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공공연맹이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 가입 승인을 결정했다. 그 어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서 논리를 만들고 변명해도 이건 아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조직운동의 최소한 상식과 원칙, 그리고 신의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함께 탄식을 하고 있다. 위기 속의 노동운동, 정말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다른 조직의 아픔과 갈등을 자신의 '세불리기'에 이용하는 부도덕함에 말문이 막힌다. 더구나 이런저런 변명으로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은폐하기 위해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지부간에 ‘중재와 조정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조직 내부 문제에 대해 중재하고 조정하겠다고 나선단 말인가?

공공연맹은 심지어 추가 탈퇴와 가맹 신청에 대해서는 ‘더이상 논란 없이 가맹 승인을 하겠다’고 한다. 탈퇴를 유도하는 듯한 태도에는 과연 이 조직이 그동안 함께 공공연대 활동을 함께 해 온 동지인가 하는 섬뜩함마저 느낀다. 공공연맹은 이런 결정을 하면서도 ‘노동운동의 원칙을 지키면서 더 큰 틀로 통합해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망연자실할 뿐이다.

'정파'가 산별보다 위에 있나?

공공연맹이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 논쟁 이후 일방적 평가를 기초로 보건의료노조 집행부를 비판하고 공공연하게 규약과 규율을 어긴 서울대병원지부 가입을 승인한 것은 결국 '정파적' 산별운동을 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대중적 산별운동의 원칙보다는 자신들의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면 다 받아들여 세를 불려가겠다는 것이다. 대중적 산별운동의 위기다. 자주적 노동운동의 위기다.

사람들은 이번 일을 두고 '또 시끄럽겠구나'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강 건너 불 구경 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번 일이 노동운동의 대의에 따라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서울대병원'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앞으로 복수노조시대를 앞두고 조직관할권을 둘러싼 갈등의 전주곡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 차원에서 조직 상호간의 분명한 조정과 나아가 올바른 조직운동의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이런 정지작업이 없다면 한국적 상황에서는 '민주-어용' 구도의 복수노조만이 아니라 정파 중심의 복수노조까지 생겨 복수노조시대 초기 당분간 현장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는 집행부가 문제 있다는 주장만으로 단결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대중조직의 민주적 논의구조에 불복하는 조직들이 새로운 조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대중운동을 교란시키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토대를 허물어뜨릴 것이다. 이는 단지 산별구획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주적 대중운동, 계급적 노동운동의 원칙에 관한 문제다.

우리가 함께 만든 산별규약이 먼저냐, 정권과 자본이 만든 노동악법이 먼저냐

이번 승인은 몇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조직의 자주성을 완전 무시한 것으로 조직 상호간 신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훼손이다.

서울대병원지부의 문제는 전적으로 보건의료노조 내부의 문제다. 다들 알고있는 것처럼 작년 산별합의 이후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보건의료노조 내부에서 해당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 토론절차를 통해 풀어갈 문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평소 잘하지’ 라는 비아냥 소리도 들린다. 누군가 보건의료노조가 잘했으면 탈퇴 등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문제의 원인을 보건의료노조로 떠넘기며 가입 승인결정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내부갈등에 끼어들기식으로 개입하고 급기야는 '조직 빼가기'식, '땅따먹기'식의 조직사업이 된다면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과 연대의 기풍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직의 선택권은 전적으로 조합원에게 있지만 최소한 상호간 조정과 연대의 원칙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우리 스스로가 만든 규약에 대한 위반이자 산별운동에 대한 원심력 확대다.

그동안 산별운동을 먼저 고민해온 조직들은 집단탈퇴가 명백하게 산별운동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금속노조와 과기노조 등 모든 산별노조의 규약은 개별탈퇴만 인정하지 집단조직탈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집단조직탈퇴의 유효 여부를 묻는 보건의료노조의 질의서에 대해 금속연맹 법률원은 "무효"라고 회신한 바 있다.

하지만 작년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이 자본과 정권에 투항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민주노조운동의 산별규약이 아닌 정권과 자본이 만든 노동악법에 의해 기업별노조를 승인 받고, 그것을 기초로 다른 연맹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이미 산별노조 집단탈퇴 등 조직적 문제가 다른 산별노조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만큼 다시 한번 산별운동에 대한 분명한 원칙정립이 필요하다.

세째, 이번 공공연맹의 서울대병원지부 가입 승인은 일회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많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지금은 그 결정이 보건의료노조의 심장에 비수를 꽂지만 결국 그것은 공공연맹, 나아가 노동운동 전체에 똑같이 되돌아 갈 것이다. 규약과 규율을 어기고 탈퇴해도 다른 조직에서 받아주는, 악순환과 이합집산이 되풀이될 것이다.

산별운동의 기본 구획은 원칙없이 일부 지도부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널뛰기를 할 것이다. 산하 조직들은 민주주의적 토론보다는 상급단체와 탈퇴를 무기로 교섭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며, 민주적 절차와 결정은 무시되고 정파적 이해관계만 가득할 것이다.

'1대5'의 싸움을 해야 하는 2005년 보건의료 산별교섭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은 단지 즉자적 분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결정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산별운동을 어떻게 파탄내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번 결정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직시해야한다. 이번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지부가 추가 산별탈퇴공고를 내고, 사측은 더욱더 개별탈퇴공작으로 산별노조를 흔들고 있다. 산별교섭을 거부하고 개별교섭을 하자고 회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5 보건의료 산별교섭은 마치 '1대5'의 싸움이다. 일부 조직의 산별운동에 대한 원심력, 공공연맹의 가입 승인과 추가탈퇴 유도, 사측의 산별노조 탈퇴공세와 산별교섭 거부, 정부의 반산별적 반노동자적 정책기조, 노동운동에 대해 불리한 사회적 여론….

하지만 우리는 이런 모습에 비난만 하고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분노는 단지 공공연맹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탄압하는 정권과 자본에 맞서 진정한 산별운동을 위해 내부 단결과 연대를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산별의 힘으로, 현장의 힘으로 어려움을 돌파할 것이다. 사이비 산별운동, 정파적 산별운동이 아니라 대중적 산별운동의 기치 아래 더 단결하여 당면한 산별 사용자단체 구성과 5대 산별협약 쟁취를 위해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실천과정에서 공공연맹의 이번 결정이 얼마나 ‘소탐대실’ 인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지난 98년 산별노조를 최초로 만들면서 수많은 토론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렇게 다르구나’ 를 깨닫고 서로의 차이를 딛고 크게 하나되는 질적 전환을 가져 왔다. 그리고 우리는 2004년 역사적인 산별총파업과 산별교섭을 거치면서 또 한번 ‘우리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깨달음 속에 더 큰 단결과 전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98년 토론을 통해 확인된 차이를 모아 하나의 산별노조를 만들었듯이 2004년 산별교섭에서 나타난 또하나의 차이를 딛고 진정한 산별교섭을 쟁취하면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공공연맹은 자신의 원칙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공공연맹이 보내온 공문 제목에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하나되는 연대, 책임지는 투쟁, 혁신하는 연맹’

공공연맹은 서울대병원지부를 승인한 것이 6월22일 쟁의조정신청을 앞둔 보건의료노조 투쟁에 어떻게 찬물을 끼얹게 되는지 그런 결정이 스스로 내세운 ‘연대, 책임, 혁신’ 에 어떻게 합당한지 답변해야 한다.

진정한 산별운동을 위해 산별노조를 탈퇴한 서울대병원지부와 노동운동의 원칙을 세우면서 공공대산별을 지향하는 공공연맹의 새로운 만남이 과연 어떠한 산별운동을 전개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떤 규약을 가지고 산별적 단결과 규율, 민주주의를 실천할지 궁금하다.

말의 잔치, 주장의 홍수 속에 노동운동의 진정성이 새삼 그리워진다.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 노동운동 내부에서의 조직정의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우울한 것은 공공연맹이 서울대병원지부 가입을 승인한 것 때문이 아니다. 단지 우리 노조의 한 지부를 빼앗겼다는 그런 소아병적인 차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뭔가를 자꾸 잃어가고 있다는 게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동지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운동 승리의 희망을 함께 안고, 같이 가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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