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낯선 땅, 아니 낯선 하늘 위로 올라온 지 벌써 10일째다. 지난 5일 밤부터 내린 비가 6일까지 계속되면서, 굳은 땅을 밟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지난달 30일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 3명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 SK 건설현장 내 35m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9일 현재 10일을 맞았다. 9일 밤 10시, <매일노동뉴스>와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들의 근황을 전해 왔다.


- 건강은 어떤가.
“아직 견딜 만하다. 처음 올라왔을 땐 무척 무더워 탈진을 걱정했는데, 지난 5일 밤 비가 내리고 나서는 바람도 많이 불고, 비닐로 찬 이슬은 피하고 있지만 감기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다.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1명밖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2명은 밖에서 나머지 한 명은 조종석에서 번갈아 가며 쉬고 있다. 3명 모두 건강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비 피할 곳이 전혀 없는 울산 농성단이 걱정이다.”

- 울산 파업 소식은 듣는가.
“태양열 충전기를 갖고 와서 휴대폰을 통해 대충 소식은 듣고 있다. 3차 상경투쟁단이 지난 6일 울산 SK 석유화학단지 진입투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또 신문도 올려주고, 가지고 온 라디오로 세상 소식은 듣고 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답답할 뿐이다.”

-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일어나는 시각은 일정치 않고 오전 9시 타워크레인 반대편에 있는 상경투쟁단들과 집회를 하고 연대오는 동지들에게 인사하는 정도다. 울산 고공농성단과는 달리 이곳 타워크레인은 경찰의 강제진압 위협도 없고, 오히려 '지독하게' 평화스럽다.”

- 지금 농성단 분위기는.
“차라리 올라오지 말고 조합원들과 같이 투쟁을 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후회가 시간이 갈수록 많이 든다. 소식을 듣긴 하지만 이곳에서 버티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곳에서 버티는 것이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들 잘 참고 있다."

-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날 텐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이곳에서 보냈다. 농성단 중 한 명은 가족들이 이곳에 있는 걸 몰라서 많이 답답해 했다. 그렇다고 여기 상황을 알리자니, 걱정할 것 같고. 전화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더라. 또 한 명은 홀어머니가 지난해 6월에 돌아가셔서 묘소를 찾아가지 못해 속상해 해서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그리고 내(권혁수) 경우는 아내가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가족대책위 대표를 맞고 있는데, 아마 나보다 더 힘들어 할 것 같다.”

- 울산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결의하고 올라왔지만 막상 10일이 지나도록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많이 답답하다. 그래도 노조 하나 만들겠다는 우리 요구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밑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 생각하며 힘을 내고 있으니까 꼭 이번 투쟁 승리해서 일터에서 웃는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다.”

전화통화를 시작한 지 20여분이 지날 즈음, 농성단의 목소리도 끊겼다. 아마도 태양열로 충전한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된 듯싶다. 35m 타워크레인 상공, 세상과 이들을 연결해 주는 휴대폰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울산석유화학단지 내 70m 정유탑 농성단보다는 처지가 낫다며 위안을 하며 힘을 내고 있는 이들. 이들이 공중에서 내려와 굳은 땅을 하루 빨리 밟을 수 있기를, 그래서 가족들과 동료들이 있는 일터에서 웃으면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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