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노동조합은 거시정치적 핵심 권력투쟁 영역은 물론 복지·교육·주택 등 재생산 영역에도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 일반은 자본이 주도하는 경제이데올로기에 종속됐다. 조직 노조의 역할 부재는 노조운동에 대한 유인력과 호소력을 떨어뜨렸으며, 결국 일부 대기업노조의 권력화 현상, 다수 비조직 노동자의 노조에 대한 무관심 또는 거부감이 증폭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주제로 올 1학기 모두 4차례 열렸던 중앙대 사회학과 콜로키움 마지막회는 사회학자들 간의 토론장이었는데, 발제에 나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학)는 노동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강화 없이 위기 극복이 어렵다며 평소 지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김 교수는 우선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는 “취약한 권력자원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없는 노조 역량의 한계를 자각한 노조 지도부가 작은 권력에 안주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회를 움직이는 데는 크게 두 차원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국가의 핵심 지배구조, 계급관계의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전쟁과 평화, 국가안보와 경제와 관련된 영역이고, 또 하나는 정치 민주화, 복지, 노동, 교육, 언론 등 사회와 관련된 영역이다. 즉, 김 교수의 분석은 노동자(노조운동)는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전자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았음은 물론, 후자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힘과 요구를 개입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 대기업노조의 회사 내 권력 강화·보수화를 수반하게 하고, 대신 전체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역량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게 한 배경이 된다.

이에 김 교수는 “산별노조나 정당조직화가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노조의 시민사회 내 이슈의 개입이나 그것을 위한 권력자원 확대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산별노조나 정당도 모두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판명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노조는 뭘 해야 할까? 그는 “노동자 일반(계급)의 삶의 재생산과 관련된 영역에라도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직업훈련, 사회안전망, 건강과 보험, 주택과 교육의 영역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단순한 노조 정책역량의 확대 문제는 아니”라고 전제, “1차적으로는 노조의 운영원리를 바꾸는 문제, 산별노조가 의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 조합원들을 어떻게 훈련 교육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며 “그 다음의 과제는 지식인과 노조의 결합인데, 이념적 정책적 상상력이 결여된 노조운동은 ‘(기업 내) 작은 권력’ 추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은 노동운동에 부정적 영향?
이날 ‘새로운 민주주의와 새로운 노동운동’ 이란 주제로 발제한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학)는 90년대 들어 새롭게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민사회’라는 요소는 노동운동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 헌법적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리행사인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이며 “또한 시민운동단체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운동이 내세우는 시민적 이해 또는 공공성에 비해 노동운동은 기업에 한정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더구나 시민사회가 노동문제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것도 특징”이라며 “세계화 시대에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주변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오히려 노조보다 시민단체들이 이주노동자 문제와 같은 주요 노동문제에서 더 큰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신 교수는 “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됐던 ‘정부·기업 대 노동’이라는 2자 중심의 노사관계는 90년대 중반 정부, 기업과 노동을 각각의 축으로 하는 3자 중심의 노사관계로 변했다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시민사회까지 포함된 4자 중심의 노사관계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앞으로 노동운동은 직접 행위 대상자인 기업과 노동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정부 이외에 넓은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인정, 지지를 받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할 수 있는가에 그 발전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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