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수의 학문연구를 보조하면서 장학금을 받는 4년제 대학의 ‘연구조교’들과는 달라요. 우리는 생계를 목적으로 모교에 취업한 노동자입니다.”

대학 내 대표적인 비정규직으로 꼽히는 ‘행정조교’, 그 중에서도 학과사무실에서 학사행정, 학생지도, 기자재 관리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학과조교’들이 60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명의 학과조교들로 구성된 대학노조 안산공과대지부(지부장 강지은)가 고용보장과 직제개편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 4월8일.


“생계를 목적으로 모교에 취업한 노동자”

“우리들은 학교 내 정규직 직원들과 유사한 업무를 보고 있지만, 저임금과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재계약이라는 고용불안의 사슬에 얽매여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직 정년(57세)에 준하는 고용보장이 되길 바라고, ‘조교’라는 이름 대신 ‘직원’으로 불리길 원하고 있습니다.”

정진희 안산공대지부 부지부장의 말이다. 정 부지부장의 말처럼 안산공대지부 조합원들의 가장 큰 바람은 ‘고용안정’이다. 또한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조교’라는 명칭이 업무에 맞는 명칭으로 변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행정공백을 ‘조교’라는 허울 좋은 비정규직으로 채워나가고, 이렇게 고용된 비정규직 조교들은 매년 재임용이라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조교들은 이 학교의 졸업생들인데, 길어봤자 3년 써먹고, 자르고, 새로운 졸업생 뽑아 3년 써먹고, 자르고….”

정 부지부장은 전문대 조교들이 보통 3년으로 한정된 고용조건과 매년 돌아오는 재계약, 정규직 직원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직원의 1/3수준(월 평균 110여만원)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면학분위기 조성’이 조교들 몫인가?”

안산공과대 조교들은 이 같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3년 5월 노조를 설립했다. 또한 같은 해 11월 대학쪽과 단체협약을 체결, “5년의 고용을 1차적으로 보장하고 평가를 통해 3년씩 두 차례 고용을 연장해 최장 11년 동안 재직한 조교에 대해서는 일반직과 동일한 정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5+3+3 조교 재임용 제도’ 실시를 합의했다.

그러나 조교들의 최초 5년 계약만료 시한이 8월로 다가온 가운데, 학교쪽이 공개한 ‘조교 재임용 심사 평정서’의 내용을 두고 노조가 ‘해고’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평가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평가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개 항목 10개 문항에 대해 학과교수들로 구성된 인사위원회가 A~F(A=10점, B=8, C=6, D=4, F=2)로 점수를 매겨, 평점이 총점 80점 이상이면 ‘적격’판정을 받고 재임용된다. 그러나 노조는 △인격과 품위 △인간관계의 원만성 △학생지도에 대한 열의 및 자세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여부 △대학발전을 위한 노력 여부 등 교수들의 주관적 판단을 요하는 이 같은 평가는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한 학교쪽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진행된 임단협에서 학교쪽에 평가조항의 개선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 부지부장은 "왜 면학분위기 조성을 행정조교들이 해야 하나”라며 “이에 노조는 해고를 목적으로 작성된 ‘5+3+3안’을 거부하고, 정년 57세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에 대해 학교쪽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윤준한 법인사무처 계장은 “노조는 ‘5+3+3안’을 시행해보기도 전에 반대하고 있는데, 일단 시행해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보완하는 게 순서 아닌가”라며 “학교는 노조의 요구대로 평가서를 제출했고, ‘5+3+3안’을 지킬 것이다. 학교가 무슨 잘못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홍창훈 대학노조 조직부장은 “많은 대학들이 ‘조교’라는 이름으로 졸업생들을 데려다, 일반 행정직원들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학노조는 오는 7월부터 전국의 대학에서 근무하는 조교들의 처우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간 학내 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쳐 조교들의 처우개선을 이뤄낸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조교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돌입한 것은 안산공과대의 경우가 처음. 따라서 이번 파업이 각 대학 특히 2년제 전문대 내 행정조교들의 처우개선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돼 그 결과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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