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 주세요. 병원장 수녀님하고 대화 좀 하게 해주세요.” 지난 27일 오후3시. 한국순교복자수녀회관은 ‘살려달라’는 노동자들의 절규에도 아랑곳없이 굳게 잠겨 있다. 대신 수녀회관 이웃에 살던 주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 “좋은 일 많이 하시는 수녀님들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수군거린다.

지난달 30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운영하는 부평 성모자애병원은 영양과 직원 30여명에게 해고 통보서를 발송했다. 그리고 경영악화로 더이상 식당 운영이 어려워 외주화하기로 했으니, 병원과 식당운영계약을 맺은 용역회사 ‘(주)한얼’과 다시 근로계약을 맺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은 성모자애병원 영양과 직원들은 ‘병원장 수녀와 대화’를 요청했지만 원장 수녀는 ‘지병이 악화돼 입원 중인 관계로 만날 수 없다’며 한달째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와 성모자애병원지부 조합원들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문을 두드리게 된 것. 그러나 수녀회는 “병원 문제는 병원 자체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만 전한 채 이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물김치 짜다’고 30명 해고?

최근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추진 방침을 밝히는 등 정부의 노골적인 의료산업화 정책 아래 의료기관들은 ‘총성 없는 병상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이러한 수익위주의 병원 경영은 자연스럽게 인력감축,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용역화 등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성모자애병원의 영양과 전직원 용역화 결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병원은 ‘경영악화’가 식당 외주화의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노조는 “병원쪽의 경영논리는 사실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타당성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모자애병원지부에 따르면 2002년까지 적자였던 의료손익은 2003년 들어 5700만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또 지난해에는 9억3100만원의 흑자를 봤다. 경상손익 역시 2001년 49억원의 적자에서 지난해 11월 3억9000만원 정도로 줄어들어 호전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병원은 현재 20여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래와 응급센터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며, 인천시 서구 연희 3지구 1만7,000여평 부지에 건물 9,540여평, 750병상 24개 임상과 규모로 신축병원 공사 중에 있다.

노승태 성모자애병원지부장은 “이러한 병원의 억지논리는 지난 2월 ‘물김치사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지부가 공개한 ‘물김치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2월20일 저염식 환자를 위한 물김치에 누군가가 소금을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장 수녀는 ‘3일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영양과 전체 직원이 사표를 써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3일 후 병원은 영양과 30명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 9명 전원 사쪽 징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전원 징계해고 후 용역전환’을 결정했다.

노조가 징계위원회의 절차상 내용상 부당성을 주장하자, 병원은 다시 ‘경영수지 적자로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돼 식당 외주용역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그 달 28일 이와 관련한 노사협의회 개최를 노조에 요청했다.

14년을 근무했다는 영양과 황정옥 조합원은 “누가 그랬는지, 당시 정황이 어땠는지 지금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쪽은 식당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면서 “너무 억울해 경찰을 불러서 조사하자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징계해고였다”고 토로했다. 황 조합원은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것도 분하지만 더 가슴을 후려치는 것은 병원쪽이 10년, 20년을 이 식당에서 뼈빠지게 일한 직원들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밥은 약, 우리도 환자 치료하는 사람'

하지만 ‘물김치가 조금 짠 게 얼마나 대수라고 부서 전 직원을 해고까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양과 조합원들이 ‘억울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물김치가 ‘사소’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양과 조합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로 반드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식당과 병원식당은 목적 자체가 다르다. 저염식 환자에게 ‘과다한 염분’은 생명과 직결된다. ‘우리는 밥이 아니라 약을 짓는 사람들’이라는 영양과 조합원들의 주장처럼, 병원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치료식’이다.

노조가 식당용역화를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양과, 시설과 등 간접부서 용역화는 조합원의 생존권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하게는 환자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경영수지’를 이유로 외부에 식당을 맡겼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환자들의 건강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10명 중 8명은 자궁을 들어냈다”

영양과 조합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이같은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영양과 한 조합원은 “병원식당일이 그리 녹녹하지 않아 하루 10시간 가까이를 서서 일하다 보면 몸에 더 이상 파스를 붙일 곳 없을 만큼 온 몸을 파스로 휘감아야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조합원은 “멀쩡한 속옷이 한 벌도 없다”고 한다. 하루 종일 불 옆에서 일하기 때문에 바쁜 배식시간에 급하게 화장실을 가면 흐르는 땀과 속옷이 범벅이 되어 속옷을 내릴 때 찢어져버리기 때문.

또 다른 조합원도 “너무도 힘겨운 육체노동 때문에 몸이 혹사되어 남들보다 갱년기가 일찍 찾아온다”며 “그래서인지 10명 중 8명은 자궁적출수술을 받아 자궁이 없다”고 밝혔다. 정리해고 통보 이후에는 30대 조합원까지도 하혈이 멈추지 않아 병원에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원장 수녀님, 우리가 범죄자로 보입니까”

지난달 1일 영양과 30명 전원을 포괄승계 형식으로 용역회사로 인계한 병원쪽은 영양과 조합원들과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최근 의료비 감면 혜택과 자녀 학자금 등은 종전대로 지급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1년마다 식당과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 없다”며 원장 수녀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병원장은 10m이내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조합원들의 출입을 통제해, 원장이 입원한 병실 주변 6개 병실마저 환자배식이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또한 병원 내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법원에 제출해 노사가 공방 중에 있다.

지부는 “대화를 해야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는데 접근마저 통제하니 답답하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사태가 해결되자마자 또다시 식당용역화 반대투쟁을 시작하는 보건의료노조도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노조는 “문제는 병원들의 돈벌이경쟁이 가속화되는 데 있다”며 “성모자애병원에 용역이 도입될 경우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들이 연쇄적으로 이를 따를 것”이라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노조는 산별교섭 기간 중임에도 총력을 집중해 이번 사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뷰> 성모자애병원 황정옥 조합원
영양과 부서의 대장격인 황정옥 조합원<사진>은 지난 27일 보건의료노조 1차 총력집회 삭발식에서 그동안 곱게 길렀던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버렸다. 삭발식 직전까지도 병원 식당에서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던 그를 어렵게 만났다.


-  갑작스럽게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을텐데.
"다른 부서와 달리 영양과 부서 직원들은 대부분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벌지 못하면 가족들이 당장 굶게 생겼다. 그래서 아파도 파스 붙이고 탈의실에서 링겔 맞으며 일했던 직장인데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으로 몰려 직장에서 쫓겨나니 허탈하다."


-  병원쪽은 경영악화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병원장 수녀님이 부임했을 때 ‘세상에서 물일 하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며 ‘병원 신축하면 사람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한데 왜 아주머니들을 내보내겠느냐’는 말을 믿었기 때문에 ‘물김치 사건’이 있었을 때만 해도 ‘설마’했다.
우리는 사람이다. 솥단지같은 집기는 팔아넘길 수 있지만 적어도 사람한테는 ‘왜 병원이 어려운지, 얼마나 위기상태인지, 직원들이 무엇을 협조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같이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을 솥단지 취급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


-  포괄승계 조건이기 때문에 불이익이 없다고 병원쪽은 설명하고 있다.
"14년간 이 병원에서 환자들 밥을 지어왔다. 포괄승계라 하더라도 병원이 업체와 1년마다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파리목숨’이 될 것이다. 용역회사와 도장을 찍으면 당장 병원과는 무관한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자식들 키우며 살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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