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노사정 3자 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제93차 총회가 6월17일 막을 내렸다. 지난 5월30일부터 3천명 이상의 노사정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ILO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이번 총회에서는 강제노동의 조속한 철폐,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작업장의 안전보건 문제 등이 주로 논의됐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ILO의 역점사업

이번 총회에서 후안 소마비아 ILO 사무총장은 "GDP는 수조달러씩 늘어나는 반면, 새로운 일자리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제 사회가 세계적인 고용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 때문에) 민주주의와 열린 시장의 신뢰도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178개 ILO 회원국이 참가한 이번 총회에서는 제3세계 지도자들로부터 시장 주도로 이뤄지는 세계화의 일방성과 날로 악화되는 고용의 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는데, 아랍연맹 의장인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세계화가 초래하는 문제점을 교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차원만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아프라카연합(AU) 의장인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ILO의 목표인 ‘양질의 일자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는 21세기 들어 ILO가 펼치고 있는 역점 사업이다. ‘decent’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사회기준에 맞는', '남부럽지 않은', '의젓한', '점잖은', '매력적인' 따위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일자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 노동조합 조직권과 단체교섭권 인정 △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차별 금지 △ 강제노동 폐지 △ 아동노동 철폐 같은 ILO의 핵심노동기준은 그 목표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소마비아 ILO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는 형편없는 일자리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조건적인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번 총회에서 ILO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기 위해 △ 노동기본권 증진 △ 기업의 발전 및 양질의 일자리와 수입을 보장하는 고용기회 창출 △ 만인을 위한 사회보장의 증진 △ 노사정 3자주의와 사회적 대화의 강화를 추진키로 했으며, 또한 최근 국제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경제자유지역, 비공식경제에 대한 제안들을 내놓기도 했다.


어린이 6명 중 1명 아동노동에 시달려

한편, 총회 기간인 6월12일은 네번째 맞는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이었다. ILO는 지난해 총회에 “15세 미만 어린이 가운데 노동에 시달리는 인구가 2억4,600만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는 전세계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꼴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아동노동에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당시 IL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의 30% 가량인 7,300만명이 10살 미만이고, 해마다 아동노동과 관련된 사고로 어린이 2만2천명이 죽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선진국도 아동노동 문제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는데, 선진국에서도 250만명의 어린이들이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채무로 인한 인신구속이나 노예상태, 그리고 매춘이나 포르노산업 같은 성적 착취에 연루된 아동이 전세계적으로 840만명에 이른다는 점인데, 이 가운데 120만명은 인신매매 된 것으로 파악됐다.

1919년 출범 이후 ILO는 아동노동의 근절을 위한 제도적 개선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취업의 최저연령을 규정한 협약 제138호(1973년)와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폐지를 규정한 협약 제182호(1999년)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6월12일을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로 지정하고 세계 80여국에서 아동노동 폐지를 위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산업안전 문제, 국가적 대처 촉구

이밖에 중요하게 다뤄진 쟁점은 청년실업과 작업장 안전 문제였다. 1백개가 넘는 참가국에서 청년층 일자리 문제를 제기했는데, ILO총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청년고용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청년층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ILO 사무처가 보다 실천적인 사업을 전개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청년층 고용이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해야 하며, 각국 정부가 청년층의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ILO가 UN이 주도하는 청년고용네트워크(Youth Employment Network)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ILO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작업장에서 노동자 보호수칙이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작업장 안전과 노동자 보호를 위해 보다 실천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위원회는 각국 정부가 작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논의할 것을 주문하면서 산업안전보건제도를 개선하고 국가 차원의 사업을 전개할 것을 제안했다.

참고로 한국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에만 2,82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으며 8만8,874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미얀마의 강제노동 문제는 이번 총회에서도 ILO 국제노동기준 적용위원회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았다. 위원회는 특별회의를 열어 강제노동 폐지를 규정한 ILO협약 제33조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위반 사례를 논의했는데, 이는 5년 연속 다뤄지는 것으로 ILO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1,200만명 강제노동 상태

ILO는 미얀마에서 강제노동의 사용이 전혀 줄지 않고 있으며 가혹한 형태의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각국의 노사정 모두 미얀마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재검토하고, 정부나 군부 소유의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미얀마의 강제노동 문제에서는 한국도 자유롭지 못한데, 2004년 1월 산자부, 상공회의소, 기업인으로 구성된 구매사절단이 미얀마를 방문해 78건의 투자상담을 한 바 있으며,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날을 비롯하여 50개가 넘는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ILO는 세계적으로 1,200만명이 강제노동 상태에 있으며, 그 가운데 240만명은 인신매매의 피해자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ILO 부이사국 피선

이번 총회 기간인 6월6일 제네바 UN 유럽본부에서 실시된 ILO 이사국 선출을 위한 투표 결과, 한국은 3년 임기(2008년 6월)의 ILO 부이사국으로 피선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91년 ILO 가입 이후 96년, 99년, 2002년에 이어 4회 연속 ILO 이사국에 진출했다. ILO 이사회는 정이사와 부이사로 구성되는 ILO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며, 부이사국은 사무총장 선거권은 없지만 다른 주요 활동은 정이사국과 같이 하게 된다.

한편, 이번 총회에는 한국의 노사정을 대표하여 김대환 노동부장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영배 경총 부회장 등이 참가했으며, 다음 ILO총회(제94차)는 내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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