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비정규노동문제 관련 노사정 ‘교섭’이 한 단락 지나갔다. ‘투쟁과 교섭을 병행, 결합’한 결과 ‘성과가 있었고 의미도 있었다’는 교섭참가자들의 판단이 나오고 있다. 비정규노동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일이 마무리된 것도 아니므로 성급한 판단을 내릴 시점은 아직 아닐 것이다. ‘교섭과 투쟁의 병행’, ‘투쟁을 기본으로 교섭전술을 결합한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택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는 것으로 본다. 6월이 남아 있고 가을의 로드맵이 있으며 ‘2007년’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참가 문제도 아직 숙제일 뿐이다. 그리고 ‘교섭주의에 빠질 것을 걱정하는 많은 동지들’이 여전히 불안한 상태인 것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오히려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한국노총의 문제이다. 이번 사태에서 ‘양대 노총’의 연대투쟁이 또 하나의 새롭고 중요한 변화와 의미였다는 당사자의 평가가 있었던 것과 연관된다. 얼마 전 필자는 사회포럼 발표 자리에서 한국노총의 한 참가자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논의하면서 한국노총에 대해 비판적 지적을 한 것이 그 분이 보기에 과도하다는 반 비판이었다. 양대노총 위원장이 ‘사상초유’의 단식농성에 돌입하고 연대투쟁에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너무하지 않느냐 것이다. 그 비판이 적절한 지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도 떨칠 수 없었다.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민주노조운동 일각에서는 ‘양대노총’의 대통합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주요한 처방 중 하나로 제기하고 있다. ‘투쟁 있는 교섭’과 ‘교섭 있는 투쟁’이 새롭게 만났다는 일부의 평가처럼 금번의 연대투쟁은 그 길로 나가는 중요한 디딤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 노총의 공조가 금번 투쟁에서 결정적이었으므로 한국노총에 감사한다는 민주노총 교섭 책임자의 진지한 사의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리하여 앞서 말한 필자의 비판은 ‘무너진 패러다임, 변화한 한국노총’에 대해 무지하고 때늦은, 어쩌면 과도하고 잘못된 비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인가’라는 질문을 필자는 ‘양대노총’에 공히 제기하고 싶다. 먼저 밝혀 둘 일은 비정규노동문제에 관한 ‘양대노총’의 연대노력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노총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수십만 조합원들의 노력과 투쟁이 갖는 의미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 7년 동안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에 줄곧 참가해왔다. ‘대책 없는 민주노총’과 달리 교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섭’에 주력한 결과는 필자가 보기에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우선 2001년 연초의 작업장단위 복수노조 금지와 전임자임금지급에 관한 노사정위 합의는 최악이었다. 많은 비정규노동자들과 민주노조들이 구조조정과 탄압에 의해 고통 받고 있던 그 때, 그 한 복판에서 이뤄진 합의였던 것이다.

한 차례의 합의만이 문제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한국노총의 ‘투쟁 없는 교섭’은 그 기간 전체에 걸쳐 진행된 가혹한 구조조정을 정당화해 준 효과가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요컨대 이제는 모두가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교섭주의’에 대한 한국노총의 판단이 진정으로 달라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인 것이다. 한국노총 조직은 진정 ‘투쟁 있는 교섭’ 노선으로 변화하였는가.

현대중공업노조 제명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라 해서 모두 민주노조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한국노총 산하의 조직이 모두 총연합단체 한국노총의 노선문제로 재단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투쟁 있는 교섭’과 ‘교섭 있는 투쟁’이 만나는 것이 운동의 발전인지, 위기의 심화인지는 지금부터 더 따져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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