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땅속에 고이 묻혀있던 지뢰들이 인계철선을 통해 연이어 터지는 느낌이다. 노동조합 비리수사가 갈수록 제 속도를 얻어가는 걸 보면서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 지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지켜만 볼 뿐이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벌써부터 자정능력을 잃은 노조에 대해서는 외부세력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더해가고 있다.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조직에게 그마저 호사스럽다고 본 것인가?

한 때 권력은 노동조합의 비리를 묵인한 적이 있었다. 노동조합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동조합을 통제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흘리는 것만으로도 권력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한 때는 민주노총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노총을 다잡는 것은 금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정치권의 사정을 비롯한 사회의 투명화가 진전되면서 노정관계에서도 더 이상 밀실의 검은 커넥션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어지고 말았다. 건듯 불고 지나가는 한 자락 바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넘어진 놈 밟듯 위기에 위기가 덮치다

장구를 탓하기 전에 무당이 자기의 서툰 솜씨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상례라면 노동조합도 자신이 먼저 자신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 하다. 노조의 현장권력과 사용자의 담합을 구조화시키는 기업별 체제와 돈에 대한 물신주의라 이를 수밖에 없는 경제적 실리주의가 그것이다.

더욱이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의 학교’로 바뀌어버린 노동조합의 운영은 또 어떠한가? 간부의 자리가 권력의 자리로 바뀌고 선거조직으로 바뀐 정파조직과 ‘돈 먹는 하마’로 바뀐 선거과정을 조금이라도 눈여겨본다면 노동계에서도 돈이 권력과 등식화된다는 사실이 놀랄 일만은 아니다. 게다가 노동조합의 감사가 임원이면서도 상집위원만도 못한 구조를 이해한다면 구멍가게만도 못한 회계처리를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뼈를 깎는’ 자정노력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 때 자정을 선언한 기아차 노조와 ‘10년 만에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죄한’ 민주노총은 지난 네 달 동안 무엇을 하였던가?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하고 조직혁신위를 가동하겠다는 한국노총의 자정노력이 결실을 거두리라고 믿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노조의 비리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몇몇 간부의 일탈만은 아니라면 비리를 대하는 노조의 태도가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느낌은 과연 나만의 것인가?

전시용 자정노력은 위기를 심화시킬 뿐

시체가 먼지 털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듯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다시 불거진 건 지난 해 가을이다. 그러나 그 때의 위기론이 논쟁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지금의 위기는 구체적인 현실의 파도로 노동조합에 달겨들고 있다.

당시 위기론의 핵심이 사회연대의 가치를 잃어버린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이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덧붙여 스스로 노동운동의 무기로 여겨왔던 도덕성이 흠집나면서 노동운동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도덕재무장운동 정도로 오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직도 위기의 징후는 덜 깊어진 것일까? 노동운동의 이념과 조직체계, 그리고 운영을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앞서가는 지적일까? 최근 노조의 비리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알리는 예고편이라면 노조는 노동운동의 전략을 다시 기획할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비리는 엄단하더라도 비리는 어디까지나 비리로 봐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노동계가 절대적으로 순결한 청정지역이 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언론이 지나치게 높은 도덕적 가치를 내건 채 마치 노조를 위하는 듯 하면서도 실상은 노조해체론을 펴는 걸 보는 것도 역겨운 일이다.

그러나 그 빌미를 노조가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그 멍석을 걷는 것도 노조의 일이다. 임단협을 앞둔 노조에 대한 권력의 선제공격이라든가 노조 길들이기라는 말로 돌파될 위기는 더더욱 아닌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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