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험모집인노조 이순녀 위원장(48세)은 최근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노조 활동하기 전과 얼굴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자신의 예전 사진이 붙어있는 사원증을 보여준다. 기자가 보기엔 비슷했다. 변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인 게 아닐까. 그건 그동안의 심적인 변화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리라.

이순녀 위원장은 1남1녀를 둔 정말 평범하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보험아줌마였다. 그렇지만 딸만 다섯인 집에 태어나 적극적이었으며, 불의를 보곤 못참는 성격이었다고 자랑한다.

이 위원장은 6년전 첫 직장으로 보험모집인 일을 시작했다. 힘들긴 했지만 회사에서 교육받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등을 배워가며 소속감을 갖고 일했다.

보험회사의 생리에 대해서도 알아가던 중 작년 1월에 책상 위에 놓여진 '보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신문을 보게 됐다. 이 신문은 한 보험모집인 모임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험회사의 부당함과 보험모집인의 어려움에 대한 글들이 실려있었다. 지금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폐간됐고,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 걸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보험모집인노조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이 신문을 통해 자신이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엄청 놀랐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며 자신은 회사에 소속돼 있는 공인이라는 생각으로 일해왔는데 말이다.

그리고 '잔여수당 미지급'과 '자기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관행 등에 대한 분노가 새롭게 일어났다.

이 위원장은 며칠만에 회사내에서 '보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입서를 350명에게서 받아냈지만, 회사에선 어떻게 알았는지 이 위원장 책상 속에 있던 가입서를 모두 압수해 갔다. 그 뒤로 이 위원장은 보험모집인들의 교육이나 모임에서 잔여수당 미지급의 부당함에 대해 토로했고 회사에선 '요주의 인물'로 부각되고 있었다.

서울지역여성노조를 알게 돼 보험모집인도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위원장은 "노조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노조를 통해 우리 권리를 찾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서울지역여성노조 사람들한테 보험판매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긴 했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이 위원장이 새롭게 눈을 뜬 것은 올해 민주노총의 4월 28일 노동절 집회였다. 서울지역여성노조 사람들과 함께 참석한 이 위원장은 "그날 전율이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서울역 광장에 울려퍼지는 '동지가', '파업가'가 가슴에 와 박혔다는 것이다. 요즘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불나비'라고.

보험모집인노조 결성을 위한 움직임은 빨라졌다. 5월16일 서울지역여성노조 강동지부 결성을 시작으로 해 보험모집인지부 변경,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준비위를 거쳐 드디어 지난 5일 설립신고서 제출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서울지역여성노조 강동지부 설립식을 할 때다. 이 위원장은 장소를 물색하다 회사측 눈에 안 띄고 값싼 장소를 찾다 캬바레에서 설립식을 갖기로 했다. 설립식날 카바레 앞에서는 노조가입을 하려는 보험모집인들과 회사측 사람들이 실랑이를 하는 웃지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 '해고자'다. 강동지부를 결성한 후 지난 6월3일 민주노총 비정규직대회에서 발언을 요청받았다. 회사측은 대회에서 발언을 하면 '해촉'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위원장은 그 말을 듣고 그날 어찌나 고민했는지 배탈까지 나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대회에 참석해 주위를 둘러보니 회사측 관계자들이 여기저기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순간 분노로 인한 용기가 솟아 무대에 올라 "보험업이 세계6위에 오를만큼 보험모집인들이 열심히 일해왔는데 잘못된 구조속에서 대우를 못받고 있다"며 "권리를 되찾겠다고"고 선언했다. 결국 이 위원장은 지난 7월1일부로 해촉됐다.

설립신고서 반려 이후에도 전국보험모집인노조가 매일 개최하고 있는 항의집회에서 이 위원장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위원장은 자신을 지원해주고 있는 '한국노총 조합원'인 남편과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고등학생 딸, 군대에서 엄마를 걱정하고 있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며, 이번 투쟁의 승리를 자신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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