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24일 입수한 ‘노조동향에 대한 대책’이라는 해양부 내부문건은 상용화를 추진 중인 해양부의 ‘다급함’, 한마디로 ‘여유를 둘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항운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에 따른 부산지역 상용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감과 동시에, 인천항운노조 조합원의 동요 및 반발이 타 항만의 상용화 도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절박하고’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해양부가 작성한 ‘노조동향에 대한 대책’ 문건에는 정부가 항운노조와의 당초 약속을 파기하고, 9월 중 상용화를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입장과 더불어 향후 대책을 자세히 정리해놓고 있다.

해양부는 대내외적으로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상용화를 위한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론해왔고 이런 가운데 ‘5·6 노사정 협약’에 따라 노사정이 충분한 협의를 통해 오는 9월까지 세부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었다.

하지만 문건에 따르면, 노조가 “특별법 발의 과정에 노조쪽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며 강하게 반발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특별법 제정이 정기국회로 넘어갈 경우 상용화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항운노조 개혁의 추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문건을 통해 표현했다.

결국 항만하역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평화유지를 위한 합리적 노사관계 발전 등의 조정행정을 펼쳐야 할 노무현 정부가 전 항만 상용화 도입이라는 거대 목적을 위해서 노조와의 약속도 철저히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이때문에 이번 논란은 현 정부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한 지적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건은 정부가 오거돈 해양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부처 차관(급)을 위원으로 하는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혁위원회’가 열린 지난 15일께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5월에 구성된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혁위원회’는 재경부, 법무부, 노동부, 해양부, 기획예산처, 국무조정실, 경찰청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첫 표지 상단에 ‘대외 주의’라는 눈에 띄는 꼬리표가 있는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 관련 항운노조 동향 및 향후 대책’이라는 이 문건은 이들 단체가 공동으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노조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표지를 포함해 총 11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건은 일단 △항운노조 동향 △노조동향에 대한 대책 △협조요청 사항 △향후 추진 일정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을 요약·분석해 보면 시민단체 및 언론을 통해 개혁을 유도하는 여론을 확산하고 이를 통한 특별법의 조속한 재정을 통해 항운노조의 개혁을 압박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천항운노조는 상용화 장애물?

문건은 먼저 노조동향에 대한 대책에서 ‘인천항’을 항만 상용화의 장애물로 묘사하고 있다.

‘인천의 개혁을 유도’한다는 큰 틀 속에서 문건은 ‘노사정 협약 파기를 선언한 인천항에 대해서는 강력 대처’라고 적시돼 있다.

이와 함께 인천의 동요 및 반발이 다른 항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타 항운노조와 완전히 분리시켜’ 강력히 개혁을 압박해야 한다고 적시해 인천항운노조를 정부의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해양부는 특히 △신설부두에 대한 노조인력 공급제한 △하역업체의 하역협회 탈퇴로 단체협약 무효화 △노무공급허가 취소 등을 단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정부로서는 인천항운노조 위원장이 “조합원 찬반투표로 협약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노사정 협약 체결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선언하고 인천항운노조가 지난 5월19일 대의원대회에서 상용화를 반대하는 평조합원 출신의 후보가 압도적(55명 중 32명)으로 당선되는 등 상용화를 추진하는 데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에 인천항운노조를 분리시켜서라도 상용화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임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해양부는 또 ‘상용화 추진에 대한 정부 입장을 명확히 해 노조원의 동요를 방지하고 인천항과의 연계 투쟁을 차단’해야 한다고 문건을 통해 밝히고 있다.

부산항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문건은 ‘노조동향에 대한 대책’ 전에 언급된 ‘항운노조 동향’을 통해 “부산항이 상용화 여부를 조합원 찬반투표에 붙일 경우, 반대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앞서 예측한 뒤 “이 때문에 부산항운노조는 투표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이라고 적시했다.

‘조영탁 부산항운노조 신임위원장이 선거공약 및 당선 기자회견을 통해 상용화를 포함한 항운노조 개혁을 계속 추진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 부산항운노조는 16일 상급단체인 항운노련과 인천항운노조가 항만노무 상용화 찬반투표를 실시 중인 것과 관련, 이에 동조하는 투표를 실시하지 않기로 결의해 정부가 부산항운노조 집행부에 깊숙히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어쨌든 정부는 부산항의 상용화 절차를 가속화 해, 인천의 상용화를 반드시 유도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언론을 이용해라?

문건은 이와 함께 특별법의 조속한 재정에 대한 정부의 강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 언론을 통한 개혁유도를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문건은 “항운노조가 특별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노조쪽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기국회에서 정부입법으로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특별법 제정이 정기국회로 넘어가면 개혁의 추동성이 떨어질 것이 우려되므로 6월 임시국회 중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해양부 한 관계자는 일단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예산지원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건은 또 △중앙과 지방의 시민단체, 언론, 항만이용자 등과 연계해 항운노조의 개혁에 대한 ‘감시 네트워크’ 구축, 운영 △개혁지지 여론을 형성·유지하기 위해 지역 언론과의 간담회, 시민단체와 연계한 토론회 등을 6월 중에 집중 추진 등을 밝히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항운노조원에 대한 ‘개별적’ 설득활동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상용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맨투맨 작업도 감행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문건은 “개별 노조원을 대상으로 상용화의 필요성, 상용화의 혜택 등을 홍보하는 정부 정책설명회를 추가 개최”하고, “노조원들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 하역회사의 중간 간부를 통해서 개별 노조원의 불안과 동요를 해소시키는 설득 작업도 병행한다”고 작성했다.

국정원과 경찰청 등 지원 필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은 인천항운노조에 대한 개혁압박에 따른 관계부처의 협조 체계다.

문건은 “개혁 추진이 지지 부진하고, 노사정 협약을 파기한 인천항운노조에 대해서는 압박수단을 관계부처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노동부의 협조와 더불어 국정원, 경찰청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시돼있다.

해양부는 이에 대한 의미 확대를 경계했다. 해양부 관계자는 “항만개혁은 국가전체의 경쟁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서 “이때문에 타 부처와 머리를 맞대기 위해 관계부처간 유기적인 협조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항운노련의 입장은 다르다. 연맹은 “항만상용화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국가의 지상과제라면 관계부처와 정보기관, 언론 등을 총동원해 항운노조를 고립 및 와해시키기 위해 골몰하는 데 앞서 이해 당사자와의 성실한 협의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건에는 이밖에 △중앙과 지방의 대책기구를 운영해, 정보공유 및 항운노조 압박 수단을 공동 활용 △공용부두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부두운영회사, 인력관리회사, 인력풀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노조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해양부, “노조의 잘못된 관행 엄격 대처할 것”

해양부는 문건이 외부로 폭로되자 기자에게 “어떻게 문건을 입수했느냐”며 초기에는 당황스런 모습을 보였으나 곧바로 세부내용에 대해 해명했다.

그러나 해양부는 '대외 주의'라는 꼬리표에서 볼 수 있듯, 반드시 외부로 유출되서는 안되는 문건이었음에도 기자에게 자연스럽게 정부의 입장을 설명해, 해양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양부 항만운영과 관계자는 2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인천항운노조에 대한 강력대처 입장은 인천항운노조가 상용화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항만의 안정적 측면을 고려해 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엄격하게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또 언론관계에 대해서는 “부산은 지역여론이 상용화를 지지하고 있는 반면, 인천은 시민들이 항만이 뭔지, 상용화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역 여론을 이용해 개혁을 유도하자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특히 최봉홍 연맹 위원장의 입지강화와 관련해서는 “최봉홍 위원장이 연맹에서 사라지면 누구와 상용화 협상을 하겠느냐”며 “상용화를 위해 최 위원장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도와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발 거세질 듯

하지만 해양부의 이런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해양부가 직접 ‘대외 주의’라는 문서 꼬리표를 통한 비공개회의를 통해 항만개혁과 비리수사를 빌미로 항운노조 동향에 대한 대책 마련까지 나섰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노조는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혁위원회’가 항만 상용화의 당사자인 노조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한 뒤 일방적으로 항만개혁시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봉홍 항운노련 위원장은 “이번 문건은 노정간의 신뢰를 붕괴한 꼴”이라며 “근본적으로 노사자율원칙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데, 사실상 3자인 정부가 왜 앞장 서 하역회사(사용자)를 대신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나 특별법이 국회농림해양수산위윈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 현재 계류 중인 상황에서 문건에 따른 논란이 점차적으로 확대될 경우, 임시국회 내 법안통과에 차질을 가져올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우리당 신중식 의원 주재로 특별법안을 심의했으나 한광원 의원(우)과 김재원 의원(한), 강기갑 의원(민), 김우남 의원(우) 등은 검토의견을, 박승환 의원(한), 김명주 의원(한)은 통과의견을 내놓고 논의를 벌였으나 결론 도출은 실패로 돌아간 상태.

이런 가운데 향후 소위원회 일정에 대한 양당(한나라당, 열린우리당) 간사간의 합의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터라 소위에 계류된 ‘특별법안’은 정기국회로 넘어갈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이때문에 정기국회 이전까지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최종안이 마련될 경우, 무난하게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예측되고 있다.

실제 노조 또한 정기국회 이전까지 상용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정부 안대로 끌려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와 사용자 간의 정책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는 정부의 공식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책 마련, 그리고 관련자 전원의 처벌 및 징계를 요구하고 있어 일단 해양부의 책임론이 거론될 전망으로 보인다.

상용화 도입과 관련해 노동계의 반발이 거센 상황임을 감안할 때 정부의 상용화 추진이 아무리 정당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의 이같은 문건작성은 노동계의 다양한 의혹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평조합원들의 반발도 이미 거세지고 있다. 항운노조 조합원들은 <매일노동뉴스>의 보도 뒤 “정부가 국정원 등 정부 기관을 총동원해 항운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음모까지 꾸미고 있다”면서 “항운노조 탄압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이상 대정부 투쟁을 병행해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홍보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홍보하자”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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