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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촌 택이의 호리병
사촌동생 택이, 어려서부터 머리 나쁘기로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했다. 마루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도 없이 내처 걷다가 마당으로 굴러 떨어지기를 하루에도 몇 차례, 나비 한 마리 팔랑거리면 하늘만 보고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또한 수 차례, 이마며 무릎이며 성한 날이 없었다. 게다가 힘은 얼마나 세고 먹는 것 또한 얼마나 밝히는지 일곱 살 무렵부터 고봉으로 담은 어른 밥 한 사발을 뚝딱 해치웠다.

▲ 정지아 소설가
<빨치산의 딸> <행복> 등.
택이가 중학생이 되는 겨울, 영어를 가르쳤다. 하루에 삼십번씩 써오라는 숙제를 충실히 했음에도 택이는 끝내 알파벳 스물여섯자를 깨치지 못했다. 시골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택이는 이런저런 공장들을 거치며 연애를 하고 장가를 가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노동자’라는 말 한마디에 숙연해지던 시절, 내가 만난 택이는 계급의식이라는 건 눈곱만큼도 없는, 노동조합보다 데이트에 관심이 더 많은 철없는 청년이었다. 실망했고 그 후 택이를 거의 잊고 살았다.

간혹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으로부터 택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명절날 선물이라고 해준 것이 부모님은 먹지도 않는 쌍화차나 식용유였다던가, 자식 둘 데리고 아직도 전세방을 면치 못하는 녀석이 올 때마다 큰아버지 용돈 하시라고 꼬깃꼬깃한 삼만원을 주머니에 찔러주었다던가. 어머니는 머리는 나빠도 마음 하나는 고운 녀석이라며, 사람들이 죄 택이를 이용만 하려는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누가 무슨 일을 부탁하면 이용하려는 줄도 모르고 제 몸 부서져라 일만 한다고.

택이를 지난 여름 고향에서 만났다. 토종닭을 고추장 양념에 재웠다가 개울가에서 같이 구워 먹었는데, 맛있다는 내 말 한마디에 택이는 땀 뻘뻘 흘리며 굽는 족족 내 앞으로 고기를 밀어놓았다. 술안주가 떨어지고 한 여름 집에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 다들 아쉽게 입맛만 다시는 참에 말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 택이가 잡어들을 양재기 가득 잡아왔다. 집에 가서 양념거리를 가져오는 귀찮음도 마다 않고, 불을 피우는 번거로움도 마다 않고, 택이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매운탕을 끓여냈다.

시골 개울가에서 택이는 한여름 햇살처럼 반짝였다. 알파벳 스물여섯자를 두 달 넘도록 외우지 못했던 택이가 시골의 산과 들, 계곡에서는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나는 그제야 기억해냈다.

두 달 동안 알파벳도 외우지 못했던 우리 택이, 제 아버지나 친구들이 미련 곰퉁이라고 비웃어도 속 좋게 헤헤 웃기만 했던 우리 택이, 세상 탓, 남 탓 한번 하지 않고, 저 할 수 있는 일이면 궂은 일 마다 않고 앞장서며 살아왔을 것이다. 어머니 말대로 택이의 소박한 성품을 이용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택이는 저 때문에 남이 잠시 즐거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아무리 이용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택이의 순정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나이 마흔에 어린아이들 친구가 되어 물장구치며 노는 택이를 보며 갑자기 답답한 시야가 확 트였다. 잘 산다는 게 별 것이랴. 제 앞가림하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작은 선이나마 베풀 수 있다면 돈이나 출세보다 낫다. 옛날 중국의 시존(施存)이란 자가 신선술을 배워서 허리에 항상 닷되들이 술병을 차고 다녔단다. 그 술병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들어 있어 해도 있고 달도 있고, 그래서 시존은 밤이면 그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는 것이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천년만년 사는 게 신선술이 아니다. 출세나 돈과 같은 서푼어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욕심 없고 순정한 마음으로 호리병 속 보잘것 없고 소소한 세상의 기쁨에 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선술이다.

택이의 호리병이 나는 참으로 부러웠다.

정지아 소설가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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