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완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6월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특조법이라 함)이 제정되면서부터다. 특조법은 경기침체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의 하나로써 한시적인 조치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특조법은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신호탄에 불과하였다. 1997년 8월에는 「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되어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규제개혁은 범정부적,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었다.
규제는 악? 계속되는 규제완화 추진
규제개혁의 기본논리는 기업의 자유스러운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즉, 규제가 기업의 활동에 저해요소가 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기존 인식아래 규제는 개혁의 대상, 나아가 철폐나 혁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고 이는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나섰고, 경제규제개혁을 범정부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상시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기조에는 변화가 없으며, 오히려 국민소득 2만불의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더욱 강력한 규제개혁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동안 산업안전보건분야의 규제완화에 대하여 노동계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규제완화의 기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관련 전문가들의 이의 제기 및 문제점 지적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결국 규제개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조직적 저항이나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이루어지지는 못한 가운데, 마치 규제는 악(?)이고 규제가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고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기초적인 안전망조차 무너지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현 정부에서는 앞으로 더욱 강력한 규제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97년 4월,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규제완화 차원에서 사업주의 주요 의무사항을 경감 또는 면제시켰다. 또한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가 출범한 이후에 크고 작은 산업안전보건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으며(29건 폐지, 49건 완화), 이중 공정안전보고서 5년 주기 재작성 의무 폐지, 보호구 제조·수입자의 인력시설기준 폐지 등이 중요한 규제완화 내용이었다. 중요한 규제완화조치 내용과 그에 따른 영향은 다음 표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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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나타난 노동자 건강권의 후퇴
규제완화가 산업현장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결과는 광범위하게 산재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에서야 드러난다. 최근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특히 대형사고가 증가하고 사망재해가 증가는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진행된 산업안전보건분야의 규제완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 대형 산재사고가 빈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그 동안 진행된 규제완화 조치로 인한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산재요양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율은 1987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왔으나, 1998년 이후부터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3년도 재해율은 0.90%(2002년에 비해 16.9% 증가), 재해자수는 9만4,924명(2002년에 비해 15.9%가 증가)으로 나타나 증가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재해율이 증가한 이유는 산재보험이 확대 적용(2000. 7월)되어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자가 산업재해 통계에 신규로 반영되어 증가된 측면과 건설물량 증가로 재해에 취약한 신규 고령근로자 등이 대량으로 건설노동시장에 유입되면서 건설재해가 크게 증가한 점(2001년 1만6,771명 → 2002년 1만9,925명 → 2003년2만2,680명), 최근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이 완화되고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근골격계질환 등 업무상질병이 크게 증가한 점 등에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997년 이후 산업안전보건분야의 규제완화로 인해 사업장 안전보건 예방관리의 약화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그래프 참조>
산재요양 소규모사업장 및 40~50대서 증가
1997년 이후 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산재요양 통계를 통해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에서 재해율의 증가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재해자의 연령대별로 비교한 결과 40대와 50대의 연령의 재해자가 차지하는 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근속년도별로 보면 1년 미만에서 40대 및 50대 연령의 재해자의 증가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49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며, 재해발생형태로는 적극적인 홍보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교통사고로 인한 재해는 감소한 반면 안전보건관리로 예방이 가능한 재래형 재해인 협착, 전도, 추락, 충돌 등에 의한 재해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재해 특성은 산업안전보건분야의 규제완화로 인해 사업장내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후퇴가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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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반적인 규제개혁 정책기조는 당분간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별로 없으며, 산업안전보건분야의 규제정책도 전체적인 국가정책 방향에 따라 지속적으로 규제가 완화될 것이 예상된다. 노동부 역시 정부의 정책적 방향과 역행하여 안전보건 규제의 강화를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는 안전보건의 규제완화를 마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세 가지 방향에서 규제완화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완화된 규제 복원 시급하다
첫째, 현행의 체계 내에서 안전보건 규제를 확실히 지켜나가기 위해 현재의 규제를 고수해나가고, 필수적인 규제임에도 완화된 규제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산재 예방활동을 위하여 사전규제 뿐만 아니라 산재사고에 대한 사후책임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사업주의 처벌과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적 규제 장치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사후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 방식으로 형사정책을 강화하거나 징벌적 배상을 도입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억지력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기업이나 노동자가 비교적 쉽게 접근이 가능한 안전보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 규제개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규제일변도와 책임자 처벌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한국산업안전공단을 통하여 시행되고 있는 공공지원 서비스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규제완화가 안전보건 자체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진행되고 있는 만큼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적절히 규제를 유보시켜주되 그만큼 국가의 예산과 자원을 지원해야 한다. 즉, 기업이 자유스럽게 기업활동을 하되 안전보건 측면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