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포럼(WSF)’과 투기금융자본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탁’ 설립을 주도한 행동하는 지식인 이냐시오 라모네.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22일 방한한 라모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편집인은 각종 언론과의 대담, 강연회 등에서 ‘반세계화’와 ‘미국의 문화패권주의에 맞선 문화다양성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5일 오후7시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초청강연회에서도 라모네 편집인은 세계화에 맞선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강조했다.


세계화의 '주범'은 금융투기자본

이날 강연에서 라모네는 “세계화란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며 “국가에 대항하는 시장, 사회에 반하는 시장,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전쟁이 세계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의 진전을 통해 권력의 위계질서가 바뀌었음도 설명했다. 라모네는 “디지털혁명 덕분에 전세계 증시는 24시간 항상 열려 있게 되었으며, 결국 투기자본이 등장했다”며 “이제 새로운 부는 금융투기자본에 의해 생성되며, 세계화란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거로 전세계에서는 매일 2조5천억달러 가량이 거래되는 반면, 프랑스의 1년 예산은 2억5천달러이고,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25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예를 들었다. 거래되는 돈의 양이 너무 커서 이제 그 어떤 국가도 금융자본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모네는 이와 관련 “전세계를 떠도는 자본은 투자할 국가를 선택하며,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경제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세금을 없애고, 인력 등 구조조정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뉴질랜드 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료한 국가는 더이상 국가건물도 국가소유가 아닌 상황으로 된 것.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폐해란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금융자본의 세계지배에 맞선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연합 ‘아탁(ATTAC)’의 금융자본 통제운동을 소개했다.

라모네는 “미국 경제학자 토빈은 금융거래에 0.1%의 아주 작은 세금을 물리자고 했는데, 그것은 기계속의 작은 모래알과 같은 것”이라며 “금융자본이 증시에서 한번 사고파는데 0.1%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백번이면 10%가 되고, 천번이면 100%가 되어서, 결국 금융자본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라모네는 또 “토빈세로 걷힌 세금은 제3세계 지원금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빈곤국 문제 해결에 130억달러를 책정하고 있는데 토빈세가 실행되면 1,500억달러로 10배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 지배의 핵심은 ‘문화산업’

라모네는 강연에서 세계화란 군사·정치적인 것이 아닌 ‘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강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라모네는 “영화·TV 등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하고 있고, 미디어는 세계화를 모던한 것으로 알림으로써 사람들의 세계화에 대한 대항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세계화의 첨병 미국지배의 핵심은 광고, 영화, 음악 등 문화이고, 특정한 생활양식을 유일한 것처럼 강요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장의 근거로 미국의 영화산업을 들었다. 현재 미국은 전세계 영화의 5%만을 생산하고 있지만, 전세계 영화수입의 50%를 가져갈 정도라는 것. 미국식 세계화의 흐름이 각 나라에 고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라모네는 “이러한 ‘조용한 억압’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저항없이 전파되고 있으며, 문화적 동질화에 대한 거부는 사회적 소외를 낳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라모네는 그러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며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인디언, 남미국가 등 원주민들과 농업의 산업화로 위협받고 있는 소농 등 농부들 및 미국의 문화지배로 활동이 위축되거나 미국 문화의 ‘모방자’임을 깨닫게 되는 예술가 등의 투쟁을 소개했다.

이어 프랑스에서의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소개한 라모네는 “경제적 세계화는 각국의 문화 정체성을 저해하며, 이에 대항하는 문화다양성 투쟁은 반세계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스크린쿼터 투쟁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인데, 투쟁하는 많은 이들도 모르고 있다”며 “한국의 스크린쿼터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라모네 편집인은 24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만나 ‘북핵’을 주제로 환담한 데 이어 “판문점에 가보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26일 판문점을 방문했다. 이날 저녁 프랑스 영화제 참석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공식일정을 마무리한 라모네 편집인은 금요일(27일) 출국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문화다양성포럼은 “문화를 통한 공존, 균형 잡힌 교류만이 인류의 이상을 구현하는 길”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통해 각국의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스크린쿼터 사수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 지난 2월 포럼을 창립하고,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성명도 냈는데 의미는.
“정부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21일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그 취지와 의의를 알리는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를 환기시키기 위해 문화다양성포럼은 20일 ‘문화를 통한 공존, 균형잡힌 교류만이 인류 이상을 구현하는 길’이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재 진행중인 통상협상과 문화정책간의 관계를 정확히 알리며, 향후 통상협정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


- 그 일환으로 라모네 편집인을 초청했는데, 방한 성과를 꼽는다면.
“문화다양성 협약이 체결될 오는 9월 유네스코 총회를 앞두고 우리의 마음이 급했다. 그러다 보니 대담과 강연 등 빠듯한 일정을 잡았다.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해해주신 라모네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방한을 통해 문화계는 물론 많은 시민들에게 ‘문화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문화다양성포럼의 활동과 향후 계획은.
“현재 129명의 포럼 회원이 가입하고 있다. 미술·무용쪽 회원을 배가해 연말까지 150여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만큼 교류를 통해 연대의식을 높일 예정이다. 지난 2월 창립해 3, 4월에는 각각 연극과 건축을 주제로 한 회원 토론이 있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연대의식 고취와 사회적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 공유 프로그램을 갖고자 한다. 무리하지 않고 올해는 내실다지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 내년에도 초청강연과 문화다양성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나.
“물론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이 (올해) 체결되더라도 ‘문화패권주의’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연말에 작가, 프로젝트를 선정해 시상식도 가질 계획이고, 매년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초청강연 등 알찬 행사를 준비하려고 한다.”


- 문화다양성포럼 사무실과 홈페이지 구축 계획은.
“현재 MK픽처스 한 켠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별도의 사무실은 당분간 필요하지 않을 듯 보인다. 홈페이지는 7월경에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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