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시내 공사장에서 연락이 왔다.

"어이 전씨. 나무 가져 가. 이번에는 통나무야."

통나무라는 말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부랴부랴 트럭을 끌고 나갔다. 정작 나에게 보여 준 통나무는 이름만 통나무지 사실을 썩은 고목나무들이었다. 산비탈을 허물고 건물을 짓는 모양이다. 작년쯤에나 벌목했을 성싶은 나무들이라 고자리가 묵어서 불땀도 없어 보였다.


다음 일들이 바쁜지 일꾼들이 몰려와 큰 나무들은 공사장 굴삭기로, 작은 나무들은 어깨에 메고 와서 실어주었다. 쓸 만한 나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다 싣고 왔다. 그게 이 분들에 대한 도리라 여긴 때문이다.

단지 도리 때문만은 아니다. 폐목을 돈 들여가며 원칙대로 처분하지 않고 때때로 사람들 눈을 피해 땅 속에 묻는다고 들었다. 공사판에서 나무를 땅에 묻는 것은 법에도 어긋난다고 들었다.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썩은 나무도 가져오면 버리는 법이 없다. 도시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해도 일단 우리 집에 오면 귀한 손님이 된다. 뭐든 그렇다.

썩은 나무야 비 좀 더 맞혔다가 바수어서 질소질이 많은 거름자리에 섞어버리면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농사를 제대로 짓는 농부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자원이 된다. 나뭇잎도, 잡초도, 흙도, 비닐도, 똥오줌도 다. 마당 구석에 작게나마 미나리꽝을 만들면 설거지물이나 빨랫물도 다 폐수라는 오명을 벗는다.

트럭을 몰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내내 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단단하고 곧은 것은 같은 크기로 잘라 따로 쌓았다. 나는 이즈음 나무로 우리 집 토담을 만드는 중이다. 통나무의 굵기나 무늬를 살펴가며 짚을 썰어 넣은 황토와 잘 쌓아올리면 담장에 원하는 도형을 새길 수도 있다.

휘어지고 썩은 나무들은 땔감이다. 아궁이 옆 헛간에 차곡차곡 쌓았다. 작년 겨울에 난방비가 거의 들지 않은 것은 다 나무 덕분이다. 아궁이에 쌓인 재를 쳐내서 재래식 화장실에 넣었고 올 하지감자 밑거름으로 썼다.

작년 겨울에는 재를 쳐낼 때마다 엄청난 양의 못이 나왔다. 공사판에서 못 쓰게 된 각목들을 많이 모아 온 때문이다. 공사판 각목에는 못들이 많다. 문방구에서 자력이 가장 센 말굽자석을 사서 그 못들을 골라 내 모아 뒀더니 고물장수가 와서 가져갔다. 못을 한 들통 주고 옥수수 튀밥 한 봉지를 받았다.

지난 겨울 눈이 엄청나게 와서 우리 동네에 사흘 동안 차가 들어 올 수 없었다.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진 사람들은 전기담요를 꺼내고 히터를 켜고 난리가 났다. 우리집 아궁이만 보란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전기로 난방을 해결했어도 여러 집에 보일러가 터져 한겨울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도시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이 시골집 부모님 편하시라고 구들장 메워버리고 기름보일러를 다 깔아버렸는데 이런 난리를 겪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정전이라도 되었다면 다른 동네로 피난짐을 싸야 했을지도 모른다.

여름에 장마비가 오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뒷산 아름드리나무들이 여러 그루 뿌리째 뽑혀 쓰러진다. 쓰러진 나무가 제법 말랐다 싶은 가을 녘에야 나무꾼은 산으로 간다. 이때는 나무꾼이 지게를 지고 산에 가지만 더이상 선녀는 없다. 도끼 대신 기계톱을 가져가서 그런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