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한국 노동세계의 풍경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무엇보다 노동운동 위기론은 하릴없이 횡행하고 있다. 잡다한 지향과 시각이 뒤얽혀 논의를 확장하는 건지, 더 정신없게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채용비리, 재정비리라는 양념에,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 방기라는 주재료까지 다 갖춰져 있는데 요리사들의 취향 따라 전혀 다른 ‘일품요리’만 만들어질 뿐이다.

게다가 최근 노동세계의 만화경이 다채로운 풍경이 아니라 어지러운 불순물의 조합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정신 차려도 시원찮을 판에, 금융산업노조의 선거 후유증과 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결정, 서울대병원의 보건의료노조 탈퇴와 공공연맹 가입에 따른 논란이 있었다. 노동운동 쇠락의 징후로 보일 뿐인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멀게는 비정규법안을 둘러싼 ‘교섭-투쟁’ 전술 선택 논란이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비정규법안 대응태도를 둘러싼 서로 다른 꿍꿍이속도 잠재적으로 걱정되는 사안이다.

금융노조와 서울대병원노조 건은 당사자들이 말하는 대립적 주장에 대해 순진하게만 대꾸할 수 없는 노조 내부 정치적 사안이다. 외부사람들은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이 각자 믿는 명분을 밀고나가 파장이 확대되는 순간 더 이상 내부 문제로만 놔두고 볼 수 없는 노동운동 위기를 가중시키는 전체 운동의 사안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 내부정치를 고려치 않고 공개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또 하나의 위기 징후이다.

금융노조 건은 말끔히 해결됐어야 할 사안이 법원이라는 제3자의 결정과 결부되어 또다시 불거진 만큼, ‘원만한’ 해결방안을 이미 찾은 자리로 지체 없이 되돌아서야 한다. 이번 일이 ‘나 살자고 다 죽자고 싸우는’ 노조운동의 풍토에 대해 자성해, 쇠퇴의 우려가 깊어지는 은행권 노동운동을 되살리는 반전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되짚는 ‘공식적인 토론’의 자리를 조만간 마련하는 ‘비공식적 합의’라도 할 필요가 있다. 내부 문제가 외부로 비화되어 상처를 남긴 만큼 전체 운동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일, 금융노조의 위상을 생각해봐도 이제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서울대병원 건은 산별합의안 10장2조와 관련된 옳고 그름이라는 원칙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어 원래 판단하기 쉬울 사안인데, 조직적 갈등과 결부되고 민주노총의 두 산별이 개입되고 이제 곧 민주노총까지 연관될 조짐이라 감히 함부로 얘기하기 힘든 수렁으로 접어들고 있다. 10장2조의 맞고 틀림이란 노동운동과 관련된 웬만한 활동가나 연구자라면 다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다.

모든 산별협약은 최저수준 협약이다. 또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은 황무지에서 산별협약을 구축해나가기 위한 고육지책을 선택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논란을 벌일수록 다른 사람들은 원칙과 창조적 응용 중 어디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 지,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제 한 발 더 나가 조직적 갈등과 정파적 판단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관련 당사자 모두 이 수준에서 멈춰 돌아서야 한다. 서울대병원노조는 상급조직 결정을 유보하고, 공공연맹은 점잖게 물리치고, 보건의료노조는 사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야 하며, 민주노총 집행부는 차분한 조정자로 남아야 한다.

비정규법안의 대응방식 논란에서도 정파적 대결구도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서로 다른 주장은 우리의 허점이 아니라, 전술적 다양성으로 노동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또는 다양한 대응방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술적 유연성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한 사안마다 목숨 걸지 말고 정파적 갈등에서 일보후퇴 하여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되, 전체 운동의 방향을 놓고 큰 논쟁판을 벌여 거기서 승부 거는 방법은 택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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