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이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청계천에는 서울에 내린 장맛비로 시원스레 물이 흐른다. 청계천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 수백 마리가 목격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마다 마냥 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발걸음을 멈추고 석축 아래 흐르는 물결을 굽어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러나 웬걸, 무거운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자리하여 답답하다. 청계천 전태일 거리와 다리 조성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3일, 서울시 정무부시장과의 면담에서 서울시는 청계천 6~7가를 ‘전태일 거리’로 지정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장석효 청계천복원본부장과 면담을 가졌고, 거리와 다리 디자인과 관련한 전반적인 구상을 담은 시안 제출을 요청받았다. 이후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임옥상 화백(미술연구소)과 함께 전력을 기울여 디자인 시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를 지난 2일 장 청계천복원본부장과의 면담 때 제출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태일 거리와 다리 건립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 온 사람들 모두 함께 기뻐하며 상황을 낙관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복원사업단장과의 면담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복원본부측에서는 전태일 거리와 다리 디자인 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도로부표지사인에만 ‘전태일 거리’라고 작게 표시하고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신 자리에 동판 하나만 설치하자고 역제안했다.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태일은 단지 전태일 개인이 아니다. 전태일은 60~80년대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면서도 잊혀진 이름들인 수많은 노동자들의 분신이자 그들 노동자들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고귀한 생명을 던져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것은 가엾고 어린 여공들의 꿈과 미래였고 지키고자 하였던 것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고도성장을 위해 전력질주 했던 산업화 시대를 마감하고 보다 문화적이고 생태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복원은 지난 시대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의 삶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콘크리트를 걷어내어 청계천을 다시 흐르게 만드는 것처럼, 역사의 그림자 아래에서 삶이 뿌리 뽑혔던 우리 노동자들의 삶에도 이제는 따뜻한 햇살을 드리워 다시금 물결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 좋은 예가 있다. 영국 런던의 위성 도시 크로이든이 있다. 60~70년대 런던의 팽창으로 아시아·아프리카계 이민자들과 가난한 영국 노동자들이 살던 무계획적인 도시였다. 크로이든 지방 의회는 엄청난 돈을 들여 재개발을 추진하면서도 크로이든의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박물관을 만들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의 인생(LifeTime)을 담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 희망과 절망을 담았다. 지역 주민이 쓰던 사소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그들의 육성 녹음을 담아 구술된 역사를 들려주기도 했다. 우리는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이 바로 영국의 도시 크로이든의 모범과 나란히 함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전태일 기념 조형물에는 전태일의 삶의 여정이 담기면서 또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긴다. 지게를 지고 가는 아저씨, 자전거에서 짐을 부리는 청년, 미싱을 타는 어린 여공 등의 모습이 전태일의 삶과 함께 한다. 또 전태일 거리와 다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만드는 길이 있다. ‘전태일 이어달리기’라고 명명한 이 사업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접 쓴 글귀로 동판을 만들어 거리에 부착하는 것이다.

‘복원’이란 지난 역사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은 단지 물을 흐르게 하고 새 다리를 놓는 일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간의 흔적을 맑은 내에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복원이어야 한다. 서울의 거대한 도시 재개발 사업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인공적이고 탈역사화 된 개발 사업은 서울을 무국적의 개성 없는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청계천 복원만큼은 그곳을 터전 삼고 삶을 이어 나갔던 사람들의 역사를 응집하고 용해시키는 사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가난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기념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지난 과거를 용서하며 희망에 찬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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