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금융감독 당국간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증권집단소송제 완화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그것. 올 1월1일 시행을 앞두고 재계는 지난해 줄기차게 증권집단소송제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했고, 그 결과 과거분식에 대해 2년간 유예기간을 받아냈다.

집단소송제 무력화를 위한 재계의 전방위 공세는 기자로 하여금 입을 딱 벌리게 만들 만큼 집요하고 줄기차다. 사실 집단소송에 잘못 휘말리면 해당 기업은 한 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어 재계로서는 그만큼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대표적 재계 압력단체인 전경련은 9일 ‘증권집단소송 시행 관련 애로사항 및 대응과제’라는 보고서를 또 다시 내놨다. 올해 들어서만 5번째 보도자료다. 학자, 변호사, 회계사들의 입을 빌어 매달마다 집단소송제 완화를 요구한 셈이다. 지난해 나온 보도자료들과 투명경영, M&A방어 등 관련 내용들에 포함된 요구까지 합하면 그 횟수는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다.

이렇게 나온 보도자료는 각 언론사 기자들의 손을 거쳐 활자화되고 영상화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집단소송제도에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은연중 인식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 노동계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정규법안 막기에 총력을 기울여서일까.

얼마 전 금융감독당국 담당자는 재계의 전방위 공세에 대해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워 힘겹게 방어하고 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그 시민단체란 곳도 재벌개혁에 앞장서 온 참여연대 한 곳에 불과하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윤리경영, 투명경영의 중요성이 기업들에 전파되고는 있지만 일회성 선언 수준에 그치고 있고, 실질적으로 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수적이다. 이 제도는 운용하기에 따라 일부 파렴치한 기업을 개혁하는 핵심이 될 수도 있다.

집단소송의 도입 취지는 기업들에 만연해 있는 분식회계를 사전에 방지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투명경영을 유도하는데 있다. 기업의 자발적 회개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돼 국가가 내린 특단의 조치다.

국가의 주도에 대해 재계는 공청회, 토론회, 청원서, 모의재판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이 제도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노동계는 너무 조용하다. 사후약방문이 아닌,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짜임새 있는 대응을 노동계에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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