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최저임금 '철'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4월15일 전원회의를 열고 올 9월1일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적용될 최저임금 심의에 들어갔다.

매년 노·사·공익 간 힘겨운 줄다리기 속에 결정되는 최저임금. 그러나 지난해 8월말 현재 당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125만명(전체 노동자의 8.8%)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는 등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저임금 및 임금격차 해소라는 본연의 목적에
기획 연재 순서
1. ‘최저임금’ 그 이름값에 대하여
2. 사각지대 속의 사각지대
    - 택시, 감시단속, 이주노동자
3. 한계선에 선 그들, 통계로 만나다
4. ‘근로빈곤 탈출’ 제도개선 방안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4회에 걸쳐 최저임금, 그 한계선에 선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면서 ‘근로빈곤 탈출’ 기제로서 최저임금의 역할과 최근 도입방침이 확정된 근로소득보전제도(EITC) 및 기초생활보장제와의 연관성들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2,840원이다. 주44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할 때 월급으로는 64만1,840원이다. 매년 최저임금은 일정비율로 인상되고 있지만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들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에는 태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 50%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적용되더라도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하물며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어떨까. 남들과 똑같이, 아니 더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과연 2005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 실태조차 드러나 있지 않은 최저임금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월 20만원’짜리 목욕탕 인생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8)씨는 지난 4월 청와대 신문고에 하소연을 털어놨다.

하루 12시간씩 한 달 26일을 꼬박 일해야 기본급 42만9,600원을 받는다는 그가 지난 3월에 받은 총 급여는 기본급을 포함, 고작 20여만원에 불과했다. 집안일과 건강상의 이유로 26일 만근 중 18일밖에 일을 할 수 없었는데, 만근을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연월차·야간수당 등을 비롯해 상여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월급이 ‘20만원’이란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18년간 택시운전을 해 온 김씨가 받은 월급봉투 중 가장 얇았던 봉투였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한 달 회사에 가져다 준 돈은 160만원.

“만근을 채우지 못하면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회사 규정을 백분 이해한다고 쳐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8일을 일했는데, 그것도 주야로 꼬박 12시간씩 일했는데 20여만원이 한 달 급여라니 이해가 됩니까?” 반문하는 김씨.

지난 88년부터 운전대를 잡아온 그가 목욕탕에서 하루살이 삶을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인 두 딸을 둔 그가 지금까지 집에 가져간 돈은 한 달에 고작 70~80만원. 턱없이 부족한 그의 월급으로 4명의 가족이 살 수는 없었다. 생계문제로 아내와 다툼이 잦아지자 아내는 별거를 요구했고, 결국 회사 근처 목욕탕에서 3년째 새우잠을 자고 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김씨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 힘들어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벌어서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두 딸이 결혼해서, 아비보다 나은 사람 만나 잘 사는 보고 싶어서 질긴 명줄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는 대로 ‘감사합니다’

이주노동자 루벨(방글라데시·30)씨를 만난 건 그가 모처럼의 휴일을 만끽하고 있던 지난 5일 저녁 10시께 서울의 영세공장들이 밀집한 지역에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식사시간 40여분을 제외하고 하루 12시간씩 10평 남짓한 인쇄공장에서 쉬지 않고 일한다는 그는 이날도 어김없이 2시간30분 동안의 잔업을 포함, 12시간 노동을 다 채우고서야 기자와 만날 수 있었다.

하루 12시간씩 26일을 일한다고 하니 그의 월간 총 근로시간은 312시간이다. 초과근로가 매일 같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는 최저임금(통상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근로시간으로 따질 수 있을 것이고, 실제 초과근로에 따른 임금 50% 할증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 그의 시급은 2,724원(85만원/312시간)이다. 최저임금 시급 2,84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행 최저임금법과 노동부 해석에 따르면,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수습 3개월 이내인 자를 제외하고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당연, 루벨씨도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루벨씨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한 달 85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3년 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 땅을 밟은 루벨씨가 처음 일한 곳은 LPG 가스통을 만드는 업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했지만 그에게 쥐어진 돈은 고작 42만4천원이었다. 고국에 40만원을 부치고 나면 그의 수중에는 달랑 2만5천원만 남았다.

“돈 벌러 한국 왔는데 둘째 형이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등록금 등 송금해야 할 돈이 많아졌어요. 제가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못한다고 해도 집에 보내야 할 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것이 산업연수생 2년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신분을 감수하고 영세한 가구공장으로 이직을 하게 된 이유였다. 가구공장에선 그래도 한달 급여가 80만원이나 돼 집에 송금도 많이 하고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루벨씨는 어느 날 갑자기 ‘일감이 없다. 나가라’는 사장의 말에 단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쫓겨났다가 다행히 지금의 공장에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85만원의 월급을 받는 루벨씨는 고국에 50만원을 송금하고, 가끔이지만 고국의 집에 국제전화하는 비용으로 15만원 가량을 쓸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20만원으로 동료들을 만나 마음껏 쓸 수 있다며 행복해 하는 그.

“한국의 노동자들은 월급을 올려달라고 파업도 하고, 임금이 체불되면 고소·고발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야 제발 이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고 월급만 꼬박꼬박 나오면 더 바랄게 있나요”라고 말하는 루벨씨.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그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인가.


2007년 최저임금 적용된다지만

1년 내내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경기도 분당의 H아파트 경비원 박아무개(65)씨. 명절이나 공휴일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휴가는 아예 생각도 못한다. 집안에 특별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결근해야 할 경우에는 동료 경비원을 대신 근무시키고 비용은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80만원 남짓. 이 임금에 퇴직금과 각종 수당이 모두 포함돼 있다.

박씨 같은 경비원들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해도 근로기준법상 가산수당을 받지 못한다. 휴식시간 및 대기시간이 많은 경비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를 동일하게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경비원들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부르며 가산수당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기 때문.

김씨는 “아파트 시설감시와 함께 주차관리, 잡초 뽑기, 정원수 관리, 열쇠보관, 우편물 전달 등의 온갖 잡일이 경비의 몫”이라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경비원을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며칠 전 김씨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경비실을 잠깐 비웠다가 근무를 게을리 했다며 시말서를 요구받기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식들 결혼시키느라 평생 모아 마련한 집을 팔아, 전세에서 월세로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남은 인생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내가 몸이 약해서 식당이나 청소일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뭐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올해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2007년부터는 감시·단속적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그러나 박씨 같은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당장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2007년이 멀기만 하다. 

“불분명한 초과수입금 최저임금액 산입은 부당”
최저임금법(제5조3항)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지급제, 기타도급제(사납금제, 월급제)로 정해진 임금을 최저임금액에 산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납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택시노동자들의 임금은 기본급과 제수당, 상여금, 초과수입금(사납금을 초과한 개인수입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초과수입금이 최저임금액에 산입된다. 그러나 초과수입금은 회사에 사납금을 납입한 뒤 남는 금액을 본인이 가져가는 것으로 임금명세서에도 잡히지 않는다. 또한 통상임금과 평균임금 산정에도 제외된다.


결국 늘 사업장 밖에서 일이 행해지는 데다 불합리하게 책정된 사납금제 때문에 초과수입금이 얼마인지, 총 노동시간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택시노동자들은 초과수입금을 최저임금액에 산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김성한 민주택시연맹 정책국장은 “대부분 택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1일 10시간 이상이지만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사실상 이들에게 초과수입금 자체가 없는데도 이를 최저임금액에 산입해 오히려 택시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이호웅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서울 64개 택시회사 100명의 택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하루 7만8천원에서 8만5천원 가량인 사납금도 채우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30%에 달했다. 또한 사납금 이외에 1만~2만원을 초과수입금으로 채우는 노동자가 42%, 3만~4만원인 노동자가 16%였다. 결국 택시노동자 10명 중 9명은 사납금만큼의 수익도 내지 못해 자기 돈으로 메우거나 하루 1~4만원 가량만 개인 수입금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법인택시 소속 택시노동자 16만여명(통계청 2004.10.) 가운데 상당수가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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