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밤낮 떠들어봤자 …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국회서) 했던 소리는 개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 단언하고 … 이 나라의 노동자는 어떤 법절차에 의해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

이 단호한 목소리는 지금 농성 중인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목소리가 아니다. ‘옛날에 한 때 노동자들을 좀 도왔던’ 노무현 대통령이 1989년 봄 국회에서 외쳤던 목소리이다. ‘옛날 그 활동’으로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된 노 대통령이 예의 그 말솜씨로 최근의 노동문제에 대해 다시 일갈을 늘어놓았다. 2003년 여름인가, ‘이제 나는 민주투사 노무현, 과거의 노무현이 아니다’는 언명 이후에 다시 깊은 속내를 털어 내놓은 것이다.

‘개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고’

노사협력, 산업평화를 이루어 표창 받은 노사대표들을 불러 모은 지난 24일 노사협력 유공자 초청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대통령은 ‘표창 받지 못한’,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물론 제일 직접적인 말 상대는 같은 시각, 삭발하고 청와대로 진격하고 있었던 한국노총 지도부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시간에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타협 없이 투쟁만 일삼는’ 비정규노동자들은 반드시 들었어야 한다.

제법 길었던 그날 노대통령 말씀의 요지를 대충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변했는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공정한 제도를 만들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센 쪽은 좀 억제하고 약한 쪽은 돕는’ 변함없는 원칙이다.

둘째, 미국 유럽에서 노동유연화 논쟁이 있지만 구체적인 성공모델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노사협력’을 이룬 여러분들을 가장 존경한다. 최근 분규건수, 손실일수가 줄어들어 노사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지금은 노동자들이 많이 커서 대통령 타도, 정권 타도를 공공연히 말하므로 도와주려 해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넷째, 투쟁의 목표는 타협이다. 때때로 투쟁할 수 있으나 타협 없는 투쟁은 반드시 실패한다.

다섯째, 노사정 대타협 그것 정말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내가 역량이 부족했다.

여섯째, 산업평화가 상급노동단체 고립화, 투쟁력 약화로 인한 것이어선 안 된다. 노동행정의 잘못으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일곱째, 노동자도 김대중 정부 때 전체 기간보다 벌써 더 많이 구속되었으나 사용자는 5, 6배 구속되었다. 정부는 불법파업, 부당노동행위 모두에 대해 가혹하게 처리하고 있다.

여덟째, 나는 국무회의에서 노동부장관에게 짜증도 내고 질책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홉째, 고용안정시스템은 OECD 중간수준 이상으로 만들고 싶다.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는 결정적인 애로부분이라도 (먼저)조속히 조치를 취하겠다.

노 대통령의 9가지 주장, 그러나 핵심이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문제 전문가답게 노대통령의 말씀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도 술술 막힘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은 아무리 해도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9가지 주장들을 꿰어 뚫는 핵심이랄까, 철학이랄까 이런 것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사물의 핵심을 찌르는 그런 맛이 없다는 느낌이다. 자칫 현안들에 대한 궤변이나 말장난으로 보이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핵심을 드러내지 않으니 하나하나 언급할 수밖에 없다.

먼저 센 쪽을 억제하고 약한 쪽은 돕는 공정함의 원칙이 현실 노동행정에서 존재하는가. 현대자동차 비정규노동의 경우 정부는 사측이 불법이라고 했는데 구속되는 것은 비정규노동자들이었다. 울산건설플랜트 비정규노동자들의 기본권 요구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였다. ‘공정’이라니 어불성설이다.

둘째, 노사협력이 최고의 가치라는 인식은 1989년 노태우 정부, 나아가 군부독재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노동양극화, 빈곤의 심화, 비정규직의 급속한 증가에도 이루어지는 노사협력은 차별과 착취에 대한 무조건적 협력, 어용행태일 뿐이다. ‘기업이 바로 국가’라는 인식의 새 버전이다.

셋째, 노동자들이 많이 컸다면 대통령은 더 많이 컸는데 그만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먼저 돌이켜 볼 일이다. 많이 큰 노동자들이 툭하면 잡혀가고 길바닥에서, 타워크레인 위에서 단식해야 하는가? 1989년 그 때에도 노동자들이 정권 타도를 외친 것은 잘 아실 것이고, 또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다.

다섯째, 타협을 하고 싶은데 타협할 근거가 없다. 비정규직을 무작정 늘이고, 공무원 단결권을 봉쇄하는 법안을 ‘보호 법안’이라고 우기는 데 도대체 타협이 가능한가. 1989년 봄 노태우 정부의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는가? 때로 타협할 수 있으나 무조건 타협은 망하는 지름길, 어용의 길이다.

여섯째, 상급단체를 고립화시켜선 안 된다니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기아차노조, 현대차노조, 한국노총 간부 비리에 대한 기획수사는 무엇인가? 또 ‘노동운동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일곱째, 사용자가 김대중 정부 때보다 5, 6배 구속되었다는데 수치가 정말로 궁금하다. 혹시 그때 1명, 혹은 5명인데 지금 6명, 또는 30명이란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이전 정부에서 노동자들은 1천명이나 구속되었는데 노동자는 원래 사용자보다 더 불법적인 유전인자를 타고 났는가? 아니면 대통령이 과거에 선동한 것처럼 깨부수어야 할 악법, 정부의 악한 법 집행 때문인가?

여덟째, 노동부 장관 이야기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아홉째, 지금 임기가 절반을 넘어 가는데 언제 하겠다는 것인가. 여의도 길거리에서 레미콘노동자들을 개 패듯 패고, 지금 깔아뭉개고 있는데 언제 OECD 중간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노동부와 노동정책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에 걸 맞는 진중한 반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필자에게만 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울 수 있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대통령과 함께 13대 국회 노동위원회를 주름잡았던 사람이 지금 국무총리이다. 그가 그 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지금처럼 한다면… 노동부 재산을 다 팔아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산업평화에 지름길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말씀을 곱씹은 필자는 다시 그 말을 되 뇌일 수밖에 없다. ‘노동부와 노동정책을 즉각 해체하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법절차에 의해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이 땅의 노동자에게는 ‘밤낮 떠들어 봤자 모두 개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민주노총,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매일노동뉴스> 6월28일자에 실린 노중기 한신대 교수의 기고 '노동부와 노동정책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 내용 가운데 사실과 전혀 다른 부분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노 교수는 기고에서 "그런데 노사협력에 유공자도 아닐 민주노총 위원장이 파업을 선포해놓고, 왜 대통령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쓴 바,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6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협력유공자' 초청 오찬에 이수호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등 양대노총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활자화 해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독자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노중기 교수 역시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민주노총에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노중기입니다. 제가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민주노총과 이수호 위원장님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매일노동뉴스에서는 그 부분을 삭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온라인 기사(국민일보 6월24일자, 박주호 기자)를 보고 글을 작성했습니다. 그 기사가 오보였던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께서 이런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는 급한 마음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질책은 달게 받겠습니다.   


노중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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