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 노중기 교수의 기고문 전체 기조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소위 노동판에서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가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수호 위원장이 파업을 선포해놓고도 노사협력유공자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은 일부 조합원들은 또 '민주노총 맛이 갔군', '이수호 위원장 정신차리시오' 등의 댓글을 달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참석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앞에서 한국노총이 삭발식을 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어떤 지도부가 그런 자리에 가 앉아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도 없이 참석한 것으로 간주하고 마치 이수호위원장이 노 대통령과 함께 하고 있다고 왜곡함으로써 민주노총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조합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보다 언론을 더 믿는단 말인가

노중기 교수는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썼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필자는 그동안 나름대로 진보적 교수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고 노동운동노선에 대해 이러저러한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렇다면 현실 운동 속에서 현재 민주노총 투쟁이 어떤 양상으로 가고 있는가 정도는 호흡을 같이하고 있어야 한다.

이 글이 발표된 28일에도 바로 그 전날부터 최저임금심의에 반대해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수호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뿐인가? 그전에도 비정규직법안 강행처리에 맞서 며칠을 계속 국회에서 대기투쟁을 하고 있었다. 말이 대기투쟁이지 보통의 인내심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힘든 투쟁이다.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있다가 잠시 쉴 수라도 있지만 위원장은 그럴 수가 없다. 위원장이 긴장을 놓치면 조직은 급격히 이완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위원장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번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들의 전원연행에 항의해 바로 경찰청으로 찾아가서 어린 전경들에게 사지를 들리워 내팽개치기도 당하고 바로 길바닥에 앉아 밤을 새우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개인 이수호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위원장이라는 한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과 역할 때문이다.

훨씬 더 젊은 실무자들도 도저히 못 따라가는 이런 실천적 결단들은 일종의 '고행'수준이다. 이런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날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투쟁의 현장에서 한 번만이라도 호흡을 같이 했다면…

자! 이런 정황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너무 답답해서이다.

이 정도는 민주노총투쟁과 조금이라도 같이 하고 있다면 다 아는 사실이다. 노중기 교수가 국회대기투쟁에 한 번이라도 결합했다면…. 아니 최저임금 철야농성투쟁에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추어서 분위기를 보았다면…. 감히 이수호 위원장이 한국노총지도부가 삭발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에 가서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투쟁의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호흡을 같이하고 있었다면 설령 신문에 이수호 위원장이 참석했다는 기사가 났더라도 '에이 설마' 하면서 사실확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중기 교수는 그런 확인도 하지 않고 참석한 것으로 간주하고 썼고, 그 글은 사실인 양 활자화 되었다. 조합원들은 그 글을 보고 그럴 것이다. '정말 위원장 맞어?'

결국 민주노총의 위상은 대중적으로 약화되고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간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알량한 사과문 하나로?

이 과정은 어쩌면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불신과 같다. 분명히 사회적 교섭을 통해 투쟁력을 키우고 쟁점을 확산시켜나가고 있는데, 이를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딱지 붙이고 이러저러하게 야합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수많은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온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 경우는 좀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상대에 대한 불신 속에서 이런 기본적인 사실의 왜곡조차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관념적 예단은 현실투쟁과 유리됐기 때문

믿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같이 투쟁하자는 이야기이다. 같이 투쟁하고 있다면 판단의 기준들을 공유할 수 있다. 관념적인 논쟁은 서로 승부가 나지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업 속에서의 논쟁은 결과로서 정리되어갈 수 있다.

노중기 교수의 이번 실수는 그런 관념적 예단의 결과이다. 관념적 예단은 현실투쟁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중기 교수는 얼마든지 실수였다고 사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조한 사과로서 우리 운동의 불신을 걷어낼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명예훼손'으로 사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과는 몸으로 보이는 것이다. 치열한 현장의 투쟁에서 함께 하면서 지도부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기를 바란다. 현실 노동운동의 쟁점에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해 온 당사자로서 그런 정도의 기본적 자세가 없다면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투쟁참여가 어렵다면 사실확인이라도 해주기를

동지들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가질 것을 호소하는 것이 욕심이라면, 그러나 이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것이 우리 운동의 갈등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가 막힌가. 군부독재 시절부터 지금 참여정부까지 언제 노동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주인으로서 대접받아 본 적이 있던가? 이제 서서히 대중운동이 성장하면서 일정한 발언권을 갖기 시작하니까 사방의 수구보수들이 '귀족노조다', '노조비리다', '위기의 노동운동이다' 하면서 견제와 압박을 하고 있다.

보수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내기도 솔직히 버거운 상황에서 내부의 동지들이라는 사람들까지 불신을 만들어내는 상황은 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라면 달게 받고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왜곡에 근거한 비난들이 난무하는 현실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우리 노동운동의 출발은 증오가 아니라 정의였고 순수한 열정이었다. 노중기 교수의 현실비판도 그런 열정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한 가지만 다시 부탁하자면 현실적으로 투쟁의 참여가 어렵다면, 사실확인만이라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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