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야할 노조’ <한겨레>의 기획기사 제목이다. 3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기획기사의 결론은 “버려야 산다”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버려야 할 것은 단위노조의 권한이고 그 대안은 산별로 권한 이전이다. 현재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을 노조의 권한 배분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신문은 김원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의 “상급단체의 감사권을 확립해 단위 노조의 비리를 감시해야”한다는 주장을 덧붙이고 있다.

과연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의 핵심 대안이 기업별노조의 권한을 산별로 넘기고 그 통제를 강화하는 것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노무현 대통령조차 시인했듯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그 결과 오늘날 기업은 우리 사회의 성역으로 되어가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에 대한 반대행동이 다소 거칠었다는 이유로 학생회 탄핵의 사유가 되고 보직교수 전원의 사의 표명으로 이어지는 게 지금의 현실 아닌가!

성역화되는 기업 앞에 무력화된 노조

문제는 노동운동이, 이러한 기업의 신자유주의적 성역화에 맞서 저항하기보다는 그 흐름에 편승하여 적당한 실리를 추구해 온 데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나마 기업 내에서 실리라도 추구할 수 있는 노조는 이미 소수이다. 상당수 기업에서 노조는 성역화되는 기업 앞에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노동현장에서 노조는 공동화되어 가고 있다. 권한이 넘쳐 이를 산별노조에 넘겨줘야 하는 게 아니라 너무도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게 대부분 노조의 현실이다.

필자가 속한 KT 노조만 해도 그렇다. 회사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미행, 감시하여 그에 충격을 받은 노동자들이 무려 4명이나 정신질환으로 산재요양판정을 받아있지만 노조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등 시민사회가 나서서 중대한 인권침해임을 강조하고 KT 기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지만 노조는 외면하고 있다. KT의 고배당 경영, 인터넷종량제 도입 움직임, 전화먹통사태 등을 계기로 시민사회가 ‘통신 민영화에 대해 재논의해야 한다’며 활발한 비판을 전개한 것과는 달리 노조는 어떤 유의미한 사회참여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지금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조의 권한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 날로 성을 높이 쌓아가며 성역화되는 대기업들에 대해 노동운동이 현장으로부터 저항하는 운동을 만들어 낼 능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을 감시하고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진지여야 할 노조들이 기업의 힘에 굴복하여 기업의 성역화는 방치한 채 사회적 합의라는 탈출구를 쫓아 가거나 혹은 기업 내에서 방어적 실리추구에 머무는 게 위기의 핵심인 것이다. 기업단위의 강성투쟁이 노동운동 사회적 고립의 대안이 아니듯, 기업노조의 권한을 산별노조로 위임하는 게 사회운동성 상실의 대안일 수 없다.

위기극복 핵심, 노조의 사회운동성 회복

그래서 위기 극복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성의 회복이다. 기업을 감시하고 통제할 사회의 진지로서 노동조합,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조합운동의 부활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에 있다. 운동성의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권한이 집중된 산별노조는 오히려 분파주의와 관료주의의 온상이 될지 모른다. 그 결과 현장 차원의 노동운동 공동화 현상은 심화되고 노동운동은 전문화된 노동관료들의 잔치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본질적이지도 못한 진단을 <한겨레>가 노동운동의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대서특필하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권한이 집중된 산별노조가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노동운동의 위기 진단과 대안 제시가 사회운동성이 거세된 관료적 산별노조와 그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의 산물은 아닐까! 이러한 우려야말로 최근 봇물처럼 제기되는 노동운동 위기론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위기의 측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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