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는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진행되고 있다. 채용비리와 비정규 문제에 대한 속수무책적 대응에서 드러나듯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들의 ‘도덕성, 평등과 연대성 상실’에서부터 고착화된 기업별(대공장) 노조 체계와 기업단위 노사 담합구조, 구조조정과 노동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에게만 전가되는 ‘자본의 위기’에 대한 패배적 대응 등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현 노동운동 안에서 이러한 노동운동 위기의 극복방안을 찾을 수 있는 걸까? 위기 탈출의 희망이 내부에 있기는 한 걸까?

중앙대 사회학 콜로키움은 지난 19일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과 하부영 현대자동차노조 전 부위원장을 초청, 세 번째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펼쳤다.<사진>


“노동운동 체제 전환기를 놓쳤다”

우선 하부영 전 부위원장은 사회변화 상황에 걸맞는 노동운동 체제 전환기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95년 11월 민주노총을 설립할 당시만 해도 현장은 ‘신경영전략’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임단투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 기업별 노조의 한계, 실리주의 함정에 빠지는 조합원들, ‘자판기 노조’로의 전락 등을 극복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결국 이는 민주노총 설립과 함께 1기 노동운동 지향점이었던 ‘사회개혁 투쟁’으로 나타났는데, 당시 노조 활동가뿐 아니라 선진노동자들은 사회체제와 구조조적인 모순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분노하며 정치파업을 해 내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합의에 따른 후유증으로 상층 지도부간 불신과 갈등은 더욱 조장됐고, 현장까지 정파별 줄 세우기 급급해졌다. 결국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 ‘누가 권력을 장악하느냐’는 데에만 신경 썼고 현장 노동자는 상층 지도부의 동원부대요,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따라서 대중성을 떨어지고 지도부는 고립됐다.

하 전 부위원장은 “신자유주의 본질과 폐해를 정확히 밝혀 대중과 공유하지 못한 채 상층 중심의 권력다툼과 즉자적이고 반복적 투쟁, 총파업 전술에 매몰됐다”며 “‘외부’로부터 기인한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내부’에서 가장 큰 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기만의 착시현상 초래, 대공장노조 책임론

또한 그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 대한 ‘과보호론’, ‘고임금론’, ‘집단이기주의’라는 정권과 자본의 비판에 대해 “전국민을 허구와 기만의 체면상태로 빠뜨리는 착시현상이자 비정규직을 이용해 정규직의 발목을 잡는, 정규직 노조 무력화를 목표로 한 이이제이(以?制?) 마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문제는 심화되는 정규직의 고용불안, 자본의 분할정책에 따른 비정규직의 저임금”이라며 “집단 이기주의를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 집단의 이기주의로 확대, 강화해야 하며 의식의 계급화, 사회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의 위기극복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노동조합의 도덕적 투명성 확보 △비정규직 포함하는 산별노조 전환 △활동가들의 새로운 각성과 성찰 △새로운 지도력과 대중성 확보 및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 창출 등을 제시했다.

특히 이 가운데 최근 채용 및 회계비리와 관련, 회계 책임자의 주기적 교육시스템 확보는 물론 기존의 회계감사와는 별개로 시민단체나 민주노동당 등 조직 외부 제3자로 구성된 ‘특별감찰기구’를 꾸려 일상적 감시기능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목적의식적인 정책기조 개발도 강조했는데, 비정규직이 곧 정규직 고용안전판이라는 허구성을 폭로하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자자’라는 슬로건 아래 장시간 노동을 철폐하며 교대근무제 개선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회적 일자리 나누기에 나서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별로 행해져 노동계급 내부 차별과 격차로 이어지는 교육, 의료 등 지원시스템을 폐지하는 대신 사회복지 차원에서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무상교육, 무상의료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사회변혁적 의제 개발, 이것이 ‘비전’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걸맞는 사회변혁적 의제를 개발하고 투쟁해야 한다며 ‘고립을 탈피하고 사회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사회 양극화 해결을 위해 현재 58.8% 수준인 노동소득분배율을 미국과 비슷한 70% 수준으로 향상시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꾀하자는 것이다. 또한 다단계하도급을 통한 이중삼중 착취구조를 개선해 원청에서 하청까지 동일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고정임률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불로소득을 금지하고 조세정의를 실현하며 재벌과 대기업의 횡포를 근절하는 투쟁을 조직해 내자는 것이다.

그는 “사회개혁과제 등을 모아 투쟁하고, 조직의 ‘비전’을 세워낸다면 현재의 위기를 내부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도 “자정능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도 있지만 목욕물 버린다고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며 “격변하는 경제상황, 이에 따른 노동시장과 사회전반의 변화,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와 더불어 2007년으로 다가온 복수노조 시대 등이 우리 운동에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전면적 질서재편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가가 느끼는 위기 체감도
이날 콜로키움에서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지난해 9~10월에 총연맹 및 지역본부, 단위노조 간부 3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간부들이 느끼는 ‘민주노총 위기’ 체감도는 5점 만점(1점부터 아니다, 아니 편, 중립, 그런 편, 그렇다)을 기준으로 3.56점이었다. 노동운동 위기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외부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부족’에 대해서도 평균 3.65점이었다. 노동을 둘러싼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에서의 변화에 대한 정책적, 조직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이 노동운동을 위기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일반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있다는 데 3.08점이 나와 노동운동이 정치사회 상황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이 부족해 이슈선점에 뒤쳐지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조직노동자 고용불안정, 자본의 해외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 등 노동운동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단위 교섭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조 조직구조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기업별 노조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데 3.92점이 나왔다.


노동운동의 오랜 숙원인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 지난해 말 현재 민주노총 전체 노조의 4.7%, 조합원 수로는 47.4%가 산별노조에 소속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산별교섭을 하고 있는 곳은 드문데다, 설문조사에서도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사업’이 5점 만점에 2.60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현장 조직력이 약화돼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3.9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데 불과 2.73점밖에 주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조합원의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응답자들은 단기적 이익중심의 조합원 실리주의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데 3.93점을 줬다. 이는 조합원들의 의식이 실리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대한 노동운동 차원의 대책이 부족했다는 측면과 함께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믿음이 없어지고 있다”는 노조 대표성 위기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정파(의견그룹)’로 불리는 조직 내 정치적, 조직적 입장차이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답변(3.72점)이 나왔다. 의견그룹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할 수 없음에도 이렇게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은 현재의 의견그룹이 정치적 입장보다는 친소관계에 기반해 ‘패거리’라는 비판을 받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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