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반대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학자, 현장활동가 중심의 연구모임인 대안연대회의가 앞으로 매주 1회씩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시장권력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과 대안을 제기하는 칼럼을 보내오기로 했다.<편집자주> 



KT 민영화는 어떤 경제이론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참으로 기괴한 '괴물'을 만들어냈다. KT 민영화로 우리 사회는 전 국민의 돈으로 구축한 시내통신망을 일개 사기업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공적 자산이 영어 표현 그대로 사유화된 꼴이다. 그 결과 사실상 시내망을 독점한 KT로 인해 경쟁체제가 도입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시내전화 가입자의 94%가 KT 고객이다. 이런 불균형 상태에서 KT에 대한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될 리 없다.

그렇다면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KT가 경쟁업체보다 비싼 요금을 받도록 차등 규제하는 이른바 ‘비대칭규제를 통한 유효경쟁정책’을 썼다. 그러나 이 또한 신자유주의 괴물 KT를 당해낼 수 없었다.

이미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고 있던 KT는 민영화 이후 경쟁분야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했다. 광고선전비는 20배, 판매촉진비는 10배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KT의 공세 앞에 경쟁업체들은 전반적으로 부실화 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민간기업에 불과한 KT가 통신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KT의 경쟁업체들이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정부는 KT가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음에도 통신요금을 내리는 것을 막았다. 그 결과는 KT의 초과이윤이었다. KT는 경쟁업체들의 부실화에 힘입어 막대한 이익에도 요금을 내리지 않아도 되었을 뿐 아니라 경쟁업체들을 압박해서 부실을 키우면 키울수록 안정적인 초과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민영 KT 매출 늘었으나 설비투자 큰 폭 줄어

민영화론자들은 시장에 맡기면 기업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이는 요금 인하 등을 통해 사회 이익으로 환원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KT 민영화와 유효경쟁체제는 이와는 정 반대로 KT의 요금 인하를 가로막고 초과이윤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빚었다.

문제는 단순히 초과이윤 발생 여부가 아니다. 설혹 일시적으로 초과이윤이 발생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재투자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KT는 엄청난 이익에도 오히려 투자를 줄였다.

민영화 이전 8조원대에 불과하던 KT의 매출은 12조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당기순이익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섰지만 설비투자는 오히려 민영화 이전의 반으로 줄었다. 2000년 3조5천억원 규모이던 설비투자비는 2004년 1조8천억원으로 줄었다. 그 결과 매출대비 설비투자 비중은 2000년 33%에서 2004년에는 15%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투자 감소는 곧바로 공공성 후퇴로 귀결됐다. 119, 112통신까지 '먹통'이 되어버린 지난 2월말의 경기남부와 영남지역의 전화 먹통사태는 민영 KT의 투자 감소와 통신의 공공성과의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용경 KT 사장 스스로도 인정했듯 이 사태는 늘어나는 통신수요에도 KT가 투자를 하지 않은 채 기존의 교환기에 무리하게 많은 통신회선을 수용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인터넷종량제 논쟁 또한 마찬가지다. KT 이용경 사장은 ‘인터넷 트래픽량이 매해 두배씩 늘어나는 상태에서 망에 투자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 인터넷이 올 스톱될 수밖에 없다’며 요금 인상을 위한 인터넷 종량제 도입을 역설했지만 정작 자신의 사장 재임 기간 내내 설비투자비를 줄여왔다.

내심 투자를 계속 줄이면 인터넷 속도는 떨어지게 되고 이런 상황이 오면 요금인상을 위한 종량제를 네티즌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주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동자에겐 구조조정 저승사자

문제는 이러한 KT에 대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규모의 투자를 강제할 수단을 사실상 시장도, 정부도 우리 사회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민영화된 KT 경영의 성과는 노동자도, 사회도 아닌 오로지 주주들만의 몫이었다.

기업의 수익 대비 배당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배당성향의 경우 KT는 2003년 50.8%, 2004년에는 50.4%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국내 주요 상장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그 고배당의 2/3는 해외투자자들의 몫이었다. 결국 KT의 주주가치경영은 국내에서 내수로 번 돈을 배당금 명목으로 해외로 퍼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IMF 전까지만 해도 정부지분 71%의 잘 나가던 국민기업이었던 KT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이다.

경제위기의 해결사를 자처하며 등장한 김대중 정권의 최우선 정책기조는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KT 민영화는 해외매각으로 결정되었고 99년 뉴욕증시에 상장되었다. 매각이 시작된 지 불과 4년만에 71%이던 정부지분은 0%,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던 해외투자자들은 49%를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정부는 법을 통해 해외투자자 지분 한도를 49%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민영화 과정에서 해외지분 49%는 전부 소화된 반면 국내매각은 진전이 없자 정부는 KT에 자사보유주 형태로 잔량을 모두 떠넘겼다. 그 결과 현재 KT 주식 중 26%가 자사 관련 주식이며 이는 상법상 의결권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의결 가능 주식을 기준으로 보면 2/3 가량이 해외투자자 지분이다.

이러한 기업지배구조가 만들어지자 약삭빠른 경영진들은 적극적으로 해외투자자들의 이익 대변자로 변신하였다. 이들은 사회공공성과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주주들을 위한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으로 일관했다. 이것이 이른바 KT의 저투자-고배당 경영의, 그리고 천문학적인 흑자에도 정규직 2만5천명, 비정규직 1만명을 감원한 이유이다.

민영 KT는 '해외투자자의 KT'…정부 개입능력 없어

국민의 돈과 노동자들의 땀으로 일군 국민기업 한국통신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민영화를 거치면서 해외투자자들의 KT로 변했다. 지금 그 KT를 이끌 민영 2기 사장 선출이 한창 진행 중이다. 무수한 인사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KT의 사회 책임 경영에 대한 문제의식은 취약하기만 하다.

KT 경영진들은 그저 현 기업지배구조에 충실하게 사장 선출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 KT 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정부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 갔다’는 한탄만 할 뿐, KT 기업지배구조에 개입할 엄두조차 못 낸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대안연대회의를 비롯한 소비자단체, 인권단체 등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모여 “국가기간통신사업자 KT의 사회책임경영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대응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들은 소비자, 노동인권, 사회공공성, 국민경제 등 다양한 관점에서 KT 경영을 진단하고 시민사회의 대응방향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기업은 성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이러한 흐름에 반대할 뿐, 이를 넘어설 적극적인 개입과 실천의 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사기업이 된 KT, 시장도 국가도 통제 못하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괴물' KT에 대해 시민사회가 나서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가 빼앗긴 공적 영역을 회복하는 작은 실천적 고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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