 노동자로 사업주의 단체협약 위반에 항의하여 분신(당시 33세)
오범근70%2004.2.17대원전기 노동자로 파업농성을 지지, 항의 위해 음독(당시 37세)
박진석20%2004.6.29대우조선 노동자로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당시 20세)
이상모20%2004.3.30대우조선 노동자로 박진석 열사가 분신한 날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분신 (당시 23세)
원태조90%2004.6.29금강공업 노조 간부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여 분신(당시 37세)
박성호90%2004.6.15금강공업 노조간부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여 분신(당시 29세)
신용길10%2004.3.23부산 구덕교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침, 위암 사망(당시 35세)
조민기10%2002.7.10동아방송 기자 해직, 해직 1년여 후 스트레스성 신부전증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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