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이 큰 장벽에 부딪혀 있다. 오랫동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내부소용돌이만 깊어지는 듯해 안타깝다. 노동운동을 진단하는 접근로는 여럿 있을 것이다. 필자는 노동운동이 지닌 문제의 하나로 노동운동의 ‘무명(無名)’ 상태를 제기하고자 한다.

한국 노동운동은, 1987년을 기점으로 거의 성년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누구는 이것을 정체성의 부재라고 지적하고, 어느 철학도는 노동운동을 주체로 나서게 하는 ‘호명’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초기엔 이름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노조운동, 노동해방(운동) 등 다소 일반적인 이름일지라도 노동운동은 어렴풋하나마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노조설립이 제도화되고 내셔널센터가 창립되는 등 노동운동의 공간이 열림에 따라 민주노조 구호만으로는 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전지구적으로 자본주의가 확장되면서 노동해방이나 사회주의 역시 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이름이 되지 못하는 처지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새 길 찾는 계기로

기존에 이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노동운동을 칭하는 이름으로 ‘국민주의 노동운동’, ‘전투적 조합주의’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은 스스로를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경향간 투쟁에서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이러한 '부정적'(negative) 호명은 노동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보다는 기존 활동을 폄하하거나 과거로 묶어두는 역할을 해 왔다.

근래에는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 사회적 대화 찬반이 사실상 노동운동의 이름 역할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몇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제 한국 노동운동에게 앞을 바라보는 이름이 필요하다. 이것이 작명소를 찾아 될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한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다. 민주노총은 올해부터 세상을 바꾸는 큰 투쟁을 기획하며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을 밝힌 바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나는 이 이름이 지니는 나름의 의의를 인정하면서, 논의에 힘을 보태는 의미에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을 제안하고프다.

이 이름은 노동운동의 사회연대적 활동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우리시대가 직면한 신자유주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체제를 문제시하는 전략적 영역까지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적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이 초점을 두고 있는 의제는 ‘시장’이다. 1980년대 이후 현대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완전 자유화’를 주창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의 자손이지만, 기존에 자유주의가 용인하던 탈시장영역마저 모조리 시장화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완전시장화 운동은 이윤 확보 위기에 빠진 현대자본주의의 자구책이지만, 필연적으로 지금까지 용인되어 오던 사회적 가치들을 파괴한다. 의료, 연금, 주거, 교육이 시장화 되고, 통신, 철도, 전력 등 기간산업이 사유화되며, 문화, 지적서비스, 농업마저 시장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본의 위기가 서민의 위기로 전가되고, 그 결과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졌다.

신자유주의 시장화에 맞서는 대열을 갖춰야

저쪽이 신자유주의 시장화라는 깃발로 공격해 오면, 우리도 그에 맞는 대열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장화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 적합하다.

시장이 기본서비스를 구매자의 ‘능력’에 따라 제공하는 것과 달리 사회공공성은 사회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이를 공급한다.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사회구성원에 필수적인 기본서비스는 비록 자본주의체제일지라도 시장이윤논리를 벗어나 생산·공급돼야 함을 주장하며, 이것의 생산과 분배방식을 둘러싸고 신자유주의와 대항전선을 형성하는 운동이다.

그러면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전략적 성격은 무엇인가?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인가? 나는 이 운동이 자본주의 시장화에 대항하는 운동이지만, 아직 ‘대안체제의 재생산’ 상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이기보다는 대안을 향하는 자본주의 ‘비판’운동의 성격을 지닌다고 본다.

현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체제를 둘러싼 역사적 담론은 형성되는 과정보다는 해체되는 과정에 있다. 이행을 담은 대안체제는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실험과정에서 ‘하나의 상’으로 대중운동과 결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실험이 실패하여 해체되는 과정에서 대안체제가 다시 ‘하나의 상’으로 대중운동과 결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대중은 역사적 외상(?傷)을 깊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해체의 경험을 안고 있는, 그러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운동은 연역추론보다는 귀납추론의 고행을 요구받는다. 각 영역에서 새롭게 실험하고 대중적 검증을 얻는 지난한 길을 밟을 수밖에 없다.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바로 이러한 길에 서 있는 운동이다.

물론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이 뜻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거세져 더 좌절할 수도 있고, 조합주의적 경향도 사회적 의제를 목표로 한다며 대열에 끼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새 이름을 찾기 위해선 걸어볼 만한 역사적 실험이다.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길 걸어볼 만하다

첫째,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기존 노동운동의 타성을 밀어내고 새 피를 만드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우리에게 노선 정립을 위하여 현대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도록 하고,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관철되는 핵심산업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사업의제를 전 사회적 의제로, 운동영역을 공장 밖 지역사회로 확장하고, 운동주체를 더 넓게 삼는다. 그만큼 노동운동은 전략, 정책, 조직, 교육 등 각 영역에서 사업을 재점검할 것이다.

둘째,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해당 산업에서 시장이윤을 넘어선 사회공공적 경제운영의 단초를 실험하고, 이 성과를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하는 운동이다. 시장이윤원리가 아니라 사회공공적 원리에 의해서도 산업이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국 영국에서 그래도 의료가 시장화 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의료부문(NHS)이 사회공공적으로 운영되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아직 사회전체의 ‘대안체제 상’을 담지는 못하지만, 핵심 산업별로 시장원리를 넘어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진보적 사회화’의 기초를 이룰 것이다.

셋째,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주체들을 형성하는 운동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과 대항하며 자본주의를 문제시하고 이를 넘어서 세상을 바꾸려는 주체들이 커갈 것이다. 이들은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나리 다수계층의 보편이해를 지향하는 민중적 주체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체제를 실험하는 대안사회 주체이다.

다소 거칠지만 오늘의 위기가 생산적인 토론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노동운동이 직면한 위기에 자유로운 활동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위기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 가는 길이 비록 쫓기는 길일지라도 새로운 방향을 향해 가는 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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