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노·사·공익 간 힘겨운 줄다리기 속에 결정되는 최저임금. 그러나 지난해 8월말 현재 당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125만명(전체 노동자의 8.8%)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는 등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저임금 및 임금격차 해소라는 본연의 목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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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는 4회에 걸쳐 최저임금, 그 한계선에 선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면서 ‘근로빈곤 탈출’ 기제로서 최저임금의 역할과 최근 도입방침이 확정된 근로소득보전제도(EITC) 및 기초생활보장제와의 연관성들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에서 청소용역 노동자로 일하는 두 남매의 어머니 윤옥순(63)씨의 하루업무는 새벽 5시30분 화장실 청소로 시작된다. 건물 한 층에만도 몇군데씩 있는 화장실을 돌며 휴지통을 비우고, 세제를 풀어 바닥을 닦고, 물기까지 제거하는 일은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오전 휴식시간과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한 윤씨의 하루 업무시간은 총 10시간30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당 평균 53시간을 근무하면서 윤씨가 받는 월급은 65만원 안팎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80만원이 넘는 임금을 받았지만, 지난해 7월 노동시간 단축과 맞물려 9월부터 최저임금이 시급 2,840원으로 결정되자 용역업체가 기존 주 44시간이던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했고, 이에 따라 그 전에 64만7,490원씩 받던 기본급이 59만8,790원으로 줄었다. 정확히 현행 시급으로 주 40시간(월 209시간)씩 일했을 때 받는 월급 59만3,560원보다 고작 몇 천원 많은 금액이다.
또 올해 초에는 윤씨가 속해 있는 용업업체의 계약방식이 기존의 수의계약 방식에서 공개입찰 방식으로 변경됐는데,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입찰금액을 낮춤에 따라 호봉수당과 조정수당을 제외한 상여금 및 각종 수당이 삭감돼버렸다.
여기에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윤씨의 노동시간이 주당 53시간에 이르는 것을 감안했을 때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된 현재의 월급은 실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윤씨는 소아마비와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딸과 아직 미혼인 아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그가 받는 월 65만원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최저임금’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지난달 5일에 걸쳐 파업을 벌인 결과, 올 초 삭감된 급여 중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됐지만 윤씨 가족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실제 윤씨처럼 용역업체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현재 비정규직군 중에서도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처해 있고, 또한 이들의 저임금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2001년 저학력·고연령·저기능·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여성가장을 상징하는 용역업체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실태와 근로실태를 조사한 박진영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조사연구부장은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용역계약을 통해 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에 있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여성노동자의 절반 가까이(42.1%)가 50~59세로, 배우자가 없는 경우도 4명 당 1명꼴인 25.5%였다. 그러나 이들의 95.9%는 월 7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60만원 이하를 받는 사람도 89.7%나 됐다. 이와 함께 가구 내에서 본인만 취업을 했다는 응답이 34.9%에 달해 중년여성 가장들의 생활고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여줬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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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이상 받지만, 생활은 최저”
윤씨는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24평짜리 아파트에서 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윤씨 가족의 총수입은 윤씨가 받는 월급 65만원과 같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시설관리 용역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이 받아오는 월급 85만원을 합친 1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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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하고 남은 돈 30만원은 아들의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따로 적금을 붓는다. 빠듯한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다 보니 가족 중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속수무책.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윤씨의 기도 제목은 언제나 ‘가족의 건강’이다.
“이 돈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냐고요? 당연히 어렵고 힘들죠. 그냥저냥 살아내고 있지만, 유치원생 지능밖에 안되는 딸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돈이 많다면 좋은 시설 같은데 보내주고 싶은데…. 월급을 얼마 정도 더 받고 싶냐고요? 숨 좀 쉬면서 살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 사람이 한 달에 100만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새 60줄을 훌쩍 넘어선 윤씨.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청소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은 윤씨가 원하는 '적정임금'은 1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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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외식하기도 힘들고, 옷과 생필품은 아파트 단지에 주기적으로 들어서는 중고시장에서 구입해 쓴다는 윤씨네 가족.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
2005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윤씨네 가족처럼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s)’이 130만명에 이르고<상자기사1 참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아니지만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 수입으로 실제 생활이 어려운 차상위계층은 350만명에 달한다.
올해로 3년째 고려대에서 청소용역 일을 하고 있는 정아무개(70)씨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이 받는 월급 70만원과 부인이 받는 월급 65만원을 합친 135만원이 정씨네 여섯 식구 한 달 생활비다. 몇년 전 둘째 아들이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부터 아들 내외와 두 명의 손주들이 정씨와 한 지붕 아래서 살게 됐다.
135만원 중 100만원은 쌀값, 부식비, 세금, 연료비, 정씨 내외 당뇨·혈압약값, 교통비, 경조사비 등으로 쪼개 쓰고, 남는 돈 30만원은 쉬고 있는 둘째 아들을 주기 위해 계를 부었다. 최근에는 며느리가 동네 옷가게 점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추가로 80만원 정도 수입이 늘었지만, 일을 구하기 전까지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느라 불어나버린 카드빚을 갚고, 손주들 유치원비에 학원비까지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부천에 위치한 동네 의원에서 식당 조리사로 일하는 이영순(53)씨도 자식들 학비부담에 몇년째 허리가 휜다. 올 초 큰딸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못 구한 상태이고, 지난 봄 대학에 복학한 막내아들은 졸업하기까지 2년이 넘게 남았다.
큰딸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해 겨우겨우 자기 용돈벌이는 하고 있지만 생계에 도움을 줄 정도는 아니고, 이씨가 벌어오는 100만원 남짓의 돈이 이들 가족의 한달 생계비다.
“이리저리 쪼개 쓰고 나면 남는 돈은 없고,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에요. 큰딸이 얼른 취직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이씨는 돈 걱정이 들기 시작하면 밤에 잠도 안 온다며 한숨을 내쉰다.
한편 최근 청년실업문제가 장기화되면서, 대졸 취업자들조차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혹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못 배우고 나이든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저임금 문제가 청년층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o'대학에서 행정조교로 일하고 있는 김수연(27)씨가 받는 한 달 월급은 80만원. 주5일근무에 평상시에는 하루 8시간근무를 하는 게 보통이지만, 시험기간이나 발표수업이 있는 기간이면 밤샘 업무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은 전혀 없다.
“학교쪽은 몇년만 참고 열심히 일해주면 정규직 교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얘기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잖아요.” 당장에 취업이 어려운 젊은 조교들의 처지를 이용해 대학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김씨.
“80만원을 12로 곱하면 960만원이에요. 잘나가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연봉이 3천만원을 훌쩍 넘는다는데, 그에 비하면 저는 3분의1도 못 받고 있는 거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요.”
‘최저임금’ 이름값 하려면?
지난달 15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올해 9월부터 내년말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에 대한 심의가 시작된 데 이어,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는 최저임금법에 대한 대폭 개정이 이뤄져 최저임금제도가 ‘빈곤계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상자기사2 참조>
개정된 최저임금법은 △노동시간 단축시에도 주 44시간으로 환산한 최저임금 보장 △원하청 사용자 연대책임 등을 명문화했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노동시간이 주40시간으로 단축되면서 논란이 가중된 바 있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주40시간 실시 사업장이라도 주44시간으로 환산된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최저임금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부 김은실 사무관은 “국회가 최저임금이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수용한 것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저하를 막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해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됨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고, 이에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시급으로 계산하면 약 3,900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 달을 기준으로 81만5,100원으로, 지난 2004년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한 달 통상임금(163만6천원)의 절반에 해당되는 액수이며 같은 해 전 가구 생계비 230만3천원의 35.4%인 수준이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29세 이하 단신노동자 생계비 113만5천원의 71.8%이기도 하다.
7월초께 결정될 내년 최저임금에 이같은 노동계의 요구가 얼마만큼 반영될 수 있을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과 귀가 최저임금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취재를 위해 만나본 노동자들은 본인이 희망하는 최저임금 금액을 묻는 질문에 “적어도 100만원, 좀 더 욕심을 부리면 120만원 정도는 받아야 ‘숨 좀 쉬면서’ 살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최저임금이 현실화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대노총 등 23개 노동시민사회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도 “노동자가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받고 일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차별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인권이 보장되도록 최저임금이 현실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어떻게 화답할지 심의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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