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험산업노조 강정순 위원장(54세)의 첫인상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당당함과 힘이 느껴진다. 강 위원장은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며 "하다가 그만둘 일 같았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립신고서가 반려된 후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하면서도 강 위원장은 "이제 싸울 일만 남았다"며 흔들림이 없었다.

어떻게 중년의 여성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보험모집인들의 노조를 조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강 위원장은 그 엄옥했던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노조활동을 하다, 두 번의 해고와 복직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간채 퇴사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듣게되면 "아-아"하게 된다.

강 위원장이 보험모집인 일을 시작한 것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할 곳이 막혀있었기 때문. 도박같다는 느낌이 들어 보험 자체를 싫어했던 강 위원장은 퇴사 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신원조회를 하지 않는 보험회사에, 다른 보험모집인들처럼 주변 사람이 "시험 한번 봐달라"는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보험회사들은 보험모집인 모집을 대부분 보험모집인을 통해 충당한다. 신인모집을 강요하며 신인을 데려오면 수당도 지급된다. 보험모집인들은 실적 강요속에서 처음에는 '연고판매'나 '자기계약'이라도 하게 되기 때문에 보험회사들은 보험모집인 확대에 주력한다고 한다. 강 위원장은 지금도 근무조건이 열악한 보험회사에 입사를 권유해야 하는 '신인모집 강요'가 가장 싫다고 말한다.

강 위원장이 87년 8월 보험회사에 입사하자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주변 사람들은 "강정순이 보험판매 한다"는 소문을 듣고 기꺼이 보험에 가입해줬다. 덕분에 강위원장은 신인상, 판매상 등을 수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3개월 정도 일하자 "정말 노조가 필요한 곳은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험모집인과 인간관계상 가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익은 보험회사들이 다 챙기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보험모집인노조들이 가장 억울해 하는 것이 '잔여수당' 문제이다. 보험회사는 보험모집인이 보험상품 한 개를 판매하면 그에 대한 수당을 8개월에서 많게는 24개월까지 분할해 지급하는데, 보험모집인이 퇴사하면 나머지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분할지급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얘기가 나오자 강정순 위원장은 "가입한 사람들이 내 얼굴 보고 보험 들어준건데, 왜 내가 그만둔다고 수당을 못받는게 말이 되느냐"며 흥분했다.

강 위원장은 그 잔여수당이 아까워 보험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29개월간을 다녔다.

강 위원장은 자신을 "다혈질이고 직선적이고 단세포적이다"고 평가하지만, 그럼 점들이 억울함을 속으로만 참게 하질 못했다. 89년 노동운동이 활발해진 분위기를 타고 '교보생명보험모집인노조'를 결성해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집행부 7명 해촉과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그때부터 장장 27개월간의 법정투쟁에 돌입했다. 당시는 전교조가 결성될 때라 전교조 집회에 나가 격려사를 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교조가 합법화가 안되는 걸 보면서 92년 강정순 위원장은 대법원까지 올라간 법정소송을 취하하기로 결심할 수 밖에 없었고 노조 합법화투쟁과 복직투쟁을 정리했다.

그후로도 강 위원장은 어딘가에 무슨 집회가 열린다면 찾아다녔다.

"집회장소에선 내가 젊어지는 느낌이 듭디다. 내 인생의 활력소였어요2".

강 위원장은 지금 두 번째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1,500여명의 조합원을 모았지만, 아직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설립신고서에도 부위원장을 제외하고 조합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아직 조합비도 걷지 않는다.

강 위원장은 "그동안 내 인생은 불안정하고 궁핍함의 연속이었어요. 얼마전부터 모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또다시 이렇게 활동하게 됐습니다"고 감회에 젖은 듯 천천히 말했다.

강 위원장은 아직 SK생명으로부터 해촉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 위원장은 보험판매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회사가 고단수인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강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이제 보험모집인이 내 천직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엔 보험모집인들의 노조가 합법화되는걸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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